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일원으로 사과드립니다"…납북어부 재심 무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 사법부가 인권의 보루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재심 피고인들에게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서울고법 형사12-3부(김형진 최봉희 진현민 부장판사)는 29일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7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 박남선씨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무죄·면소로 판결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박씨는 1965년 서해 강화도 인근 함박도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됐지만, 극적으로 탈출했다.

수사기관은 13년이 지난 1978년 간첩 협의로 박씨를 불법 연행했고, 박씨는 당시 경기도경찰국 수사관이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

이씨는 며칠 동안 박씨를 재우지 않고 식사도 굶겼으며, 물고문과 구타를 일삼아 그가 북한과 내통해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공작금을 수수했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이같이 조작·왜곡된 증거를 토대로 박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의 실형이 확정돼 1985년 1월 만기 출소했다.

가슴에는 억울함을, 몸에는 고문 후유증을 지닌 채 살던 박씨는 지난 2006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박씨의 아들은 지난 2019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올해 2월 재심을 시작한 법원은 이날 "피고인이 강화경찰서 등에 불법 체포돼 수사받은 사실이 인정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의 피고인 진술은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970년대 재판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채로 기소된 혐의들은 면소 판결됐다.

면소란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범죄 후 법령이 개정되거나 폐지되는 등 이유로 사법적 판단 없이 형사소송을 종료하는 판결이다.

박씨와 함께 재심이 청구된 박씨의 6촌형도 이날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씨의 아들 박영래씨는 선고가 끝난 뒤 "분단국가에서 우리가 당하는 아픔이지만, 그럴수록 더 이런 판결을 통해 국가의 체질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는 "당사자들한테 사과를 못 받은 게 아쉽지만, 재판부가 대신해 사과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씨 측은 향후 국가를 상대로 불법 구금·고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사법부 일원으로 사과드립니다"…납북어부 재심 무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