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혐오 표현 넘칠 우려…제한하는 법률 정비해야"
"DHC 회장, 장사에서 곤란하니 혐한 글 삭제…반성 안한 듯"
혐한(嫌韓) 시위에 맞서 일본에서 저술 활동을 하는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 씨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표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강력하고 감염되기 쉽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혐한 시위를 억제하는 법률인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이하 억제법)이 3일 시행 5주년을 맞이하는 것을 계기로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야스다는 일본에 헤이트 스피치가 일상화하는 상황을 코로나19 확산에 비유하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가해자 본인은 헤이트 스피치를 하더라도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스스로가 (피해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기류 확산을 막기 위해 "강력한 백신이 필요하다"며 억제법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억제법은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는 이념법이다.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차별을 조장하는 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 등은 억제법을 보완하기 위해 혐한 시위 등에 대해 5만엔(약 51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조례를 시행 중이다.

야스다는 온라인 공간에서 번지는 혐한 콘텐츠에 관해 특히 우려를 표명했다.

유튜브나 구글 등 플랫폼 기업이 차별을 조장하는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트위터 등을 보면 여전히 헤이트 스피치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그는 "이대로 두면 인터넷 공간이 헤이트 스피치로 넘쳐나게 될 것"이라며 "엄격한 규칙이 있어야 하며 인터넷의 헤이트 스피치를 제한하는 법률 정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물의를 일으킨 기업인의 차별 조장 행위도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일본에서는 도쿄증시 상장 기업인 후지주택의 이마이 미쓰오(今井光郞) 회장이 직원들에게 교육자료라며 혐한 문서를 배포하거나 화장품 대기업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吉田嘉明) 회장이 회사 홈페이지에 재일(在日) 한국·조선인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하는 글을 올리는 등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회사의 인지도 등을 고려할 때 "기업 수장이 헤이트 스피치 하는 것은 일반인이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주고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야스다는 분석했다.

그는 "그동안은 길거리에 일부 사람들이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 헤이트 스피치라고 여겨졌으나 대기업 사장이나 유명 기업 사장 등이 당당하게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것에서 이 시대의 분위기가 드러난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요시다 회장은 각계의 비판이 이어지고 지자체와 거래 기업 등이 DHC와의 협력 관계를 단절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나자 문제의 글을 슬그머니 삭제했다.

야스다는 이에 관해 "반성했다거나 (자신의 행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삭제한 것이 아니라 장사 측면에서 곤란하니 삭제한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만약 요시다 회장이나 DHC가 뉘우치고 있다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어떻게 반성했는지를 표명해야 한다"며 "요시다 회장은 아직 차별의 악질성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그 자신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억제법은 처벌하는 조항이 없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혐한 시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식을 형성하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야스다는 "예전에는 헤이트 스피치가 벌어지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며 피하거나 방관했으나 지금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몰려간다.

헤이트 스피치가 예정된 장소에 미리 가서 저지하는 운동도 있다"고 시민 사회 진영이 적극적인 대응으로 법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차별주의들이 멋대로 하도록 놓아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사회 일부에 확실하게 존재한다"며 "거기에서 희망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