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전범들의 사후 신격화 가능성을 우려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또 발견됐다.
아사히신문은 23일 태평양전쟁 BC급 전범 사형수 시신을 일본 측에 인계하지 말고 화장해 바다에 뿌리라는 지시내용이 담긴 문서를 니혼(日本)대학의 다카자와 히로아키(高澤弘明) 전임강사가 입수해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 등 A급 전범 사형수 7명의 시신이 화장 후 바다에 뿌려졌음을 보여주는 미군 문서는 다카자와 강사가 입수해 지난달 일본 언론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이번에 같은 취지의 BC급 전범 관련 문서가 확인된 것이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다카자와 강사가 비밀지정이 해제된 뒤 찾아낸 이 문서의 제목은 '처형된 전범 매장·묘지등록에 관한 최종 처분 및 방침'이다.
1948년 8월 3일 자로 연합군총사령부(GHQ) 및 미 극동군 최고사령관을 겸하고 있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명령으로 극동군 산하의 미 육군 8군과 필리핀 주둔 미군에 전달됐다.
이 문서에는 처형한 전범의 시신은 화장한 뒤 유골을 바다에 버리고, 이미 매장한 전범 시신은 조속히 수습해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가 생산된 시점은 일본 요코하마와 필리핀 마닐라에서 포로나 주민 학대 등 통상의 전쟁범죄를 저지른 BC급 전범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고, 일부의 사형이 집행되기도 한 시기였다.
또 침략전쟁을 기획하거나 시작한 수뇌부인 A급 전범들이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받고 있을 때다.
A급 전범 7명의 사형 집행은 1948년 12월 23일 0시쯤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서 이뤄진 뒤 당시 미8군 사령부가 있던 요코하마로 옮겨져 화장됐다.
화장 후 수습된 유골은 전범의 묘가 신성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요코하마 동쪽 48㎞ 태평양 상공에서 뿌려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사히신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본 측에 시신을 넘기지 말라'는 내용을 포함하는 BC급 전범 관련 문서를 통해 전쟁 미화에 전범 유골이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미군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엿볼 수 있지만 BC급 전범 재판이 연합국을 구성한 7개국이 각지에서 진행해 미 극동군의 산골 지시가 100% 이행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BC급 전범 유골을 수습해 간 사례가 여러 건 보고됐다고 한다.
BC급 전범재판에서 일본의 군인·군속(군무원) 신분으로 사형당한 사람은 920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조선인 148명도 포로 학대 등의 혐의로 B·C급 전범으로 재판에 넘겨져 23명이 사형대에 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