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글은 ‘권력자의 언어’였다. 사회주의권에서 최고 권력자에게 붙는 칭호가 서기장(書記長)이나 총서기(總書記)였던 데는 다 나름의 연유가 있었다. 동시에 글쓰기는 억압받는 자, 지배받는 자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글쓰기가 가장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읽기와 쓰기, 좋은 문장을 주제로 사고를 심화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책 세 권이 새로 나왔다. 해당 분야를 오랜 기간 천착한 전문가의 글인 만큼 곱씹는 맛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 근대문학, 횡단의 상상》(김미지 지음, 소명출판)은 일제 강점기 문학인들의 치열한 읽기와 쓰기, 언어적 실험의 여정을 되짚어 본 책이다. 식민지만큼 제국의 권력에 의해 시대적·공간적으로 글쓰기가 제약받는 상황도 없다. 동시에 제국주의 시대만큼 ‘글로벌’하게 사고의 조건이 개방된 환경도 드물다. 이런 모순적 상황 속에서 한국문학은 해외 문학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 과정에서 텍스트와 언어들이 교차하며 다채로운 풍경을 그려냈다. 모국어와 식민 제국의 언어, 서양 각국의 언어는 복잡하게 서로 뒤얽히며 새로운 열매를 맺었다.
외국 문학에 심취하고 상당한 수준의 일본어와 영어 능력을 갖췄던 박태원의 번역 작품에서 드러난 ‘제국어들 사이에 낀 조선어’의 모습, 동시대 중국에서 진행된 문체의 해체를 통한 번역 문장의 실험, 비슷한 듯 서로 다른 한·중·일 삼국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수용사를 살펴보면 한 명의 작가가 탄생하는 데 관여하는 조건이 다양하듯, 일국의 문학이 형성되는 과정도 복잡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천하제일의 문장》(하지영 지음, 글항아리)은 18세기 문인 신유한의 삶을 정리한 평전이다. 조선통신사로 방문해 본 일본의 모습을 《해유록(海遊錄)》에 생생하게 남긴 신유한은 과거에 장원급제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천재였다. 틀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글엔 세상에 대한 냉소와 좌절의 목소리가 거칠게 담겼다. “소년 시절 독서는 양웅, 사마상여 짝하였지만(少年讀書楊馬徒)…(이제는) 세상 사람 다 잘났는데 나 홀로 바보 같다(世人皆賢悟獨愚)”라는 시구처럼…. 시골 출신, 서얼이라는 한계 탓이었다.
지방 말직을 전전하던 그는 참된 정신을 글에 담고자 노력했다. 세상과 불화했지만, 천하제일의 문장을 꿈꿨던 그는 그렇게 꽉 막힌 조선의 문단에 균열을 냈다.
《상당한 위험》(미셸 푸코 지음, 그린비)은 포스트 모던 철학자로 유명한 저자가 문학평론가 클로드 본푸아와 ‘글쓰기’를 주제로 대담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 글을 쓴다”는 푸코의 글쓰기론 정수가 담겼다. 글쓰기의 즐거움과 의무도 같이 논한다.
“말하기가 더는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글쓰기라는 비밀스럽고 어려우며 조금은 위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는 푸코의 말에서 글쓰기의 ‘본질’을 간파하는 대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