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맞수인 롯데와 신세계가 또 한 번 진검승부를 펼친다. 롯데쇼핑은 새 수장(부회장)으로 김상현 전 미국 P&G 부사장을 선임하며 반격을 위한 전열을 정비 중이다. 신세계는 오픈마켓인 이베이코리아에 대한 계열사 편입을 최근 완료했다. 이마트, 쓱닷컴, 백화점, 면세점 등 계열사 간 시너지를 통해 롯데의 추격을 뿌리친다는 전략이다.1979년 롯데쇼핑센터 설립과 함께 양사의 유통 전쟁은 항상 치열했다. ‘백화점 1등’인 롯데에 맞서 신세계는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을 1호점으로 대형마트 시장을 개척했다. 2000년대엔 정유경(현 신세계백화점 총괄 사장)과 장선윤(현 롯데호텔 고문)의 ‘명품 대결’이 펼쳐지기도 했다. 28일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양사 대결과 내년에 펼쳐질 진검승부의 차이점은 외부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라고 말했다.지난 25일 선임된 김 부회장은 미국계 글로벌 기업 P&G에서 30년간 경력을 쌓았다. 미국식 합리주의가 몸에 배어 있다는 전언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다소 경직된 것으로 평가받는 롯데의 조직문화를 바꿔 경쟁업체들을 추격할 적임자로 낙점한 이유다.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삼고초려’를 통해 2년 전 영입한 강희석 이마트·쓱닷컴 대표(겸직)는 미국계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 출신이다. 강 대표는 2년 전 취임하자마자 이마트의 공채·기수 문화 개혁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를 인정한 정 부회장은 지난달 초 인사에서도 강 대표를 유임시키며 신임을 보였다.사업 분야 중 내년 최대 격전지는 온라인이다. 온라인 사업에서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는 신 회장은 롯데온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가 천명한 ‘그룹의 일원화된 온라인 전략’을 위해 롯데온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할지도 관심사다. 반면 롯데쇼핑과의 경쟁 끝에 3조5000억원을 들여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정 부회장은 롯데온의 추격을 뿌리치고 쿠팡·네이버와 e커머스(전자상거래) ‘3강 구도’를 확립한다는 계획이다.롯데마트와 이마트, 맥스와 트레이더스 간 경쟁도 전망된다. 롯데마트와 이마트는 체험형 점포 리뉴얼을 통한 대형마트 공간혁신 경쟁을 벌이고 있고, 창고형 할인점 분야에선 내년 출범하는 롯데마트 맥스가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도전장을 던진 모양새다.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가 한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매출 5조원을 넘어섰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도 올해 사상 첫 3조원 매출 돌파가 예상된다.오프라인 대형마트의 고전 속에 창고형 할인점이 ‘나홀로 질주’를 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자영업자까지 고객으로 확보한 창고형 할인점은 낮은 가격·고품질 PB(자체브랜드) 상품을 앞세워 매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코스트코 질주에 트레이더스 맹추격23일 업계에 따르면 코스트코코리아의 올해(회계기준 2020년 9월~2021년 8월) 매출은 5조3523억원으로 1994년 한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5조원 고지를 넘어섰다. 전년 4조5229억원보다 18.3%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775억원으로 24.3% 늘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전년 증가폭(매출 8.4%, 영업이익 6.2%)을 훌쩍 뛰어넘었다.후발주자인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매출이 연평균 23% 늘어나며 올해 처음 3조원을 넘어설 전망(약 3조400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올 1~3분기 751억원으로 이마트 1543억원의 절반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마트 점포 138개, 트레이더스 20개를 감안하면 창고형 할인점의 ‘활약’을 짐작할 수 있다.업계에선 창고형 할인점의 나홀로 질주 비결로 일반 소비자와 자영업자를 아우르는 ‘듀얼 점포’ 전략을 우선 꼽는다. 코스트코의 자영업자 고객 비중은 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마진을 줄여서라도 싸게 파는 전략이 창고형 할인점이 자영업자들의 상품 조달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유료 회원제인 코스트코의 판매 마진은 10~15%로 알려져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연회비가 없는 대신 17% 수준이다. 반면 일반 대형마트는 30%에 육박한다.‘소품종 대량판매’ 전략은 필요한 상품을 집중 소비하는 최근 소비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창고형 할인점의 판매 품목 수(SKU)는 4000~5000개 수준으로 일반 대형마트(2만 개)보다 훨씬 적다. 그 대신 업계 1~2등 상품 위주로 구색을 갖춘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싸게 판매하니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입액)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물건을 많이 사서 쟁여놓는 코로나19 시대 소비와도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창고형 할인점에서만 파는 ‘온리 상품’도 경쟁력 중 하나다. 코스트코의 PB인 커클랜드는 일반 상품보다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제조사로서는 코스트코와 협력하면 세계로 판로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코스트코의 제품 기준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도 이에 대항해 PB인 ‘티 스탠다드’를 내놓고 공들이고 있다. 내년부터 창고형 할인점 ‘新삼국지’내년부터는 창고형 할인점들의 ‘진검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롯데마트는 사실상 철수했던 창고형 할인점 사업에 복귀해 공격적인 출점에 나설 예정이다. 빅마켓이라는 기존 이름을 ‘맥스(MAXX)’로 바꾸고 2023년까지 매장 20여 곳을 열기로 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기본적인 규모가 갖춰져야 바잉 파워를 확보하고 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후발주자인 만큼 기존 브랜드가 출점하지 않은 지역 위주로 빠르게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코스트코를 따라잡기 위해 신선식품으로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해외 소싱 비중이 높은 코스트코는 독보적 수준인 공산품에 비해 신선식품 경쟁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축산 매출은 전체의 15%로 일반 이마트 7%의 두 배를 넘는다.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롯데마트가 1층 매장 면적의 70%를 대형 와인숍으로 바꾸는 공간 혁신을 통해 ‘집객 실험’에 나선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와인 상품군을 앞세워 발길이 뜸해진 소비자를 다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롯데마트는 대형 와인숍을 통해 소비자 1인당 평균매입액(객단가)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다음달 서울 잠실점 명칭을 ‘제타플렉스’로 변경하고 1층 면적 70%를 대형 와인숍인 ‘보틀벙커’로 바꾼다. 1320㎡의 대규모 와인 매장으로, 4000여 종의 와인을 들여놓을 계획이다. 롯데마트는 ‘보틀벙커에 없다면 국내 어느 곳에도 없다’는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롯데마트 잠실점 1층에는 화장품 꽃 신발 귀금속 등을 파는 잡다한 매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과거 대형마트 전성기 시절 몰려드는 소비자를 노리고 입점한 점포들이다. 그러나 급격한 온라인화로 대형마트의 플랫폼 기능이 떨어지면서 롯데마트로선 이 공간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해 소비자를 다시 끌어들여야 할 필요가 생겼다.롯데마트가 앞세운 것은 급격하게 성장하는 와인 상품군이다. 롯데마트의 와인 매출 증가율(전년 대비)은 2019년 24.7%, 지난해 59.8%, 올해 63.4%(11월 16일까지)로 급증하고 있다. 이에 고무된 롯데마트는 와인 상품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프로젝트W’ 팀을 신설하고 소믈리에 자격증을 소지한 직원들로 채웠다. 호텔 출신 전문인력도 영입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카테고리킬러형 매장을 육성해 소비자를 유입시키겠다는 전략으로, 그 선두주자가 와인”이라며 “고소득 전문직이 많이 거주해 과거 전체 대형마트 중 매출 1위를 기록했던 잠실점을 첫 번째 실험 점포로 택했다”고 설명했다.롯데마트는 보틀벙커를 와인 소비가 많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점포 위주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보틀벙커가 자리잡은 매장은 객단가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롯데마트의 계산이다. 현재 3만6000원 수준인 잠실점의 객단가를 7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롯데마트는 와인과 함께 리빙 전문점인 ‘룸바이홈 랩(Lab)’도 잠실점 2층에 배치한다. 지난달 폐점한 유니클로가 쓰던 공간이다. 롯데마트는 룸바이홈 브랜드를 집중 육성해 향후 롯데마트 로드숍으로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선 롯데상사가 40%의 지분을 보유한 무인양품 대신 룸바이홈을 택한 것을 두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주’ 같은 브랜드를 육성한다는 롯데쇼핑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 대표는 “지금까지의 다운사이징 기조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장에서 공격적인 모습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