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곳곳에 빨간 벽돌건물 대구의 '진짜 역사'를 걸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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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브릭 로드’를 걷다
역사적 건축물, 선교사 주택과 화교협회
브릭 로드의 출발점인 화교협회는 1929년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서양식 주택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252호다. 대구 지역 부호였던 서병국이 당시 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국 건축가 모문금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겨 건립했다. 벽돌은 평양에서 구워 오고 나무는 금강산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화교협회 바로 앞 건물은 화교소학교인데, 마치 차이나타운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가운데 스윗즈 주택은 마르타 스윗즈 여사를 비롯해 계성학교 5대 교장인 헨더슨, 계명대학장을 지낸 켐벨 등의 선교사들이 살았던 집이다. 서양식 주택에 한국식 서까래와 한식기와를 이은 박공지붕이 인상적이다.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내부 구조가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대구의 초기 서양식 건물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스윗즈 주택 북쪽 정원에는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자손목이 자라고 있다. 1899년 동산병원 초대 원장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3개 품종의 사과나무 72그루를 들여와 사택 뜰에 심어 키웠으며, 이 중 미주리 품종만 자라 동산의료원 주변으로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로 알려졌다.
챔니스 주택 건물 양식은 당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풍으로 꾸며져 있다. 대구의 개신교 선교사와 당시의 건축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게 하는 중요한 건물이다. 지금은 1900년대 전후의 동서양 의료기기 등이 소장된 의료박물관으로 꾸며져 근대의학의 발전과정을 엿볼 수 있다.
선교사 주택 중 가장 남쪽에 있는 블레어 주택은 붉은 벽돌로 된 굴뚝이 있고 건물 내부엔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 있다. 1900년대 미국의 방갈로풍에 가까운 주거 건물로 현재는 조선시대의 서당과 1960~1970년대의 초등학교 교실 등을 재현해 놓은 교육·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천주교 역사 한눈에…신학교와 성모당
브릭 로드의 또 다른 축은 계산성당을 비롯한 천주교 유적지다. 계산성당은 서울 명동성당과 평양 관후리성당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이다. 고딕 양식의 외관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알록달록한 빛이 매혹적이면서도 성스럽게 느껴진다. 대구본당 초대 주임 로베르 신부는 1899년 지은 십자형 기와집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자 1903년 11월 두 개의 종탑을 갖춘 고딕 양식 벽돌 건물로 다시 지었다. 명동성당처럼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인데 명동성당 설계자와 인부들이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이런 역사성 때문이다.
대구 천주교회 초대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가 건축했으며, 1917년 7월 착공해 1918년 8월 15일 완공했다. 성모당은 교구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쪽에 넓은 마당이 있고 북향으로 세운 붉은 벽돌 구조의 건축물이다. 성모당 외관은 화강암 기초 위에 흑색 벽돌로 각 모서리의 버팀벽과 수평띠를 이루고 있다. 나머지 벽면은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각 부의 비례 구성이 아름답고 벽돌 짜임이 정교하다.
대구=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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