국내 비철금속 ‘양강’으로 꼽히는 고려아연풍산이 각각 ‘신사업 확대’와 ‘주력사업 올인’이라는 상반된 전략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두 회사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힘입어 작년에 창사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고려아연은 2조원이 넘는 ‘실탄’을 앞세워 주력사업인 아연·납 제련을 넘어 수소와 2차전지 사업을 대폭 키울 계획이다. 반면 풍산은 주력인 구리 가공업과 군용탄 등 방산 분야에 더욱 집중할 방침이다.

고려아연, 영업이익 1조원 달성

수소·배터리 넘보는 고려아연 vs 주력사업 '올인'하는 풍산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작년 3분기까지 연결 기준 808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 동기(6356억원) 대비 27.2% 늘었다. 시장에선 고려아연이 작년 한 해 1조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업이익 ‘1조 클럽’ 가입은 1974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풍산은 작년 3분기까지 연결 기준 249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동기(677억원) 대비 네 배 가까이 급증했다. 시장에선 풍산이 작년 한 해 1968년 설립 이래 최대인 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했다.

두 회사 모두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아연, 납 및 구리 가격 상승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수입도 상당하다. 고려아연은 정광 제련 과정에서 연간 금 12t, 은 2500t, 황산 150만t가량을 부산물로 얻는다. 고려아연 전체 매출 중 아연과 은 비중은 각각 31.0%와 30.1%에 달한다. ‘산업 사이클을 이겨내는 기업’이라는 별칭처럼 고려아연은 2006년 이후 매년 1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덕분에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작년 3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만 2조원이 넘는다.

고려아연은 지금을 새 성장동력에 적극 투자할 시점으로 보고 있다. 최윤범 부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비철금속 제련회사라는 틀에서 벗어나 신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폐기물 리사이클링, 2차전지 소재 등 신성장동력을 집중 육성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고려아연이 지난달 호주 최대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에퓨런 지분을 100% 인수한 것도 신사업 확대 전략의 일환이다.

‘은둔 이미지’ 탈피 vs 유지

풍산은 기존 주력사업에 ‘올인’하겠다는 계획이다. 주화와 산업용 소재 등 구리 가공사업은 공정 효율화를 통해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풍산의 주력사업은 LS니꼬동제련 등에서 공급받은 구리(전기동)를 금속판이나 봉, 동전 등으로 가공하는 것이다. 군용탄·스포츠탄 등 전체 매출의 32.2%를 차지하는 방산 분야는 또 다른 주력사업이다.

풍산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영업 네트워크를 확대해 방산 분야를 더욱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풍산 관계자는 “2차전지 소재 등 각종 신사업 진출은 항상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지금으로선 기존 주력사업을 더욱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려아연과 풍산은 시장에서 ‘은둔의 기업’으로 불렸다. 규모에 비해 기업의 주요 정보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고려아연은 ‘오너 3세’인 최 부회장(1975년생)이 2019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12월엔 인사 법무 홍보 등 지원조직을 대폭 늘린 지속가능경영본부도 신설했다. 고려아연은 최기호 창업주 이후 2세들이 차례로 회장직을 맡았다. 5남 중 장남 최창걸 명예회장에 이어 차남인 최창영 명예회장, 삼남 최창근 회장으로 회장직을 승계했다. 최 부회장은 최창걸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풍산은 류진 회장(1958년생)이 20년 넘게 그룹을 이끌고 있다. 2000년 창업주이자 부친인 류찬우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에 취임했다. 류 회장은 국내에선 외부 행사 참석을 꺼리며 ‘은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풍산그룹은 류 회장이 건재하기 때문에 후계 구도를 거론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