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하는 미적분학의 요체는 복잡함이다. 디지털 물류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자 비유로 미적분을 얘기한다. 20살 이후 수학을 끊은 인문학도로서 미적분을 함부로 정의하긴 참 민망하지만, 지식 백과에 나와 있는 미적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변화를 분석하는 도구’다. 김 의장은 물류센터에 흩어져 있는 수백만개의 상품을 소비자의 주문이 오는 즉시 하나의 상자에 합(合)포장해, 당일 저녁이나 다음날 새벽에 문 앞까지 배송해주는 일의 복잡함을 미적분으로 설명하려했던 것이다. 김 의장이 최근 1982년생 유정범 메쉬코리아 대표와 의기투합해 퀵커머스 전문 플랫폼인 V마트를 설립했다. 김 의장이 휴대폰 개발, 참나무 숯 장사, 유기농 유통 등 산전수전 다 겪고 소프트웨어 기업인 지어소프트를 설립한 게 1998년이다. 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기업인은 만나자마자 서로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오아시스마켓이 빠른 배송의 권역을 좀 더 확대하기 위해 빅데이터에 기반한 3자 물류를 구현해주는 메쉬코리아에 일감을 제안했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아예 공동 플랫폼을 만들자는 쪽으로 사업 논의가 확장됐다. 두 기업인을 모두 만나본 사람으로서 처음 V마트 합작 소식을 듣자마자 무릎을 쳤다. “4차원들끼리 뭉쳤구나”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빠르게 스쳤다. 여기에서 말하는 ‘4차원’은 초(超)공간이라는 우주물리학에서 말하는, 존재하지만 3차원의 시공간 개념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한다. 물론, 4차원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관습적 언어 개념도 들어 있다. 괴짜 혹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을 지칭할 때 우리는 ‘4차원 같다’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
유 대표는 김 의장과는 배경이 사뭇 다르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파이낸셜 이코노믹스를 전공했다. 부친의 장례식날 조화를 분주하게 나르던 퀵배달 운전기사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부릉’이라는 오토바이 배송 플랫폼을 만들었다. 성격도 김 의장과는 정 반대다. 김 의장이 스스로를 드러내길 극도로 꺼려하고, 늘 똑같은 티셔츠에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전형적인 ‘토종’이라면, 유 대표는 말끔한 정장 차림에 유학파라는 것을 강조하듯 말끔하게 빗어넘긴 헤어스타일로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해명하려는 류의 기업인이다.
짐작컨데, 김 의장과 유 대표가 서로 ‘코드’가 통한 단 하나의 지점은 복잡함에 대한 집착과 이해일 것이다. 유 대표는 ‘자유 연상’의 대가다. 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작용을 통해 복잡한 디지털 물류를 현실화시킨다. A라는 자원을 갖고 시작했다가 B를 만나면 B만 해결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B를 A-1로 전환해 자신의 자원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메쉬코리아는 도심물류센터(MFC)를 비롯해 오토바이와 차량을 보유하는 동시에 고객사들이 그냥 창고로만 쓰던 물류시설을 메쉬코리아의 물류거점으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물류 역량을 확장한다. 이 같은 유 대표의 사업 방식은 사석에서 그의 말을 가만히 듣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영어 반, 한국말 반을 섞어서 거의 쉴 틈 없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 그의 말을 기록한다면 주어와 서술어가 맞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무슨 말인가 싶지만, 한창 듣고 있다보면 개념과 개념,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면서 발산하는 그의 창의력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오아시스와 메쉬코리아의 만남은 정확히 마켓컬리를 겨냥한 포석이다. 한국에 새벽배송이라는 신개념 물류를 선보인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와 김영준, 유정범이라는 두 ‘괴짜’ 간 치열한 대결이 앞으로 펼쳐질 것이란 얘기다. 신선식품 배송 플랫폼인 오아시스와 생필품 퀵배송 플랫폼인 V마트가 메쉬코리아의 디지털 물류 시스템과 결합해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순간, 마켓컬리는 쿠팡, 이마트 연합군(네이버+이베이코리아+쓱닷컴) 못지 않는 경쟁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김슬아, 김영준, 유정범 대표 모두 빅데이터,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새벽배송 혹은 빠른배송을 무기로 국내 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의 강도는 치열할 수 밖에 없다. 단순 산술로만 봐도 오아시스와 메쉬코리아의 결합은 마켓컬리에 매우 도전적이다. 미국 상장을 포기하고 국내 상장으로 최종 결론을 낸 마켓컬리의 시장 평가 가치는 약 2.5조원이다. 메쉬코리아와 오아시스가 각각 1조원, 75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시장 상황에 따라선 언제든 뒤집힐 수 있고, 둘 중 하나는 도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측면에선 당장 우위를 가리기는 어렵다. 마켓컬리는 이달 초 총 2254억원의 투자 유치를 확정했다. 시리즈 F에 해당하는 이번 단계에서 기존 투자자인 홍콩, 중국의 주주들이 대부분 추가 자금을 넣었고, CJ대한통운과 미국의 밀레니엄 매니지먼트가 신규 투자자로 들어왔다. 오아시스 역시 비슷한 시기에 기관투자형 대형 사모펀드인 유니슨캐피탈코리아로부터 500억원을 신주 발행을 통해 투자받았다. 한때 마켓컬리의 투자자였던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오아시스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메쉬코리아는 네이버, 현대차에 이어 최근 GS홈쇼핑이 휴맥스 등 기존 주주가 갖고 있던 지분 19.53%를 인수하며 국내 대기업들의 간택을 받은 스타트업으로 부상했다.
김슬아 대표는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로 알려져 있다. 마켓컬리에서만 볼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것이다. ‘마켓컬리가 차려내는 한끼’라는 개념으로 마켓컬리가 선보인 식품 큐레이션은 여전히 워킹맘들과 수많은 싱글족들의 필수품이다. 그에게 디지털 물류의 복잡함은 마켓컬리의 진심을 전달할 보조 수단일 뿐이다. 오아시스와 메쉬코리아와는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다. ‘졸면 죽는’ 치열한 e커머스, 퀵커머스의 시장에서 누가 마지막 생존자로 남을 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