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주택가(아파트)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주택가(아파트)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사진=연합뉴스
한국전력이 내년도 전기요금 인상안을 지난 27일 발표하면서 국민의 비용 부담 증가폭을 지나치게 낮게 추산한 것으로 28일 드러났다. 한국전력은 내년도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요금이 올해에 비해 1950원(5.6%)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상승폭은 3590원(7.9%)에 이를 전망이다. 한전과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시기와 기준을 왜곡해 의도적으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상폭은 1950원 아닌 3590원

한전은 지난 27일 발표한 전기요금 인상안을 통해 내년 4월과 10월 두 차례에 나눠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은 내년 4월에 ㎾h당 6.9원 오르고, 10월에 4.9원 더 오를 예정이다.

한전은 두 차례에 걸친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내년도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요금이 1950원(5.6%) 인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을 304㎾h로 가정해 추산한 결과다.

하지만 내년 4월 전기요금이 ㎾h당 6.9원 인상되면 한 달에 304㎾h의 전기를 쓰는 4인 가구의 전기요금은 2100원 오르게 된다. ㎾h당 4.9원이 더 인상되는 10월엔 월평균 전기요금이 1490원 추가된다. 결과적으로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요금은 내년에만 3590원이 오르는 셈이다.

한전에 따르면 304㎾h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현재 기준 전기요금은 4만5350원이다. 내년에 3590원이 오르면 인상률은 7.9%인 셈이다.

한전이 밝힌 전기요금 인상폭과 실제 상승폭이 이 같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전기요금 인상률을 계산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전은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는 내년 1~3월까지 포함해 '연간 기준 월평균' 상승률이 5.6%라고 설명했다. 내년 10월 전기요금은 올해보다 7.9% 오른 게 맞지만, 내년 한 해 전체를 기준으로 삼으면 월평균 상승률이 5.6%로 계산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전은 그동안 전기요금의 인상·인하 방침을 밝히면서 가격이 변한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국민의 비용 부담이 어떻게 변하는지 발표해왔다. '연간 기준 월평균 상승률'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전기요금 인상률이 5.6%에 불과하다고 내세운 것은 전기요금 인상폭을 최대한 작게 보이게 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전은 “전기요금을 4월과 10월에 나눠 인상하기로 해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인상률을 발표해온 과거와 달리, 기간 평균 인상률을 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4인가구 전기 사용량 기준도 바꿔

한전이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을 304㎾h로 설정한 것도 논란이다. 한전은 지난 1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이후로 항상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을 350㎾h로 두고 국민의 비용부담 변동폭을 발표했다. 작년 1월 전기요금을 ㎾h당 3원 낮출 때도 350㎾h를 기준으로 4인가구의 월평균 전기요금이 1050원 인하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한전이 그동안 써온 기준과 같이 4인가구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을 350㎾h로 가정할 경우, 4인가구의 내년도 전기요금 부담 상승폭은 4130원에 이른다. 350㎾h 소비 가정의 평균 전기요금이 현재 기준 5만5190원인 점을 고려하면 인상률은 7.5%다.

한전은 4인가구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 기준을 350㎾h에서 304㎾h로 바꾼 이유에 대해 "공식적인 데이터 가운데 가장 최신 데이터를 반영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구 평균 전기 사용량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3년마다 집계해 발표하는 에너지총조사 자료에 나오는데, 가장 최신 자료인 2017년 에너지총조사에 따르면 4인가구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이 304㎾h라는 설명이다. 350㎾h는 2014년 기준이었다고 한전은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과 코로나19로 인한 가정 내 전력소비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올해엔 2017년 대비 전력소비량이 훨씬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