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로만 연 120억원 벌며
쇼핑객 수백명 줄 세웠지만
무리한 확장·자금운용에 추락
백화점·아울렛 직영점 17곳 폐점
가맹 위주 운영·M&A 가능성도
압구정, 청담 등 서울 강남 부촌(富村) 주민들의 ‘정모’ 장소로 인기가 높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5층 식당가. 점심 때만 되면 식당마다 대기 인원이 넘쳐나는 이곳에서도 정중앙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던 곳이 팥빙수 매장 밀탑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여기서 밀탑의 ‘밀크빙수’ 맛은 볼 수 없다. 현대백화점·아울렛에서만 17개 직영점을 운영하던 밀탑이 지난달 말 매장을 모두 폐점했기 때문이다. 5일 텅 빈 밀탑 매장 앞에서 만난 김모씨(55)는 “밀탑 빙수를 먹기 위해 일부러 쇼핑 장소를 현대백화점으로 선택했는데 아쉽다”며 발길을 돌렸다.
‘빙수 전쟁’에 출혈 심화
밀탑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전성기에 팥빙수로만 연 매출 120억원을 찍었던 프리미엄 빙수의 대명사였다. 다른 재료 없이 얼음, 팥, 연유, 떡 등 최고 품질의 ‘핵심’만 넣은 밀크빙수는 강남 부자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여름 대기 줄만 수백 명에 달해 백화점 매장(MD) 개편 시즌만 되면 재계약 여부가 백화점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정도였다.분위기가 바뀐 것은 2010년대 중반이 가까워지는 시점이었다. ‘눈꽃빙수’를 앞세운 설빙 등 전문 빙수 프랜차이즈 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졌다. 밀탑이 선점하고 있던 프리미엄 이미지는 신라호텔의 애플망고 빙수 등 호텔 빙수들에 잠식당했다.
그 결과 밀탑은 2015년부터 순손실을 기록하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2019년 반짝 순이익(5억원)을 낸 것을 제외하면 매년 적자가 이어졌다. 2015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뒤 악화한 재무구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식당가의 한 직원은 “밀탑의 경영난은 코로나19 영향이 아니다. 회사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잦은 경영권 손바뀜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 직원의 얘기는 대체로 사실에 가깝다. 외식업계에선 “밀탑의 쇠락은 시장 환경 급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맛에 천착했던 초심을 잃은 게 가장 큰 이유”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시장 환경 속에서 무리한 확장과 자금 운용으로 쇠락을 자초했다는 것이다.밀탑 창업주 김경이 씨와 아들 라모씨는 1%대의 지분만 남기고 2016년 데일리금융그룹에 경영권을 넘겼다. 창업주로부터 밀탑을 인수한 데일리금융그룹은 벤처기업 수십 곳을 사들이며 ‘벤처연합’을 자처했던 옐로모바일의 자회사였다. 이 회사는 인수 후 회생을 위해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2018년 경영권을 유조이그린홀딩스로 넘겼다.
밀탑은 지난 8월 코스닥 상장사 멜파스 지분을 주식담보대출을 받아 인수해 최대주주에 올랐지만,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반대매매를 당해 1대 주주 지위를 잃었다. 이후 다른 주주들과 멜파스 경영권을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처지다.
밀크빙수 맛 다시 볼 수 있을까
밀탑은 지난해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 동행으로부터 “총부채가 총자산을 32억원 초과해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감사의견을 받았다. 이는 창업주인 김씨와 아들 라씨가 빌린 돈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씨는 연예 매니지먼트사 대표를 맡고 있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김씨와 라씨는 밀탑으로부터 2013년 총 78억원을 빌렸다. 이후 지난해를 제외하고 매년 밀탑에서 2억~31억원을 빌려왔다. 지난해 말까지 갚지 않은 돈은 약 40억원이다. 밀탑이 이들에게서 받지 못한 이자도 10억8000만원 수준이다. 빌린 돈 중 회계법인이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예상한 돈(대손충당금)은 27억3000만원으로 잡혀 있다.
밀탑은 출점 시 자금 부담이 큰 직영 대신 가맹사업 쪽으로 방향을 틀 방침이다. 또 다른 인수합병(M&A) 가능성도 남아 있다. 한 외식기업 관계자는 “밀탑은 브랜드 인지도가 아직 상당해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기업이 일부 있다”며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면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