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와인나라 롯데백화점 잠실점 점장(42·사진)은 1년에 혼자서 5만 병이 넘는 와인을 판매한다. 가격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30억원어치에 달한다. 와인 판매 경력 20년차인 김 점장이 지금까지 판매한 와인은 약 50만 병. 그가 업계에서 비공인 ‘와인 판매여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김 점장은 16일 “나만의 판매 비결은 손바닥 크기의 작은 수첩”이라고 공개했다. 와인 판매 일을 시작한 2001년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의 특징을 꼼꼼히 기록해오고 있다. 손님의 이름과 나이, 생김새부터 어떤 종류의 와인을 좋아하고, 누구와 함께 와인을 즐기는지까지 손님과 대화하며 들은 정보를 수첩에 꼼꼼하게 적었다. 김 점장은 이 수첩을 보며 다시 매장을 찾은 손님을 기억하고, 맞춤형 와인을 추천해준다.

그는 “손님들은 판매사원이 본인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는다”며 “특성을 기억하고 딱 맞는 와인을 추천해주면 그 감동은 배가 된다”고 전했다. 20년간 모아놓은 ‘고객 수첩’은 이젠 방 한편의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쌓였다. 김 점장은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고객 수첩”이라고 말했다.

손님에게 진심을 다하는 태도는 김 점장의 단골 확보 비결이다. 그는 와인 따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고객 전화에 오밤중에 택시를 잡아타고 손님의 집으로 향한 적도 있다. 김 점장은 “은퇴한 택시기사 부부가 지인들을 불러 모아 와인 파티를 열었는데 와인을 못 따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한밤중에 전화를 했다”며 “늦은 시간이었지만 택시를 타고 가서 와인도 따주고, 두어 시간 와인에 대해 설명도 해줬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연을 맺은 택시기사 부부는 김 점장의 든든한 단골손님이 됐다.

판매여왕이 와인에 갓 입문한 ‘와린이(와인+어린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리스트는 무엇일까. 김 점장은 ‘캔달 잭슨 그랑 리저브’를 꼽았다. 이 와인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마신 와인으로 ‘오바마 와인’으로도 불린다. 그는 “캔달 잭슨 그랑 리저브는 10만원대에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 높은) 와인”이라며 “저가 와인에서 한 단계 눈을 높이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