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일국양제' 논란 중심 부상
미국이 타깃삼은 홍콩 '중련판'은 어떤 조직인가
미국 정부가 친중파의 싹쓸이(90석 중 89석 획득)로 끝난 지난 19일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 직후 홍콩 민주주의를 해치는데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의 '홍콩주재 연락 판공실(중련판)' 소속 관리 5명을 제재함에 따라 중련판의 존재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 중앙정부의 연락사무소 역할을 맡는 기구로서 홍콩의 중국 반환 50년 전에 설립된 기관이 홍콩 관련 '일국양제(一國兩制·중국 본토가 홍콩, 마카오, 대만에 대해 일정기간 기존 체제를 유지하도록 허용한다는 취지)' 논쟁의 중심에 선 형국이다.

즉 중국이 일국양제 원칙에 입각해 홍콩에 약속한 '고도 자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련판이 중국 중앙정부의 입장과 정책을 홍콩에 관철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판단인 것이다.

◇ 신화 통신 홍콩 분사가 전신
1947년 5월 설치된 신화사(신화 통신) 홍콩분사가 중련판의 전신이다.

1997년 중국이 영국에서 홍콩을 반환받은지 2년여 경과한 2000년 1월 중국 정부 조직개편을 통해 지금의 중련판이 생겼다.

2000년부터 신화사 홍콩지사는 미디어로서의 업무만 하게 하고, 그 외 연락사무소 업무는 떼어내 중련판에 준 것이다.

중련판은 홈페이지에서 중국 정부의 홍콩 내 공관인 '중국 외교부 홍콩 주재 파견인원공서(署)' 및 홍콩 주재 중국 인민해방군 부대와의 소통, 중국 중앙의 유관 부서가 홍콩에 둔 기구와의 접촉과 협조 등을 주된 소관 업무로 소개한다.

또 홍콩 사회 각계 인사와의 접촉을 통해 중국 중앙에 대한 홍콩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중국 중앙정부가 하는 기타 사무를 대행하기도 한다.

아울러 대만에 주재하는 중국 정부 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대만 관련 업무도 처리한다.

쉽게 말해 규정상 연락사무소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셈이다.

영문 명칭에도 '연락 사무소'를 의미하는 'Liaison Office'가 들어 있다.

직제상으로는 중국 국무원(내각)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의 관할 하에 있다.

◇ 2019년 반정부 시위 이후 수면 위로 부상
중련판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홍콩 시민들의 시위와 중국 중앙의 장악력 강화가 격렬하게 충돌한 최근 수년 사이다.

중국 중앙이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港人治港)는 원칙을 내세우다 2019년 홍콩에서 대규모 반중 시위가 벌어진 이후부터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愛國者治港)는 쪽으로 바꾸면서 중련판의 위상과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달라졌다.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중련판은 한동안 홍콩 정부의 일에 직접 관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수년전부터 홍콩 정부 관리 선발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중앙 정부의 의중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월 보도에서 중국 중앙정부가 중련판에 파견하는 인력을 100명 증원하며 홍콩에 대한 직접 통치 강화에 나섰다고 전했다.

중련판 인력 증원은 중국 중앙정부가 중련판에 '더 많은 책임'을 부과했기 때문이며, 여기에는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확실히 구축하려는 의중이 작용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당시 베이징항공항천대 홍콩문제 전문가 톈페이룽은 SCMP에 "중국 정부는 홍콩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길 원한다고 말해왔다"면서 "이제 중련판은 홍콩에서 더 이상 수동적인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홍콩 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더욱 직접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그간 중련판이 언론에 등장하는 경우는 외국 정부나 단체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낸 경우 뿐이었다.

홍콩의 보통 사람들은 평소 중련판의 존재를 의식할 일이 거의 없고, 중련판 역시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홍콩의 중국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중련판의 존재감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SCMP는 지난해 말 중국 본토 출신 금융인들이 새로운 정당(바우히니아당)을 창당한다는 소식에 중국 정부가 바우히니아당을 지원하는 것이냐는 친중 정치인들의 문의가 중련판으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2019년 반정부 시위 이후 홍콩의 친중 정당에도 실망해 본토 출신들로 구성된 새로운 정당을 지원했다는 관측 속에서 중련판이 그에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 민생탐방까지 나서…"홍콩여론 적극 수렴" 천명
그런 가운데 중련판은 지난 9월30일부터 10월10일까지 홍콩 주민 약 4천명을 찾아다니는 민생 탐방 '한마음으로 함께 걷다'를 진행했다.

중련판은 해당 행사를 보고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중련판 직원들이 쪽방촌과 임대주택, 중소기업 등 979곳을 찾아 총 6천347건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중련판은 홍콩인들의 일상과 홍콩 젊은이들의 생각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중련판 7명의 부주임 중 한 명인 루신닝(盧新寧) 부주임은 "중련판 관할 내에 있는 사안은 즉시 해결할 것이며, 홍콩 정부 관할 내에 있는 일들은 그들에게 넘길 것"이라며 "이제부터 중련판은 그간 주목받지 않으려 했던 것에서 벗어나 홍콩 여론을 더욱 잘 수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SCMP는 "중련판이 이번 탐방 후 정책 목록 500개를 작성했다"며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과 홍콩 관리들은 중련판이 민생 탐방에 들어가자 압박을 받는 듯 보였다"고 전했다.

당시 이반 초이(蔡子强) 홍콩중문대 정치행정학 선임 강사는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양된 이후 중련판은 홍콩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고자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그러나 몇년 전부터 홍콩 정부 관리를 선발하거나 선거 조율에 개입하더니 이제는 아예 전면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심지어 홍콩 정부가 개선해야할 사항에 대해 발표까지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국영기업이 SCMP 인수를 추진한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는데 거기에도 중련판이 관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소유한 바우히니아문화홍콩집단유한공사(紫荊文化香港集團有限公司)가 SCMP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중련판이 홍콩의 출판그룹인 연합출판집단유한공사를 통해 바우히니아문화홍콩집단유한공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홍콩의 선거제를 개편한 후 지난 19일 첫 치러진 홍콩 입법회 선거 결과를 놓고도 중련판의 역할에 대한 전망이 나왔다.

선거제 개편으로 입법회 의석수는 70석에서 90석으로 늘어났으나, 유권자가 직접 뽑는 직선 의석수는 35석에서 20석으로 대폭 줄었다.

초이 홍콩중문대 선임 강사는 SCMP에 "중국 정부가 직선 의석수를 줄인 것은 어느 한 당이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입법회 내 조정 활동은 중련판이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법적 논란 진행형
중련판을 둘러싼 법적 논란도 진행형이다.

1997년 7월 홍콩의 반환과 함께 시행된 홍콩기본법은 "중앙 인민정부의 소속 부서, 각 성, 자치구, 직할시는 모두 홍콩특별행정구가 이 법에 근거하여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사무에 간섭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홍콩의 일국양제를 지탱하는 이 조문에 비춰 중련판이 홍콩 정치와 행정에 관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작년 4월 당시 홍콩 율정사 사장(법무장관 격)은 입법회에 출석해 "중련판은 홍콩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기관이지만, 중앙정부에 소속된 기관은 아니다"며 "따라서 기본법 22조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련판은 자신들이 중국 중앙정부 자체를 대표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지 중앙인민 정부 각 개별 부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어서 기본법 제22조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평가와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