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부실 감독 책임에…국회 통제권 강화 골자
독립성·중립성 훼손 우려…금융위 책임 간과 지적도
"금감원 스스로의 내부통제는 무너졌다. 금감원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회에서도 들여다보아야 할 때가 됐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수장 자리를 공석으로 둔 지 2개월이 지난 금융감독원에 사모펀드 사태 후폭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감사원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금감원의 부실 감독 책임을 물은 데 이어, 정치권에서 금감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한다. 법안의 골자는 금감원의 금융사 징계권 일부를 금융위로 환원하고, 금감원장 해임 및 예산 권한을 국회에 두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상 금감원의 감독체제를 대폭 축소시키고 모든 사업 운영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이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또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한 금융위원회의 책임을 묻지 않고, 금감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 제2의 사모펀드 사태를 근절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사모펀드 사태에 칼 뽑았다…징계권 넘기고, 예산권 국회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감독 체계의 전면적 개편을 위한 5대 과제'를 공개했다. 금감원의 금융사 제재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윤 의원은 이달 내 관련 법안인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설치법'을 발의한다는 계획이다.법안에는 금감원에 부여된 국내 금융회사에 대한 중징계 이상의 징계권을 금융위로 환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징계권은 금융감독기구로서 지니는 가장 큰 권한 중 하나로, 국내 금융지주 회장직의 연임을 중단시키는 효력까지 발생시킨다.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만큼 징계권이 금융위로 이동할 경우 금감원의 권력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현재 금감원장의 금융위 위원 겸직을 제한하고, 국회가 대통령에게 금감원장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도 도입될 계획이다. 또 금감원의 인력 운용 계획부터 예산의 최종 결산 권한을 국회에 두는 내용도 법안에 담길 예정이다. 지금까지 금감원의 예산권은 금융위가 전적으로 승인해왔다. 실질적으로 국회가 금감원 감독체계의 전 영역을 통제하고 감시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강력한 법안이 추진되는 데에는 최근 감사원이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부실 감독 책임을 적시한 영향이 컸다. 감사원은 지난 5일 옵티머스펀드 사태에 대한 감시 업무 소홀을 이유로 금감원 직원 2명에게 정직, 다른 2명에게 경징계 이상의 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금감원이 여러 차례 옵티머스 사태를 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검사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윤 의원은 이를 두고 "감사원의 결정문은 금감원을 엄중히 꾸짖는 경고문이다. 원장부터 직원까지 금감원 내부에 원인이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금융감독체계의 전면적 개편의 필요성을 촉구한다"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금융권 감독 체계 독립성 훼손 위험…"생태계 악화 요소"
그러나 이번 법안 발의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치권이 금감원의 업무 및 권한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금융감독기구로서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있어서다.특히 금감원장 해임 건의 권한과 예산권 변경으로 금감원의 통제권이 국회로 넘어갈 경우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 금융권의 감독 기준 자체가 흔들릴 여지도 있다. 경제적 합리성이 아닌 정치적 논리가 앞서게 되면 금융 감독 기준의 일관성이 사라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회가 금감원의 해임권과 예산권을 가지는 것은 금융감독 업무 자체가 정치적 판단의 잣대로 휘둘리는 결과를 이끌 수 있다"며 "이는 금융감독기구로서 지니는 고유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해 금융권 전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라고 짚었다.
성 교수는 "금감원 내부에서 일어난 부실 감독에 대한 징계는 철저히 해야 하나, 기관이 가지는 권한을 빼앗는 일이 부실 감독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전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오히려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해 금융감독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적합한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사 입장에서도 반길 일은 아니다. 유권자의 손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권의 논리가 감독 기준의 일관성을 흔든다는 점은 리스크 예측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금융사들의 리스크 관리 비용의 증가는 물론 경영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단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금융감독 업무의 일관성 결여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며 "규정된 기준이 아닌 정권 변화, 대선 등 정치적 이슈에 따라 기준이 변동할 경우 금융사로서는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받게 될 수 있다. 결국 정치적 논리가 감독 기준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는 위험성은 업계에도 결코 좋은 영향이 아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무리한 수준까지 완화한 금융위원회의 책임을 묻지 않고, 금감원에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부과하는 게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는 2015년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한 바 있다. 적격투자자 요건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전문사모집합투자업자 최소자본요건도 4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완화했다. 사모펀드에 대한 사전 심사제도 사후 신고제로 바꿨다.
이에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 원인이 금융당국의 안일한 규제 완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하지만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금융위원장에게 일반투자자 보호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를 요구할 뿐 내부 징계 처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조치를 두고 금감원 내부에서 반발 기류가 형성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사모펀드 사태에서 관련 규제를 크게 완화한 금융위의 책임을 면할 순 없다. 책임 소지를 명확히 하고 규제 완화 관련 스크리닝을 강화하는 것, 완화된 규제를 다시 한번 살피는 작업이 제2의 사모펀드 사태를 예방할 근본적인 방안"이라며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감독기구에 국회의 통제권이 강화되는 것은 정치적인 논리로 잣대가 변할 여지만 남길 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