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프런티어] 멥스젠, 인간 장기 모사칩으로 동물실험 한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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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한 지 2년밖에 안 된 바이오 스타트업 멥스젠은 마이크로 엔지니어 기반의 신약 개발사다. mRNA 백신으로 일약 스타가 된 모더나 창업멤버이자 미국 바이오벤처계의 대부로 불리는 로버트 랭거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공동 창업자로 참여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조지아공대 교수인 김용태 대표(45)는 인간 모사 장기칩 기술과 이를 기반으로 한 신약 개발로 바이오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김용태 멥스젠 대표는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공학도다. 그가 바이오와 인연을 맺은 것은 석사 학위를 받고 7년이 지난 뒤였다. 첫 직장은 현대기아차였다. 신차 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인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업무를 맡았다. 3년 뒤에는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로봇청소기 개발에 참여했다. 삼성전자가 로봇청소기 개발에 막 뛰어든 때였다. 전 세계에 나와 있던 로봇청소기를 직접 사용해보며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서른 살에 바꾼 인생 항로
나이 서른이 되자 김 대표는 인생 설계를 다시 했다. 유학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미국 대학 여러 곳에 입학지 원서를 보냈다. “카네기멜론대 교수가 직접 이메일을 보내와 바이오에 관심 없냐고 묻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생물학은 전공 분야가 아니어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인들은 좋은 기회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죠.”
카네기멜론대로 유학을 간 김 대표는 지 도교수의 권유로 피츠버그대 바이오랩과 공동연구를 4년간 했다. 당시만 해도 피츠버그대는 재생의학연구에서 앞서 있었다. 김 대표는 그곳에서 발생생물학을 처음 접했다. 배아가 어떤 장기로 자라는지 실험하고 관찰하는 일이었다. 올챙이가 되기 전 개구리 알의 줄기세포를 절개해 분화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1㎜ 크기의 티슈(조직)를 10~20시간씩 관찰하는 건 다반사였다.
이런 경험은 김 대표가 미세유체 기반 바이오 생체 약물 분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미세유체 공학기술을 활용해 1㎜ 크기의 동물세포 티슈를 배양하고 약물 주입 조건을 시·공 간적으로 정확히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이전까지는 이런 일을 수작업으로 했는데 부정확했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김 대표는 이렇게 개발한 시스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연구였다. 김 대표의 논문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리며 화제가 됐다. PNAS는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과 함께 톱10에 꼽히는 국 제 바이오 학술지다. 세계적 바이오 석학 랭거 교수와 공동창업
김 대표가 세계적 바이오 석학인 로버트 랭거 교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6월이다. 뉴욕 마운트사이나이 병원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적임자로 김 대표가 랭거 교수 연구실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채용되면서다. 김 대표는 이때부터 미세유체로 나노물질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본격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약물전달에 필요한 나노물질을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 개발이 목표였다”고 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정 기술 확보는 간단치 않다. “똑같은 라면이라도 1개만 끓였을 때와 10개를 동시에 끓였을 때 맛이 달라집니다. 대량 생산이 균질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죠.”
김 대표는 연구 끝에 약물전달 나노물질을 균질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미세유체 채널이라는 특유의 방식을 통해서다. 그는 “기존 연구들 은 미세유체 채널의 장점을 활용해 나노 물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이 기술은 나노물질을 균일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조지아공대 교수가 된 뒤에도 관련 연구를 이어갔다. 연구 성과를 상업화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 선 2019년 8월 멥스젠을 창업했다. 스승인 랭거 교수가 공동 창업자로 이름을 올렸고 에모리의대신경과 교수이자 에모리 알츠하이머 연구 소장인 알랜 레비 교수는 자문역으로 합류했다. 동물실험 한계 넘을 차세대 약물 실험 기술 확보
의약품을 개발할 때 동물실험은 필수코스다. 사람에게 안전성과 효능을 시험하기 전에 쥐 원숭이 등 동물을 대상으로 미리 유사실험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허가당국으로부터 정식 임상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문제는 동물실험이 갖는 한계다. 사람과 동물의 생체 구조가 달라서다. 이 때문에 동물실험에선 뛰어난 효능을 보였지만 정작 사람 대상 임상에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 적지 않다. 반대로 사람에게 효능이 뛰어난 약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동물실험 관문을 넘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개발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사람에게만 걸리는 질병 치료제를 동물에게서 효능을 확인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긴다.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멥스젠의 목표는 동물실험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다. 미세유체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람의 조직이나 세포 구조와 유사한 환경을 구현한 인간 장기 모사칩을 통해서다. 인간과 유사하게 만든 인간화 동물 모델 등을 쓰는 지금의 동물실험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신약을 개발 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인간 모사칩을 통한 실험이 아직까지는 허가당국에서 공인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신약 개발사들에겐 필수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인간 장기 모사칩은 동물모델이 없는 난치병 후보물질에도 적용할 수 있다” 며 “인간만이 앓는 질환인 알츠하이머의 경우 0.8%에 불과한 기존 임상 성공률을 15~20%까지 높일 수 있고 신약 개발 비용도 25%가량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인간 장기 모사칩 시장은 이제 시작 단계다. 시장 규모는 5000만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병원, 진단업체, 제약사, 연구소 등에서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1~2년 뒤에는 시장 규모가 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최초 가역적 조립구조… 대량생산, 실시간 약효 분석이 강점
인간 장기 모사칩 분야의 선두 주자는 미국 에뮬레이터바이오다. 신장, 대장, 폐 등 다양한 장기 조직 모사칩을 개발 중이 다. 이 회사는 칩 표면에 광학으로 회로도를 그리는 반도체 공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리소그래프 기술을 적용한다. 하지만 세포를 칩에 흡착시켜 배양하는 방식이어서 약물이 세포에 정확히 전달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2차원 구조의 한계다. 칩에 사용하는 재료(PDMS)가 약물을 선택적으로 흡착하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가 되지 않고 대량 생산도 어려운 약점이 있다.
멥스젠의 인간 장기 모사칩 플랫폼인 ‘MEPS-X’는 인간 장기와 구조 및 기능이 비슷한 생체 칩이다. 손톱 크기의 플라스틱 칩에 머리카락 두께의 채널이 만들어져 있다. 구조는 마치 플라스틱 블록을 이중으로 쌓은 것 같은 모양이다.
뇌혈관을 모사하는 경우 플라스틱 모사칩 윗부분에는 혈관 내피세포를 2차원으로 배열한다. 아랫부분에서는 별아교세포 등 내부조직 세포를 3차원 공간에서 배양한다. 2차원 세포장벽이 3차원 공간 에서 배양된 세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멥스젠 모사칩의 차별점이다. 실제 인체 내 환경에서처럼 세포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약물실험은 모사칩에 혈류를 생성시켜 최대한 인체와 유사한 환경을 구현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김 대 표는 “실시간 약물 반응 모니터링은 물론 약물 투여량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며 “실험 후 조직검사를 통해 효능을 확인 할 수 있는 기존 동물실험과는 차별화된 다”고 했다.
모사칩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도 이 회사의 경쟁력이다. 그는 “MEPS-X는 플라스틱 사출을 통해 대량 생산하고 기계식 조립으로 생산공정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화학적·광학적 접착 없이 조립과 분해가 가능한 세계 최초 가역적 조립구조를 가진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실험 후 혈관과 조직을 따로 분리해 분석이 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2024년 모사칩 매출 300억 원 목표… 뇌질환 분야는 독보적
세포는 체온과 같은 36.5℃에서 유통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상되기 때문이다. 멥스젠은 모사칩 내 세포 조직을 냉동 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해동해서 바로 쓸 수 있어 유통과 보관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일본 파마코셀도 배양 세포를 냉동 유통한다. 하지만 2차원 세포배양 플레이트에서 배양한 것이어서 생체 모사에 한계가 있고 관류 유동 실험이 안 되는 단점도 있다.
김 대표는 “플라스틱칩만 파는 것보다 모사칩에 세포 모델을 배양해 판매하면 부가가치가 10~15배 높아진다”며 “2024년 께는 1만 개 이상의 세포 배양 모사칩을 판매해 3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멥스젠의 인간 장기 모사칩 제품군은 ‘MEPS-VEB’, ‘MEPS-BBB’, ‘MEPS-NVU’, ‘MEPS-ADM’, ‘MEPS-ANG’, ‘MEPS-TME’ 등 6종이다. 현재 양산이 가능한 MEPS-VEB는 일반 혈관 내세포 장벽 모델이다. 혈관세포를 2차원으로 배양한다. 바이러스, 세균 등이 혈관 내세 포와 반응하는 것을 연구하거나 약물 개발에 쓰는 생체칩이다.
MEPS-BBB는 뇌혈관장벽을 모사한 모델이다. 약물이 뇌를 보호하는 장벽(BBB)을 어느 정도 투과하는지 평가할 수 있다. 뇌혈관 세포와 주피세포, 성상세포를 함께 배양한다. MEPS-NVU는 MEPS-BBB에 신경세포와 미세아교세포를 추가한 뇌 조직 모델이다. 뇌 질환의 발생 연구 및 약물 개발에 활용하는 모사칩이다. MEPS-ADM은 MEPS-NVU에 아밀로이드베타의 축적을 모사한 알츠 하이머 모델이다. 김 대표는 “세계 최초의 양산 가능한 뇌혈관 모사칩”이라며 “세포 배양 후 냉동 보관이 가능한 장점 덕분에 독보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3차원 혈관 생성 모델인 MEPS-ANG와암세포 주변 환경을 모 사하 는 칩인 MEPS-TME는 항암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멥스젠은 세포 배양된 모사칩 판매에 본격 나선다. MEPS-BBB를 비롯해 MEPS-NVU, MEPS-ADM을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 등의 학교, 연구소, 제약 사 등에 조만간 납품할 예정이다. 연구대행 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국내 6개 이상의 제약·바이오 기업과 MEPS-BBB를 활용한 약물 평가 연구 대행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에도 도전장
멥스젠은 신약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다국적 제약사들도 줄줄이 실패해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시장이다.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 중이다. 첫째는 아밀로이드베타의 초기 단계 축적을 예방 하는 것이다. 둘째는 신경 염증 상태의 미세아교세포를 정상화하는 방식이다.
이 회사의 파이프라인 ‘MG-PE3’은 아밀로이드베타가 정상 범위 내에 머물도록 해주는 약물이다. 알츠하이머 예방은 물론 치료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항체 후보물질은 몸속에 축적돼 염증 등을 일으키지만 MG-PE3은 이런 부작용이 없다. 또 뇌 속 수용체들 이 아밀로이드베타를 더 잘 분해하도록 돕는다. 뇌수막 림프관의 기능을 정상화 해 뇌에 쌓인 쓰레기를 청소하는 역할도 한다.
멥스젠은 외부 평가기관에서 약물 효능시험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를 타깃으로 약물을 개발하려 고 한다”며 “내년 하반기에는 임상을 시 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파이프라인 ‘MG-sh19’는 미세 아교세포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지연시키거나 치료하는 신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미세아교세포에 염증이 생겨 증상이 악화 되는데 생체 모방 나노물질을 통해 염증을 줄이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현재 개발 초기단계다.
멥스젠은 개발 속도를 봐가며 MG-PE3과 MG-sh19의 기술이전도 추진할 계획 이다. 김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실험동물의 희생 없이 신약을 개발하는 시대를 열겠다”며 “인간 모사칩 MEPS-X가 과거 실패한 약물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김용태 멥스젠 대표는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공학도다. 그가 바이오와 인연을 맺은 것은 석사 학위를 받고 7년이 지난 뒤였다. 첫 직장은 현대기아차였다. 신차 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인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업무를 맡았다. 3년 뒤에는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로봇청소기 개발에 참여했다. 삼성전자가 로봇청소기 개발에 막 뛰어든 때였다. 전 세계에 나와 있던 로봇청소기를 직접 사용해보며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서른 살에 바꾼 인생 항로
나이 서른이 되자 김 대표는 인생 설계를 다시 했다. 유학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미국 대학 여러 곳에 입학지 원서를 보냈다. “카네기멜론대 교수가 직접 이메일을 보내와 바이오에 관심 없냐고 묻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생물학은 전공 분야가 아니어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인들은 좋은 기회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죠.”
카네기멜론대로 유학을 간 김 대표는 지 도교수의 권유로 피츠버그대 바이오랩과 공동연구를 4년간 했다. 당시만 해도 피츠버그대는 재생의학연구에서 앞서 있었다. 김 대표는 그곳에서 발생생물학을 처음 접했다. 배아가 어떤 장기로 자라는지 실험하고 관찰하는 일이었다. 올챙이가 되기 전 개구리 알의 줄기세포를 절개해 분화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1㎜ 크기의 티슈(조직)를 10~20시간씩 관찰하는 건 다반사였다.
이런 경험은 김 대표가 미세유체 기반 바이오 생체 약물 분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미세유체 공학기술을 활용해 1㎜ 크기의 동물세포 티슈를 배양하고 약물 주입 조건을 시·공 간적으로 정확히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이전까지는 이런 일을 수작업으로 했는데 부정확했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김 대표는 이렇게 개발한 시스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연구였다. 김 대표의 논문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리며 화제가 됐다. PNAS는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과 함께 톱10에 꼽히는 국 제 바이오 학술지다. 세계적 바이오 석학 랭거 교수와 공동창업
김 대표가 세계적 바이오 석학인 로버트 랭거 교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6월이다. 뉴욕 마운트사이나이 병원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적임자로 김 대표가 랭거 교수 연구실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채용되면서다. 김 대표는 이때부터 미세유체로 나노물질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본격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약물전달에 필요한 나노물질을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 개발이 목표였다”고 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정 기술 확보는 간단치 않다. “똑같은 라면이라도 1개만 끓였을 때와 10개를 동시에 끓였을 때 맛이 달라집니다. 대량 생산이 균질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죠.”
김 대표는 연구 끝에 약물전달 나노물질을 균질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미세유체 채널이라는 특유의 방식을 통해서다. 그는 “기존 연구들 은 미세유체 채널의 장점을 활용해 나노 물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이 기술은 나노물질을 균일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조지아공대 교수가 된 뒤에도 관련 연구를 이어갔다. 연구 성과를 상업화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 선 2019년 8월 멥스젠을 창업했다. 스승인 랭거 교수가 공동 창업자로 이름을 올렸고 에모리의대신경과 교수이자 에모리 알츠하이머 연구 소장인 알랜 레비 교수는 자문역으로 합류했다. 동물실험 한계 넘을 차세대 약물 실험 기술 확보
의약품을 개발할 때 동물실험은 필수코스다. 사람에게 안전성과 효능을 시험하기 전에 쥐 원숭이 등 동물을 대상으로 미리 유사실험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허가당국으로부터 정식 임상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문제는 동물실험이 갖는 한계다. 사람과 동물의 생체 구조가 달라서다. 이 때문에 동물실험에선 뛰어난 효능을 보였지만 정작 사람 대상 임상에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 적지 않다. 반대로 사람에게 효능이 뛰어난 약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동물실험 관문을 넘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개발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사람에게만 걸리는 질병 치료제를 동물에게서 효능을 확인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긴다.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멥스젠의 목표는 동물실험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다. 미세유체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람의 조직이나 세포 구조와 유사한 환경을 구현한 인간 장기 모사칩을 통해서다. 인간과 유사하게 만든 인간화 동물 모델 등을 쓰는 지금의 동물실험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신약을 개발 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인간 모사칩을 통한 실험이 아직까지는 허가당국에서 공인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신약 개발사들에겐 필수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인간 장기 모사칩은 동물모델이 없는 난치병 후보물질에도 적용할 수 있다” 며 “인간만이 앓는 질환인 알츠하이머의 경우 0.8%에 불과한 기존 임상 성공률을 15~20%까지 높일 수 있고 신약 개발 비용도 25%가량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인간 장기 모사칩 시장은 이제 시작 단계다. 시장 규모는 5000만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병원, 진단업체, 제약사, 연구소 등에서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1~2년 뒤에는 시장 규모가 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최초 가역적 조립구조… 대량생산, 실시간 약효 분석이 강점
인간 장기 모사칩 분야의 선두 주자는 미국 에뮬레이터바이오다. 신장, 대장, 폐 등 다양한 장기 조직 모사칩을 개발 중이 다. 이 회사는 칩 표면에 광학으로 회로도를 그리는 반도체 공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리소그래프 기술을 적용한다. 하지만 세포를 칩에 흡착시켜 배양하는 방식이어서 약물이 세포에 정확히 전달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2차원 구조의 한계다. 칩에 사용하는 재료(PDMS)가 약물을 선택적으로 흡착하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가 되지 않고 대량 생산도 어려운 약점이 있다.
멥스젠의 인간 장기 모사칩 플랫폼인 ‘MEPS-X’는 인간 장기와 구조 및 기능이 비슷한 생체 칩이다. 손톱 크기의 플라스틱 칩에 머리카락 두께의 채널이 만들어져 있다. 구조는 마치 플라스틱 블록을 이중으로 쌓은 것 같은 모양이다.
뇌혈관을 모사하는 경우 플라스틱 모사칩 윗부분에는 혈관 내피세포를 2차원으로 배열한다. 아랫부분에서는 별아교세포 등 내부조직 세포를 3차원 공간에서 배양한다. 2차원 세포장벽이 3차원 공간 에서 배양된 세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멥스젠 모사칩의 차별점이다. 실제 인체 내 환경에서처럼 세포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약물실험은 모사칩에 혈류를 생성시켜 최대한 인체와 유사한 환경을 구현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김 대 표는 “실시간 약물 반응 모니터링은 물론 약물 투여량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며 “실험 후 조직검사를 통해 효능을 확인 할 수 있는 기존 동물실험과는 차별화된 다”고 했다.
모사칩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도 이 회사의 경쟁력이다. 그는 “MEPS-X는 플라스틱 사출을 통해 대량 생산하고 기계식 조립으로 생산공정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화학적·광학적 접착 없이 조립과 분해가 가능한 세계 최초 가역적 조립구조를 가진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실험 후 혈관과 조직을 따로 분리해 분석이 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2024년 모사칩 매출 300억 원 목표… 뇌질환 분야는 독보적
세포는 체온과 같은 36.5℃에서 유통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상되기 때문이다. 멥스젠은 모사칩 내 세포 조직을 냉동 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해동해서 바로 쓸 수 있어 유통과 보관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일본 파마코셀도 배양 세포를 냉동 유통한다. 하지만 2차원 세포배양 플레이트에서 배양한 것이어서 생체 모사에 한계가 있고 관류 유동 실험이 안 되는 단점도 있다.
김 대표는 “플라스틱칩만 파는 것보다 모사칩에 세포 모델을 배양해 판매하면 부가가치가 10~15배 높아진다”며 “2024년 께는 1만 개 이상의 세포 배양 모사칩을 판매해 3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멥스젠의 인간 장기 모사칩 제품군은 ‘MEPS-VEB’, ‘MEPS-BBB’, ‘MEPS-NVU’, ‘MEPS-ADM’, ‘MEPS-ANG’, ‘MEPS-TME’ 등 6종이다. 현재 양산이 가능한 MEPS-VEB는 일반 혈관 내세포 장벽 모델이다. 혈관세포를 2차원으로 배양한다. 바이러스, 세균 등이 혈관 내세 포와 반응하는 것을 연구하거나 약물 개발에 쓰는 생체칩이다.
MEPS-BBB는 뇌혈관장벽을 모사한 모델이다. 약물이 뇌를 보호하는 장벽(BBB)을 어느 정도 투과하는지 평가할 수 있다. 뇌혈관 세포와 주피세포, 성상세포를 함께 배양한다. MEPS-NVU는 MEPS-BBB에 신경세포와 미세아교세포를 추가한 뇌 조직 모델이다. 뇌 질환의 발생 연구 및 약물 개발에 활용하는 모사칩이다. MEPS-ADM은 MEPS-NVU에 아밀로이드베타의 축적을 모사한 알츠 하이머 모델이다. 김 대표는 “세계 최초의 양산 가능한 뇌혈관 모사칩”이라며 “세포 배양 후 냉동 보관이 가능한 장점 덕분에 독보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3차원 혈관 생성 모델인 MEPS-ANG와암세포 주변 환경을 모 사하 는 칩인 MEPS-TME는 항암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멥스젠은 세포 배양된 모사칩 판매에 본격 나선다. MEPS-BBB를 비롯해 MEPS-NVU, MEPS-ADM을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 등의 학교, 연구소, 제약 사 등에 조만간 납품할 예정이다. 연구대행 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국내 6개 이상의 제약·바이오 기업과 MEPS-BBB를 활용한 약물 평가 연구 대행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에도 도전장
멥스젠은 신약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다국적 제약사들도 줄줄이 실패해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시장이다.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 중이다. 첫째는 아밀로이드베타의 초기 단계 축적을 예방 하는 것이다. 둘째는 신경 염증 상태의 미세아교세포를 정상화하는 방식이다.
이 회사의 파이프라인 ‘MG-PE3’은 아밀로이드베타가 정상 범위 내에 머물도록 해주는 약물이다. 알츠하이머 예방은 물론 치료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항체 후보물질은 몸속에 축적돼 염증 등을 일으키지만 MG-PE3은 이런 부작용이 없다. 또 뇌 속 수용체들 이 아밀로이드베타를 더 잘 분해하도록 돕는다. 뇌수막 림프관의 기능을 정상화 해 뇌에 쌓인 쓰레기를 청소하는 역할도 한다.
멥스젠은 외부 평가기관에서 약물 효능시험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를 타깃으로 약물을 개발하려 고 한다”며 “내년 하반기에는 임상을 시 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파이프라인 ‘MG-sh19’는 미세 아교세포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지연시키거나 치료하는 신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미세아교세포에 염증이 생겨 증상이 악화 되는데 생체 모방 나노물질을 통해 염증을 줄이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현재 개발 초기단계다.
멥스젠은 개발 속도를 봐가며 MG-PE3과 MG-sh19의 기술이전도 추진할 계획 이다. 김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실험동물의 희생 없이 신약을 개발하는 시대를 열겠다”며 “인간 모사칩 MEPS-X가 과거 실패한 약물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