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묵직한 사연 하나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사연의 무게와 모양은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힘겹게 인간을 누르고 또 어떤 것은 애써 외면당하며 가슴 깊은 곳에 자리를 트는 등 존재 방식 또한 다채롭다. 공통점은 한 가지. 쉽게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면을 파고든다는 것.그런데 최근 사람들이 줄줄이 사연을 풀어놓는 공간이 생겼다."예쁜 아이가 태어났지만 기쁨도 잠시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 동생. 동굴에서 나오지 못하는 건 네 탓이 아니다", "보석 같은 딸이 곧 항암치료를 시작하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서 이겨내고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오길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딸. 그곳에선 평안하거라", "자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의 미래를 위해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남매 듀오 악뮤(AKMU, 이찬혁·이수현)가 발표한 신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의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들이다. 이 곡은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말한다. 쫓아내지 않고 품으면 예쁜 돌이 된다고, 겁내지 말고 마주 앉으면 찬란한 그림이 된다고 위로한다. 햇빛 뒤에 그늘이 있는 것도 사랑스러운 모습이라고 한다. 가사를 찬찬히 곱씹다 보면 어둡고 무거운 사연이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로 여겨지면서 왠지 모를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꺼내기 시작하면서 댓글난은 서로를 응원하는 공간이 됐다.이번 악뮤의 컴백은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음악의 힘'을 증명한 사례로 평가된다. 강렬한 비트, 화려한 비주얼적 요소가 주류가 된 음악 시장에서 리스너들은 강력한 위로와 연대
시는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때로는 상담실의 긴 설명보다 빠르게 마음 깊은 곳에 닿는다. 신간 <불면의 밤에 읽는 치유의 시 50>은 그 힘을 믿는 책이다.저자 노먼 로젠탈은 계절적 정서장애를 처음으로 규명하고 광선요법을 개발한 미국 정신과 의사다. 그는 50편의 시를 골라 사랑과 상실, 노화와 죽음 등 삶의 대표적인 장면에서 시를 통해 도움받는 방법을 제시한다. 고두현 시인이 번역을 맡았다.이 책은 각 시의 해설에서 화자의 감정 구조를 짚어내고, 여기서 나오는 ‘마음 처방전’을 독자에게 건넨다. 저자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맞이한 독자들에게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의 시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를 권한다. 시인은 세상을 떠난 이가 천 갈래 바람이 되고, 눈송이가 되고, 햇빛이 되고, 잔잔한 가을비가 돼 우리 곁에 머문다고 노래했다. 저자는 “자연의 여러 모습처럼 죽은 이들을 떠올르게 하는 온갖 움직임에 반응해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큰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시를 가장 깊이 즐기는 법도 소개한다. 무엇보다 소리 내어 읽기를 권한다. “소리 내 읽는 행위는 묵독과는 다른 신경, 근육,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체험을 선사한다”는 설명이다. 여러 번 반복해 읽고, 다른 사람의 낭송을 들어보는 것도 시를 약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부정관사(a/an)를 정관사(the)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세상에 널린 수많은 사과 중 하나였던 ‘an apple’이 소설 속에서 의미를 얻는 순간, 우리에게 유일하고 중요한 ‘the apple’이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소설의 힘입니다.”소설가 문지혁이 지난 3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 무대에 올랐다. 올해 소설집 <당신이 준 것>과 장편소설 <나이트 트레인>두 권을 연이어 발표한 것을 계기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약 40명이 참석했다. 신승민 시인 겸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됐다.문 작가는 먼저 소설집 <당신이 준 것>에 수록된 데뷔작 ‘체이서’에 얽힌 비화를 공개했다. 2010년 네이버 ‘오늘의 문학’으로 선정되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과학소설(SF)라는 장르적 특성 탓에 이전 소설집에는 실리지 못했던 작품이다. 그는 “데뷔작을 불태우고 싶어 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15년이 지나 다시 꺼내 보니 나의 시작점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오토픽션(Autofiction)’이다. 자전적 경험과 허구를 결합한 이 장르에 대해 그는 “진실과 거짓을 섞는 행위 그 자체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얼마나 진짜처럼 보이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우리 삶이 특별한 재료가 없더라도 ‘파인다이닝’ 같은 문학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얼마나 특이한 삶을 살았느냐보다, 내 안의 고유한 방식으로 어떻게 서사화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장편 <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