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문물 차단·북한말 사용 정책 등의 일환인듯
북한, '방역학적 거리두기' 용어 사용…남한 표현과 거리두기
북한이 한국 등 외부에서 들어온 문물을 차단하는 데 힘쓰면서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용어도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22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외국 여러 나라에서 방역사업을 강화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러시아 보건상은 마스크 착용과 방역학적 거리두기 등 방역 조치들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도 지난달 29일자 코로나19 관련 기사에서 "공공장소들에서 방역학적 거리두기를 비롯한 방역 규정들이 철저히 엄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매체가 사용한 '방역학적 거리두기'는 한국에서 쓰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표현이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초 이래 사회적 거리두기 또는 더 단순화한 '거리두기'라는 표현을 줄곧 사용했다.

북한 매체에 코로나19와 관련한 거리두기라는 표현은 지난해 4월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북한의 코로나19 보도는 남한 내 발병 소식을 주로 전달했기에 한국에서 쓰는 사회적 거리두기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방역학'과 '거리두기'라는 단어가 함께 쓰이는 경우는 '방역학적 요구에 맞는 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한 방역학적 요구' 등과 같은 표현이 전부였다.

지난 8∼9월께부터 북한 매체 보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조선중앙통신은 철저한 위생 조치를 촉구하는 9월 4일자 기사에서 "각지 비상방역 부문에서도 근로자들과 주민들이 손 소독과 마스크 착용, 방역학적 거리두기 등 방역 규정과 질서를 자각적으로 지키도록 교양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썼다.

이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 공식 매체는 물론 우리민족끼리·려명 등 대외선전매체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방역학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표현은 8월 초 노동신문 보도를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이런 변화는 최근 외부 문물 차단을 위해 노력하면서 사상사업 강화에 나서는 북한 당국의 노력과 맞물려 해석된다.

북한은 남측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지난해 말 제정한 바 있다.

올해 7월에는 노동신문 사설에서 "청년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본태가 살아 숨 쉬는 평양문화어를 적극 살려 써야 한다"며 북한 말 사용을 강조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남친'(남자친구), '쪽팔린다'(창피하다), 남편을 '오빠'로 부르는 행위 등 남한식 말투와 호칭까지 단속하기도 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는 영어 표현(social distancing)의 번역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문화 침투'를 우려하는 북한이 배격 대상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추정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