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면 '성폭행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와 동거 중입니다'라는 글은 청원 시작 사흘째인 이날 오전 7시 기준 14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글 내용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타고 확산 중이다.
피해자 A(18)씨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저희 집이 리모델링 공사를 할 때부터 친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성추행은 점점 대담해져서 성폭행이 됐다"고 밝혔다.
맞벌이 부모 사이에서 자란 A씨는 한살 터울인 오빠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했는데, 모르는 척 넘겼던 추행은 어느새 성폭행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참다못한 A씨는 피해 사실을 신고했고, 또 다른 추행이 있었던 올 2월에는 자살 시도까지 했으나 부모 뜻에 따라 여전히 가해자와 같은 집에 살고 있다고 한다.
A씨는 "더는 남매가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가 됐음에도 살가움을 요구하는 부모님 밑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라며 "이 사건이 공론화되지 않으면 처참하게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나가야 하기에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하고 청원을 올리게 됐다"고 했다.
A씨는 2019년 6월 피해 사실을 처음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3월 친오빠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으며, 검찰은 친오빠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위계 등 간음) 등 혐의로 올해 2월 기소했다.
친오빠는 A씨를 2016년부터 성추행·성폭행해 온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수사가 2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피해자는 병원, 친구 집, 고시원 등을 전전하기도 했으나 결국 번번이 친오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A씨는 "(신고 이후) 1년 3개월째 가족과 함께 지낸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직후 단기 쉼터에 있던 피해자에게 장기 쉼터 입소를 권했으나 병원 진료 등 스케줄 문제로 자의에 의해 나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정신과 진료를 위해 입원하기도 했으나 "퇴원하려면 부모님 동의가 필요했다"면서 "아빠는 제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퇴원 조건으로 내세우셨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A씨는 국민청원 글에서 "올해 2월에도 오빠의 추행이 있었고 저는 화를 냈지만 부모님은 오히려 저를 꾸짖으셨다"고 했다.
또 당시 A씨가 자살을 시도하며 자해하자 "주양육자이신 아빠가 제 뺨을 두 차례 내리치셨다"고 썼다.
경찰은 올 2월 추행사건에 대해서는 당시 집에 함께 있던 남매의 부친이 강제추행이 아니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A씨는 연합뉴스에 "(공론화 요청은) 처음부터 제가 안전하길 바라고 시작한 일"이라며 "오빠가 반성하고 인정한다면 처벌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처벌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