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양기원 씨.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배우 양기원 씨.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도 안 되고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한 달에 8㎏을 감량한 만큼 이제 먹지 말자 다짐하는데 또 찾게 되네요.”

식욕억제제로 유명한 펜터민 성분의 약 ‘디에타민’ 복용 후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의 부작용이다. 지난해 10월엔 배우 양기원 씨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부작용을 겪은 걸 털어놔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는 당시 “‘싸워, 싸워’ 하는 환청이 들리고 화장실 문의 무늬가 전쟁 장면으로 바뀌는 환영도 겪었다”고 고백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 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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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외부 활동이 줄고 체육시설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비만 환자도 크게 늘었다. 그 결과 식욕억제제를 찾는 사람이 함께 증가하면서 마약류로 분류된 펜터민 성분 약 오남용에 따른 피해도 이어지는 실정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대한비만학회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시행한 ‘코로나19와 비만 관련 건강행태 변화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42.0%가 코로나19 창궐 후 체중이 평균 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2.1%가 살이 찐 원인으로 ‘활동량 감소’를 꼽았다.

대학생 박모씨(23)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비만 증세로 병원을 찾아 감량한 사례다. 지난해 7월부터 4개월간 디에타민을 처방받아 30㎏을 뺐지만 약을 복용하는 동안 각종 부작용에 시달렸다. 그는 “불면증 때문에 멍해지고 대화할 때 맥락을 못 잡는 일이 잦았다”며 “작은 일에도 화가 나는 등 감정기복이 심해져 친구들이 요즘 힘든 일 있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사람은 총 133만 명이다. 이 중 83만 명이 펜터민 성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펜터민은 약이 나비 모양을 닮아 ‘나비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약류로 취급되고 불면증, 손떨림, 정신이상, 조울증, 환청 등의 부작용이 있다.

SNS를 통해 개인 간 불법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오픈채팅방과 SNS에서 ‘ㄷㅇㅌㅁ(디에타민)’ ‘펜터민’ 등을 검색하면 처방을 쉽게 내주는 병원 정보와 “남는 약을 구매한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25일엔 식약처가 포털과 SNS에서 식욕억제제 제품을 판매·광고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게시글 147개를 적발하기도 했다. 이 중 펜터민 제품이 가장 많이 검색된 것으로 나타났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펜터민은 암페타민 계열인 필로폰과 분자구조가 조금 다를 뿐 거의 비슷한 위험 물질”이라며 “환각·환청을 동반하는 정신병 증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비만 정도가 아주 심한 사람에게만 신중히 처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