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등 소설가로서 한국 문단에 큰 족적도 남겨
펜과 행동으로 사회변혁 실천한 고(故)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
지난 5일 별세한 송기숙 전 전남대 명예교수는 일생을 민주화에 헌신한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고(故) 송기숙 교수의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가 잘 드러난 사건은 1978년 이른바 '교육지표 사건'이다.

교육지표 사건은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 데 반발해 당시 송 교수를 포함한 11명의 교수가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한 것을 말한다.

당시 교수들은 인간 존중의 교육, 교육자의 양심에 의한 교육, 외부간섭 배제, 구속 학생 석방, 3·1정신과 4·19 정신 계승 전파 등을 다짐했다.

이 사건으로 교수 11명은 모두 해직됐고, 송 교수는 구속됐다.

이 사건은 당시 학생들 위주의 반유신·반독재 투쟁에 지식인 계층인 교수들이 참여함으로써 학생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광주지역 학생운동 세력이 크게 성장했다.

고인은 교육지표 사건과 관련해 2013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당시 고인은 치매기로 생년월일, 주소 등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알지 못하는듯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당시 송 교수의 부인은 "세월이 너무 흘러 무덤덤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 중 변호사 수임료를 제외한 전액 7천여만원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전남대는 이러한 숭고한 뜻을 기려 고인을 '후광학술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고인은 교육지표 사건으로 해직 후 1년간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 소작쟁의를 소재로 한 소설 '암태도'를 집필하기도 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학생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내란죄를 적용받아 다시 10개월간 복역했다.

1984년 대학에 복직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았고, 1996년에는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를 설립해 초대 소장을 맡았다.

이후 광주·전남정치개혁시도민연대 상임대표를 맡아 시민 사회활동을 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 직속 문화 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했다.

고인은 소설가로서 한국 문단에 큰 족적도 남겼다.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한 '녹두장군'을 비롯해 '백의민족', '휴전선 소식', '오월의 미소' 등 분단의 현실을 아파하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작품을 다수 세상에 남겼다.

유신과 군부독재 시절 해직과 투옥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굴복하지 않고 펜과 행동으로 사회변혁 운동을 벌인 것이다.

전남대 관계자는 6일 "고인은 평생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나라 민주화에 헌신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