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승 단국대 교수, 부록 '칠옹냉설'과 함께 현대어로 옮겨
'소외된 땅' 평안도 문학 모은 '서경시화' 번역본 출간
"평양은 한나라 당나라에 부끄럽지 않으니/ 천고의 시선들은 뼈마저 모두 향기롭다/ 풍월은 본디 정해진 주인이 없으니/ 어찌 모두 정지상에게 맡기랴"
고려시대 인물인 정지상은 서경(西京), 즉 평양 출신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유명한 문인이었다.

정지상을 언급한 시의 작자 김점(1695∼?) 역시 고향이 평양이었다.

평양이 있는 평안도는 함경도와 함께 북방을 이루는 땅이다.

조선시대에 평양은 상업 중심지로 번영했으나, 평안도 출신 인사들은 중앙 정계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김점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평안도 인물과 문학을 집대성한 책인 '서경시화'(西京詩話) 서문에서 "지금 사람들이 우리 평양에도 나라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문인이 있다는 말을 갑자기 듣는다면 끝내 믿는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학술 논문을 통해 일부 내용이 알려진 '서경시화' 번역본이 출간됐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가 '시화총서' 일곱 번째 책으로 펴낸 '서경시화, 평양의 시와 인물들'이다.

조선 후기 서북지역 문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가 '서경시화'와 부록인 '칠옹냉설'(漆翁冷屑)을 현대어로 옮겼다.

서경시화는 세 권으로 구성된다.

권1은 평안도 문인을 간략히 소개했고, 권2는 시를 형식별로 뽑아 담았으며, 권3은 작가론과 작품론이다.

저자는 조선 전기 정승 자리에 오른 어세겸과 형조판서를 지낸 이승소의 시에 대해 "당대의 으뜸가는 솜씨"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어세겸의 시와 관련해서는 "기세와 격조를 위주로 하니, 백 번 싸운 건장한 남아처럼 사납고 두렵다"고 평했고, 이승소 시에 대해서는 "곰 발바닥처럼 맛 좋은 음식이니, 시집온 지 사흘 지난 신부처럼 곱고 아름답다"고 칭송했다.

또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 지은 시 "태수여 수레를 재촉하지 말고/ 다시 안개 속에 묵게나/ 달 밝고 하늘에 서리 가득하니/ 새벽 종소리 들어도 기쁘네"를 싣고는 중국 당나라의 이름난 문인 '낙빈왕'(駱賓王) 이상이라고 상찬했다.

장 교수는 서설에서 "서경시화에 등장하는 평안도 문인은 100여 명이고, 인용한 시는 300수가 넘는다"며 "작품 상당수는 다른 문헌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안도 문인들은 이른 시기부터 지역적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유구한 지역문화를 자부했다"며 "조선시대에 지역의 문화를 정리하겠다는 확실한 목적의식 아래 편찬된 유일한 시화서인 서경시화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전통을 과시함으로써 지역의 위상을 제고하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덧붙였다.

600쪽. 3만2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