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1위 절정일 때 코로나19 대유행…꿋꿋한 멘탈
'자전거로 시속 80㎞' 올림픽 향한 이혜진 페달은 '논스톱'
"혼자 타면 시속 60㎞ 중반, 오토바이를 따라가는 유도 훈련 때는 시속 70∼80㎞ 정도 나와요.

"
자전거로 웬만한 자동차보다 빠르게 달리는 이혜진(29·부산지방공단스포원)이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사이클 역대 최초의 메달에 도전한다.

18일 강원도 양양군 양양종합스포츠타운 사이클경기장에서 만난 이혜진은 "동료들과 농담 삼아 '우리가 뭉쳐서 도로를 달리면 과속 카메라에 찍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한다"며 웃었다.

이혜진은 도쿄올림픽 트랙 사이클 여자 경륜에 출전한다.

이혜진은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힌다.

한국 사이클은 아직 올림픽 메달이 없다.

도쿄에서 이혜진이 한국 사이클의 새 역사를 쓸지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미국의 스포츠 데이터 및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회사 그레이스노트는 지난달 이혜진이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딸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헤진은 "아, 진짜요?"라고 했다.

이혜진은 메달 기대를 받는 상황에 대해 "따고는 싶은데, 그렇게 많이 염두에 두진 않고 있다"며 "사람들이 메달 이야기를 해도 깊게 새겨듣지 않고 있다"는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 "전 제 것만 하고, 올림픽에 갈 수 있게끔 준비만 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전거로 시속 80㎞' 올림픽 향한 이혜진 페달은 '논스톱'
2012 런던올림픽에서 경험을 쌓은 이혜진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많은 기대를 받으며 출전했다.

당시 여자 경륜 세계랭킹 4위였던 이혜진은 "메달 한 번 따 봐야지"라는 자신감으로 올림픽에 나섰다.

그런데 2라운드 경기에서 콜롬비아 선수 마르사 바요나 피네타가 넘어질 때 뒤따르던 이혜진까지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불운이 찾아왔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리듬을 잃은 이혜진은 선행 주자들을 따라가지 못해 2라운드에서 탈락, 리우올림픽 메달 경쟁을 벌이지 못했다.

이혜진은 "내가 '안 될 놈'이었구나"라고 생각한다며 당시의 아쉬운 기억을 털어냈다.

그는 "그때 몸도 좋고 기량도 올라왔을 때였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도, 용을 써도 안 되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도 이혜진은 불운한 상황을 맞았다.

2019-2020시즌 이혜진의 기량은 절정이었다.

2019년 홍콩 트랙 사이클 월드컵에서 한국 사이클 최초로 여자 경륜 금메달을 차지했고, 뉴질랜드 트랙 월드컵에서 '2주 연속 금메달'에 성공했다.

2020년 3월 세계트랙사이클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 경륜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사이클 역대 최고 세계선수권 성적이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이혜진은 UCI 세계랭킹 여자 경륜 1위에도 올랐다.

이혜진은 '이변이 없는 한'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 기세였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엄청난 변수가 등장했다.

도쿄올림픽은 2021년으로 1년 연기됐고, 이혜진은 세계선수권 이후 국제대회와 해외 전지 훈련을 모두 취소하고 국내에서만 지냈다.

그러는 사이 이혜진은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내줬다.

2021년 1월 첫 랭킹에서 3위로 떨어진 이혜진은 1∼3위를 오르내리다가 5월 18일자 랭킹에서 6위로 더 하락했다.

절정의 기량일 때 제대로 트랙을 달리지도 못하고 세월만 흐른 것에 대해 이혜진은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어요"라며 "그런 부분은 내려놨어요"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오는 7월 23일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을 둘러싸고 여전히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못 하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이제는 그냥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지'라는 생각이다.

이제 놀랍지도 않다"고 했다.

세계랭킹이 하락한 것에 대해서도 "사실 1위가 된 줄도 몰랐다"며 "세계선수권에서 1등 해서 '레인보우 저지'를 입어야 진짜 1위다.

랭킹만 1위인 것은 의미 없다"고 했다.

'자전거로 시속 80㎞' 올림픽 향한 이혜진 페달은 '논스톱'
웬만하면 크게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이혜진은 "생각이 단순하다"며 웃었다.

박일창 사이클 대표팀 총감독은 "혜진이는 간이 크다.

쫄지 않고 대담하다"며 "외국 선수와 붙었을 때도 자신감이 있다"고 이혜진의 '강철 멘탈'을 칭찬했다.

이혜진은 코로나19로 일정이 중단된 것을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올림픽을 못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쉬움이 크긴 했지만, 수긍하고 나니 '잠시 쉬어가는구나.

좀 더 준비할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깨 관절와순 부상을 앓고 있었던 이혜진은 "오히려 재활하면서 어깨가 더 좋아졌다"며 기뻐했다.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에 대한 부담은 느끼지 않지만, 그는 자신의 활약으로 사이클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혜진은 "어린 여자 사이클 선수들이 줄고 있다.

특히 도로 사이클은 동호인도 많은데 트랙 사이클은 베팅을 걸고 보는 경륜을 떠올리는 분이 많다"며 "유럽에서는 관중을 1·2부로 나눠서 받기도 하는데 우리는 관중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혜진은 자신이 사이클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사이클을 시도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선수층도 확보되면 좋겠다"라며 "나중에는 제가 지도자가 돼서 후배들을 이끌고 싶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혜진이 꿈을 이룰 것으로 믿고 있다.

박 감독은 "메달 기대를 많이 받고 있어서 부담도 많이 느낄 것"이라면서도 "선수가 자신감이 있고 간절함도 있으니 충분히 해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