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폰 히펠 지음
김정아 옮김
한국경제신문
384쪽│1만8000원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친화력’이 생존의 필수 요소였고, 인간은 남에게 친절하도록 진화했다는 주장이 최근 늘고 있다. 지난 7월 국내에 출간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가 그랬고, 최근 출간된 《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 심리학과 함께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인류의 진화 과정을 살펴본다.
약 6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은 울창한 열대우림에서 동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바나로 이주했다. 인류 진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광대한 초원에서의 삶은 개인주의적 생활에서 협력적인 생활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오스트랄로피테신은 협업으로 자신들을 보호하도록 진화했다. 이어 호모 에렉투스는 느슨한 협업을 분업으로 확장했다. 그 결과 나타난 상호 의존 덕분에 ‘사회 지능’이 탄생했고 우리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지구에서 인류의 지위를 영원히 바꿔 놓은 진화가 이뤄진 것이다.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협력 본성은 뇌가 놀랍도록 진화할 기틀을 마련했다. 우리의 사회성은 개개인을 더 똑똑하게 만든다. 지식과 계산 능력을 어마어마하게 향상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두뇌를 다른 사람의 두뇌와 연결했다. 그 결과 인류는 사바나에서 자신을 사냥했던 포식자를 오래전에 넘어섰다.
인간은 이전에 베푼 호의에 보답할 목적으로만 협력하거나, 협력한 대가를 나중에 돌려받으려고 협력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냥하고 다정하고 너그러운 사람, 협력 자체를 즐겨서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너그러운 사람은 실제로 이용당할지라도, 길게 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 너그러운 사람은 인색하거나 타산적인 사람보다 더 평판이 좋다. 진화가 이런 압력을 행사한 결과, 우리는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도움을 베풀어 협력하도록 진화했다. 경제학자들이 협력의 밑바탕에도 이기심이 있다고 본 것과 달리, 인간이 순수한 이타심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실험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과 협력하거나 무리를 배신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실험에서 참여자들은 배신보다 협력을 선택했다. 배신이 합리적인 선택일 때마저도 그랬다. 생각할 시간 없이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협력을 고르는 사람이 많았다. 저자는 협력 본성이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책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가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동맹을 유지하고자, 힘을 모아 모험에 나서고자, 또 누군가의 손에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자 조상들은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법을 배웠다. 남의 행동을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타인의 사고방식과 목적을 아는 것이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때 사회관계를 조율하고 분업을 끌어내기가 쉬워진다. 인간은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또 이해받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무례한 동료 때문에 화가 치솟을 때, 자기의 감정을 몰라주는 배우자에게 더 화가 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이 남을 돕도록 진화했다면 왜 투쟁과 배신, 억압이 발생하는 것일까. 통계를 보면 폭력은 계속해서 줄어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 인간은 집단끼리는 협력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으로, 제대로 된 증거 없이 끼워 맞추기식 설명을 남발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주장과 근거가 엄밀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