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서 전시…"승려화가 5명이 함께 제작"
길이가 10m 안팎에 이르는 커다란 삼베나 비단에 부처를 그린 괘불(掛佛)은 야외 법회에 사용하던 불화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문화재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구로 이전한 뒤 2006년부터 해마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이 되면 전국 사찰이 보관하는 괘불 중 한 점을 선보이는 전시를 개막한다.

괘불은 워낙 커서 실내에 걸기 어려운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3층까지 뚫린 공간이 있어 전시가 가능하다.

올해 전시 주인공은 '공주 신원사 괘불'로, 국보로 지정된 중요한 괘불 중 하나다.

이 괘불은 높이가 10m, 너비는 6.5m에 달한다.

무게도 100㎏이 넘는다.

19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이 괘불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664년 계룡산 신원사에서 만들었다.

당시 사찰 이름은 신원사가 아니라 '신정사'였다.

신원사 괘불이 어떻게 제작됐는지는 그림 아래쪽에 남은 기록인 화기(畵記)로 유추할 수 있다.

전시를 담당한 유수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도록에서 "신원사 괘불은 그냥 그림이 아니라 큰 화폭에 신앙의 중심인 부처님을 모시는 일이었기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며 "괘불 조성을 지휘하는 일은 승려들이 도맡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사에 필요한 비용 마련은 덕망 높은 고승이 주도했다"며 이만근 부부와 박의남 부부를 비롯해 신도와 승려 25명에게 시주를 받아 괘불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림은 승려화가라고 할 수 있는 화승(畵僧) 5명이 그렸다.

화승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화기에서 이름이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응열이다.

유 연구사는 "응열은 신원사 괘불 제작 이전에 공주 갑사 괘불, 전의 비암사 괘불 조성에도 참여하며 충분한 역량을 쌓았다"며 "1673년에는 신원사 괘불을 함께 그린 화승 학전, 석능과 예산 수덕사 괘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산 수덕사 괘불을 공주 신원사 괘불과 비교하면 넓어진 폭에 맞춰 보살 위치를 변동하거나 존상(尊像)을 추가한 점을 제외하고는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두 괘불을 그린 승려 집단은 비슷하지만, 제작 과정을 감시한 승려는 다르다"며 "도상(圖像)을 선택하고 상황에 맞게 변용하는 데에는 불사를 감독하는 승려보다 화승의 의견이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유 연구사는 "신원사 괘불은 그림 가운데에 있는 부처가 노사나불인 점이 특징"이라며 "노사나불은 오랜 수행 끝에 부처가 된 보신불"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빛이 전면에 확산하는 것처럼 표현한 것도 독특하다"며 "불교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화승의 타고난 소질을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이어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