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전 '훼손' 이유로 대여 꺼렸다가 지금은 '영구 보존' 위해 NFT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대표 소장품이자 국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로 제작하겠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현대미술 작품을 대상으로 했으나, 훈민정음이 국가지정문화재 중 처음으로 추진되면서 미술계와 문화재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국보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주장과 문화재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지난 22일 훈민정음 해례본을 개당 1억 원, 100개 한정 NFT로 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주요 원칙 네 가지를 제시했다.

원칙은 훈민정음을 디지털 자산으로 제작해 가치를 계승하고 세계적 문화재로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다.

또 훈민정음의 '독점적 희소성'을 전 국민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간송미술관 운영·연구·홍보 기금을 마련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무가지보'(無價之寶·가격을 매길 수 없는 보물)로도 불리는 훈민정음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사들였다.

한글 창제 목적과 문자 운용법, 해설과 용례를 붙인 귀중한 서적으로, 소재지와 상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간송미술관이 24년 전에는 '훼손' 우려 때문에 정부가 영인본(복제본) 제작을 위해 요청한 훈민정음 원본 대여를 꺼렸다는 점이다.

1997년 정부는 '문화유산의 해'와 세종 탄신 600돌을 맞아 간송미술관에 원본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이전에 나온 영인본과는 다르게 원본과 다름없는 책을 만들어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설득했으나, 간송미술관은 영인본 제작 시 해체 과정에서 훼손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당시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훈민정음 원본을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손상이 따를 수밖에 없는 영인 작업을 굳이 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훈민정음 영인본에 강하게 반대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016년 영인본 판매에 참여했다.

재단이 기획하고 교보문고가 제작을 맡은 영인본은 빛바랜 종이의 질까지 되살린 최초의 복간본이었다.

제작 수량 3천 부, 가격은 25만 원이었다.

NFT 추진 이전에도 상업화 사례는 있었던 셈이다.

사물을 NFT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이미지를 확보해야 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NFT를 어떻게 만들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으나, 원본을 촬영한다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미 훈민정음 복제본 제작 과정에서 찍은 디지털 파일을 보유하고 있다"며 "NFT는 이 파일을 이용해 만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이 보유한 국보는 해외 반출이 허용되지 않지만, 국내에서 거래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사유 재산이므로 현재 상태를 변경하거나 훼손하지 않는다면 문화재를 활용한 영리사업을 해도 국가가 제지할 수는 없다.

문화재청은 훈민정음 원본을 촬영하지 않더라도 국보의 NFT 제작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지난해에도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보물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내놓았다가 논란을 자초했다.

간송 컬렉션이 경매에 나오기는 처음이어서 큰 화제가 됐다.

각각 시작가 15억 원에 출품된 불상은 유찰됐고,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들였다.

가격은 총액 30억 원을 넘지 않는 수준이라고 전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유물 구매가는 공개하지 않는다"며 "대금은 한 번에 치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와 올해 수장고 건립과 비지정문화재 보존처리를 위해 64억 원을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지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정확한 재정 상황을 알지 못한다"며 "내년에는 간송 측과 관련해 신청된 예산이 없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