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학자 그레이스 블레이클리의 책 '금융 도둑'

승자독식의 시대다.

낙수효과는 더이상 없다.

범지구적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영국 경제학자 그레이스 블레이클리는 '금융 도둑'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이런 현재의 상황을 직격한다.

부제 또한 '99%는 왜 1%에게 빼앗기고 빚을 지는가'라며 망설임 없이 소신을 펼친다.

저자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부자와 강자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정치적·경제적 영향을 행사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그들이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뒀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는 자신들의 이득만 챙기는 정계와 재계 지도자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금융 위기는 금융 주도 성장의 종말적 시작이었다.

2007년 이후로 영국은 전에 없이 오랜 기간 임금 정체를 겪어야 했고, 미국 노동자의 구매력도 40년 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일자리는 더 불안해졌으며, 일하는 사람들의 빈곤율도 높아졌다.

투자율 감소와 무너진 기업 신뢰도,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불황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세계적으로 금리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 논리가 사람과 지구를 상대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뽑아내는 것이라면, 금융 주도형 성장은 미래를 도둑맞을 때까지 현재와 미래의 사람과 지구를 상대로 바닥까지 뽑아내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경제 붕괴 전에 폭식을 한 오늘날의 자본주의자들이 이제는 미래의 것까지 바닥내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부모 세대의 빚을 짊어진 젊은이들은 자신의 미래가 그들보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없이 기본적인 생계만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노동자의 희생으로 거대기업과 엘리트의 자산을 불리는 금융화, 즉 금융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며, 그 이윤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짊어져야 할 미래의 부채가 됐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한마디로 금융 주도 성장은 임금 억제와 엘리트에 의한 지대 착취를 전제로 하는 시스템이란다.

이제 의지할 것이라곤 우리 자신이 가진 힘뿐. 그리고 지금은 정치가 경제를 따라잡아야 할 때다.

저자는 "우리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세상을 만들어갈 기술과 자원을 갖고 있다"며 힘을 실어준다.

부자를 뺀 나머지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주는 데 실패했고, 그 생산 양식이 우리에게 소중한 환경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한 금융자본주의 경제에 더이상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저자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규제 강화, 공공 소매금융의 역할 활성화, 노동자 권한 강화와 임금 인상,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국립 투자은행 설립, 세계 경제의 탈금융화 등을 제시한다.

안세민 옮김. 책세상. 372쪽. 1만7천원.
"1%만 배불리는 '금융 주도 성장'의 모순을 끝내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