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공조 견제? 북한과 '끈끈한 관계' 과시한 중국(종합)

왕이 외교부장, 리룡남 북한 대사 만나 '혈맹' 강조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5일만에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리룡남 주중 북한 대사를 만나 외교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왕 부장은 지난 27일 저녁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리 대사를 접견했다.

이들은 만찬도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 대사가 지난 2월 임명돼 3월부터 활동을 개시한 이후 왕 부장을 따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왕 부장과 리 대사의 만남은 시기적으로 특히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으로 한미 양국이 밀착을 강화하자 중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북한 카드'를 꺼내며 북한과의 '혈맹 관계'를 과시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왕 부장이 "양국의 우의는 외부 침략에 맞서 함께 싸우며 흘린 피가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라며 "보배와 같은 소중한 공동의 재산"이라고 했다고 28일 웹사이트에서 밝혔다.

중국이 한국전쟁을 함께 한 북한의 혈맹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이라고 부른다.

왕 부장은 "중국은 북한에 힘 닿는대로 도움을 계속 주고 싶다"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으로 공헌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리 대사는 "양국 지도자들의 보살핌 속에서 조중(북중) 우호 관계는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

이는 양측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고 화답했다.

그는 "긴밀한 단결"을 통해 "깨지지 않는 견고한 우호 관계"를 만들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마스크를 벗은 채 환한 얼굴로 팔꿈치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연출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화와 외교에 바탕한 대북정책 기조에 합의하고 공조를 다지는 가운데 북한과 중국도 밀착을 강화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왕 부장과 리 대사의 만남으로 북중 양국이 전통적 우호 관계를 과시하면서 정상회담을 마친 한미를 견제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최근 새로 부임한 리 대사를 환대하는 등 북한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9개국 신임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이후 왕 부장과 단독 접견한 것은 리 대사가 처음이다.

지난 7일 북한대사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방중 3주년 기념 사진전이 열렸을 때는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을 비롯해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왕 부장과 리 대사의 전날 회담이 중국 외교부의 발표나 관영 신화통신 등의 보도에 앞서 홍콩 방송사 보도를 통해 먼저 공개된 것도 이례적인데 양측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으로서도 한국과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중국과의 밀착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다.

한 전문가는 "고립 상태인 북한이 '뒷배'인 중국에 기대려 한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왕 부장과 리 대사가 한반도 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이 문제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문 교수는 왕 부장과 리 대사의 만남과 관련해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의 대북 접근법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풀이했다.

또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중국이 참여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중이 이처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은 박지원 국정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북한과의 접촉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나왔다.

중국은 지난 4월 2년간 공석이었던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에 영국 주재 대사를 지낸 류샤오밍(劉曉明)을 임명했는데 이는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재편되는 한반도 정세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도 최근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대북 특별대표로 임명하며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