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 연륜연대학자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출간
220억대 바이올린 진품 논란 17년 만에 푼 열쇠는 '나이테'
현존하는 가장 비싼 바이올린은 1716년산 스트라디바리 '메시아'로 알려져 있다.

비공식적으로 2천만 달러(약 224억원)의 가치를 지닌다는 메시아는 17년간 진품 논란에 휘말렸지만, 나이테로 인해 진품을 확인받았다.

벨기에 출신 연륜연대학자이자 미국 애리조나대 나이테연구소 교수인 발레리 트루에(47)는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부키)에서 20년간 연구 내용을 토대로 나무와 나이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연륜연대학은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학문이다.

책은 이른바 '폴렌스-힐 분쟁'으로 불리는 메시아 진품 논란을 언급하며 처음에는 나이테를 사용한 연대 측정이 오히려 논란을 키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논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메시아는 1939년 영국 옥스퍼드대 애슈몰린 박물관이 런던의 유명한 악기 제작자이자 수집가 집안인 힐 가문으로부터 기증받았다.

60년 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악기 보존 전문가인 스튜어트 폴렌스가 위작 가능성을 제기했고, 양측은 각각 연륜연대학자에게 메시아 제작 연도를 의뢰했다.

양측은 메시아를 제작한 목재의 나이테 폭을 측정하면 바이올린의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을 거로 기대했다.

하지만 힐 가문 측은 가장 최근 나이테가 1680년대에, 폴렌스 측은 1738년을 가리킨다고 서로 다르게 주장하면서 논란은 해소되지 않았다.

저자는 "양측 추정은 바이올린을 직접 보지 못한 채 사진만 보고 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잠정적인 결과에 불과했고 둘 다 정식 과학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았다"며 "이 싸움을 시작으로 나이테를 이용한 악기의 연대 측정이 인기를 끌게 됐고 측정 기술도 더욱 정교해졌다"고 말한다.

책은 2016년 영국 연륜연대학자 피터 랫클리프가 이탈리아 현악기를 대상으로 제작한 표준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해 논란을 끝냈다고 강조한다.

메시아의 나이테 패턴이 1724년산 스트라디바리 '엑스-빌헬미'와 정확히 일치했는데, 엑스-빌헬미는 누구나 진품이라고 인정했기에 메시아의 진품 여부도 확인됐다고 덧붙인다.
220억대 바이올린 진품 논란 17년 만에 푼 열쇠는 '나이테'
저자는 나이테를 이용해 캘리포니아 산불의 역사를 되짚고, 가뭄과 허리케인 등 극한의 날씨와 기후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스위스 산소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해 지난 수 세기의 기후를 재구성하고, 2016년엔 그리스의 핀두스산맥에서 수령 1천75년으로 추정되는 '아도니스'란 이름의 나무를 발견하기도 한다.

저자는 미국 플로리다키스 나무들의 나이테를 통해 허리케인 발생 빈도를 조사한 뒤 나이테가 좁은 해에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해 더 많은 배가 침몰했고, 나이테가 넓은 해에 날씨가 온화해 무역 활동이 활발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를 통해 "나이테가 넓은 해에 무역선을 노리는 해적들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고 주장한다.

또 로마와 몽골의 흥망성쇠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로마 제국이 번창할 때 목재 건축이 활발해져 오래된 숲 대부분이 벌목됐는데, 농업 생산력이 약해지고 전염병이 창궐했다고 주장한다.

몽골은 칭기즈칸이 정복 활동을 하던 1211~1225년에 날씨가 온화하고 비가 넉넉히 내려 풀이 잘 자랐고 많은 기병을 양성할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저자는 벨기에에서 환경공학 석사 중 학위 논문 주제를 정하다가 탄자니아에서 나이테를 연구하는 게 어떻겠냐는 한 교수의 제안으로 연륜연대학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이후 외딴 아프리카 마을과 아메리카, 유럽, 러시아 오지 등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나무와 나이테를 연구했다고 전한다.

또 연륜연대학이 숲과 인간과 기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연구하는 핵심 도구로 진화했다며, 과거를 연구하게 만들고 미래에도 지구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거라고 강조한다.

조은영 옮김. 340쪽. 1만8천원.
220억대 바이올린 진품 논란 17년 만에 푼 열쇠는 '나이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