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커셔니스트 박혜지가 15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음악회에서 현대음악 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의 ‘말하는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퍼커셔니스트 박혜지가 15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음악회에서 현대음악 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의 ‘말하는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선곡은 과감했고 연주는 탁월했다. 지난 15~16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음악회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이야기다. 한국 클래식계가 정체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한 무대였다.

공연은 헝가리 음악가들의 곡으로 시작했다. 벨러 버르토크의 ‘춤 모음곡’을 서곡으로 선보인 데 이어 협주곡으로 페테르 외트뵈시의 ‘말하는 드럼’을 들려줬다. 이어 핀란드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평범한 선곡은 아니었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흔히 택하는 베토벤, 브람스 등 독일 클래식 레퍼토리 대신 다양성을 좇았다. 헝가리 작곡가인 버르토크는 ‘춤 모음곡’에 아랍과 동유럽 춤곡을 엮어냈고, 외트뵈시는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 동서양을 아우르는 협주곡을 썼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은 핀란드 민족성을 상징한다. 리듬과 선율 모두 낯설다.

퍼커셔니스트 박혜지라는 숨은 원석을 발굴한 무대이기도 했다. 박혜지는 탁월한 박자 감각을 선보이며 협연을 이끌었다. 그는 타악 연주자여서 독주 기회가 적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유럽에서 떠오르는 차세대 퍼커셔니스트다. 2019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 실력파다. 이 콩쿠르 역사상 처음으로 청중상 등 6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날 공연에선 그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객석이 술렁였다. 무대 위에 놓인 타악기가 낯설어서다. 공연에서 박혜지가 다룬 타악기는 17가지. 세팅하는 데만 7분이 걸렸다. 그는 무대에 올라 동선에 맞게 악기 위치를 조정했다.

북채를 수직으로 세워 북을 두드리며 시작된 연주. 고요함 속에서 박혜지는 포효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와 여흥구를 소리쳤다. 기묘한 음성과 함께 25분 동안 다채로운 타악기 연주를 선사했다.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의 노련함도 돋보였다. 단원들도 처음 접하는 작품이지만 흐트러짐 없이 박혜지를 뒷받침했다. 박혜지는 공연 중간 즉흥 연주도 펼쳤다. 트럼페터와 주고받듯 애드리브를 선보이더니, 냄비와 팬을 손에 쥔 타악 주자 둘을 심벌즈 앞에 세워놓고 타악기 독주를 펼쳤다.

협주곡의 여운도 잠시, 벤스케는 피날레로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을 완벽히 소화해내며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핀란드 출신인 그는 ‘시벨리우스 전문가’로도 불린다.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2013년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음반을 냈을 정도다. 이 음반으로 독일 음반평론가협회상을 받았고, 그래미어워드 ‘최고의 교향악상’을 탔다.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벤스케는 4악장 내내 빠르게 리듬을 타면서도 오케스트라의 균형을 맞췄다. 음색이 서로 다른 금관악기와 목관악기가 조화를 이뤘고, 현악기와도 화합했다.

나성인 음악평론가는 “최근 열린 공연 가운데 최고였다”며 “곡 선택부터 공연 흐름, 연주까지 완벽했다”고 호평했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도 “다양한 문화권이 담긴 레퍼토리를 연주하면서도 한국만의 특징을 살렸다”며 “현대음악을 즉흥 연주(애드리브)로 풀어낸 방식도 인상 깊었다”고 평가했다. 객석 간 거리두기를 위해 1000여 명만 공연을 감상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은 무대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