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겨울 아침풍경, 김종길
겨울 아침풍경

김종길

안개인지 서릿발인지
시야는 온통 우윳빛이다
먼 숲은
가즈런히 세워놓은
팽이버섯, 아니면 콩나물
그 너머로 방울토마토만한
아침 해가 솟는다

겨울 아침 풍경은
한 접시 신선한 쌜러드
다만 초록빛 푸성귀만이 빠진

[태헌의 한역]
冬朝風景(동조풍경)

霧耶霜花耶(무야상화야)
眼前色如牛乳汁(안전색여우유즙)
遠林又何若(원림우하약)
恰似針菇豆芽立(흡사침고두아립)
隔林朝日昇(격림조일승)
大如小番茄(대여소번가)
冬朝風景是沙拉(동조풍경시사랍)
只缺靑靑蔬與瓜(지결청청소여과)

[주석]
* 冬朝(동조) : 겨울 아침. / 風景(풍경) : 풍경. ※ 시의 제목은 “겨울”과 “아침풍경”을 합한 말이지만 역자는 “아침”을 “겨울”과 합한 개념으로 한역하였다.
霧耶(무야) : 안개인가? ‘耶’는 의문을 나타내는 어기사이다. / 霜花(상화) : 서리꽃, 서릿발.
眼前(안전) : 눈앞. 원시의 “시야”를 달리 표현한 말이다. / 色(색) : 색, 빛깔. / 如(여) : ~과 같다. / 牛乳汁(우유즙) : 소의 젖, 우유. 압운 등을 고려하여 우유를 세 글자의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乳汁’은 젖이라는 뜻이다.
遠林(원림) : 먼 숲. / 又何若(우하약) : 또 무엇과 같은가? 행문(行文)의 편의를 위하여 임의로 보탠 말이다.
恰似(흡사) : 마치 ~과 같다. / 針菇(침고) : 팽이버섯을 나타내는 ‘金針菇(금침고)’를 줄여서 칭한 말이다. / 豆芽(두아) : 콩나물을 나타내는 ‘두아채(豆芽菜)’를 줄여서 칭한 말이다. / 立(립) : 서다, 세우다.
隔林(격림) : 숲 너머에서. 원시의 “그 너머로”를 지시사 없이 한역한 표현이다. / 朝日(조일) : 아침 해. / 昇(승) : (해가) 돋다, (해가) 솟다.
大(대) : 여기서는 ‘크기’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 小番茄(소번가) : 작은 토마토. 역자가 “방울토마토”라는 뜻으로 취하여 쓴 한자어이다. 오늘 날 중국에서는 “방울토마토”를 앵도번가(櫻桃番茄)라고 하는데, 우리식으로 풀자면 앵두토마토라고 할 수 있다.
是(시) : ~이다. / 沙拉(사랍) : 외래어 샐러드(salad)를 나타내는 현대 중국어 어휘이다.
只(지) : 다만. / 缺(결) : ~을 결하다, ~이 빠지다. / 靑靑(청청) : 푸릇푸릇, 파릇파릇. / 蔬與瓜(소여과) : 나물과 오이. 원시의 “푸성귀”를 풀어쓴 말인데 푸른 ‘오이’가 샐러드의 재료로 흔하게 쓰이는 데다 압운 또한 맞아 원시에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게 된 것이다.

[한역의 직역]
겨울 아침 풍경

안개인가? 서릿발인가?
눈앞의 빛깔이 우유와 같다
먼 숲은 또 어떠한가?
마치 팽이버섯이나 콩나물이 서있는 듯
숲 너머에서 아침 해가 솟는데
크기가 작은 토마토만하다
겨울 아침 풍경은 샐러드
다만 파릇한 나물과 오이가 빠진

[한역 노트]
이 시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겨울 아침 풍경이 곧 샐러드’라는 것이다. 을씨년스럽다 못해 살벌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겨울 아침 풍경을 싱싱한 샐러드에 비유하여, 겨울이 차갑다기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시야에서 희뿌옇게 보이는 안개 혹은 서릿발을 우유에, 적당히 먼 곳에 나목(裸木)인 채로 있는 활엽수나 머리에 눈을 쓰고 있어 푸른 기운이 잘 보이지 않는 상록수가 이룬 숲을 “세워놓은” 팽이버섯 혹은 콩나물에, 그 숲 너머에서 조그맣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방울토마토에 비유해서 샐러드의 재료로 삼은 시인의 상상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역자는 이 시를 다 읽고 난 순간 엉뚱하게도 “겨울은 맛있다.”라는 멘트가 이 시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역자가 올 해의 마수걸이 시로 이 시를 고른 이유는, 아직은 많이 남은 겨울날을 다들 샐러드처럼 ‘맛있게’ 먹으면서 보내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나면 김종제 시인이 <봄을 먹다>라는 시에서 “봄은 먹는 것이란다”라며 예찬했듯 맛깔스러운 봄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샐러드는 그 재료들이 복잡한 화학적인 변화 과정 없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접시에 담겨 있다가 서로 어우러져 맛을 내는 음식이다. 역자는 세상도 이 샐러드와 같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팽이버섯이 좋다고 팽이버섯만 잔뜩 넣은 샐러드가 무슨 맛이 있겠는가! 설혹 맛있다 하더라도 그 단조로움 때문에 금방 싫증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세상은 내게 동조하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반대하여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들이 밉다 하여 다 배제해 버린다면, 팽이버섯만 잔뜩 넣은 샐러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시인이 이 시를 지은 뜻이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초록빛 푸성귀” 없이도 한 접시의 샐러드를 만들어 우리에게 권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를 맛있게 먹고, 코로나와 경기 침체 등과 같은 이유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웃음을 하루라도 빨리 되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에 마음으로나마 도움이 되게 하고자 역자는 오늘의 “샐러드” 시에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대주(對酒)>를 사이드 메뉴로 추천하는 바이다. 따지고 보면 한글로 된 시와, 그것을 한역한 한시와, 한역한 한시를 다시 직역한 시와, 또 다른 한시를 함께 한 자리에 둔 것 자체가 이미 한 접시의 샐러드가 아닐까 싶다. 이름하여 시의 샐러드!

對酒(대주)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술을 마주하고서

달팽이 뿔 위 같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다투나?
부싯돌 불빛 같은 세월 속에
이 몸 부쳐둔 것을!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저 기쁘고 즐겁게 살 일
입 벌리고 웃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바보인 게지

원시의 “온통”과 “가즈런히”, “한 접시 신선한” 등의 시어를 한시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미처 한역하지 못하였지만, 시의 대체를 이해하는 데는 그다지 지장이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역자는 2연 10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오언과 칠언이 4구씩 복잡하게 섞인 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짝수 구에 압운하였으나 전반 4구와 후반 4구의 압운을 달리하였다. 이 시의 압운자는 ‘汁(즙)’·‘立(립)’, ‘茄(가)’·‘瓜(과)’이다.

2022. 1. 4.

※ 역자가 출판 준비 등 몇 가지 일로 몸도 마음도 바쁜 관계로 한동안 칼럼을 격주로 발행할 예정이오니 너그러이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코너를 방문하신 모든 분들이 늘 건강하신 가운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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