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캇컨템포러리 '삭제의 정원'
갤러리 문을 열면 곧바로 눈앞에 기이한 조각들이 널려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와 녹슨 철골이 드러난 건축물 잔해 같은 것들이 깔려 있고, 동물 뼛조각이나 고대 문자 같은 파편들도 보인다.

깔끔하게 정돈된 여느 전시장과 달리, 조각들은 대부분 쓰러진 형태로 바닥에 있다.

종로구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31일 개막하는 영국 조각가 마이클 딘(44) 개인전 '삭제의 정원' 전경이다.

마이클 딘은 지난 2016년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터너상 최종후보에 오른 작가로, 국내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작업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다.

그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글쓰기로 시작해 이를 낭독, 퍼포먼스, 연극, 사운드, 신체 드로잉, 조각 등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 역시 글로 쓴 문자에 물성을 부여하는 작업의 하나다.

언어를 갤러리 바닥에 놓인 조각으로 구현한 셈이다.

무작위로 흐트러져 있는 듯한 조각들은 사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단어들을 이룬다.

전시장 2층에서 내려다보면 1층 바닥 조각들이 'HAPPY BROKE SADS BONES WITH STICKS AND STONES' 등의 영어 단어로 배열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글쓰기로 작업을 시작해 단어를 조각 등으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라며 "내가 쓴 의미가 있지만, 관람객들은 자신만의 역사와 문화, 눈높이로 작품에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삭제의 정원'은 영국 일포드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 정원에서 시작됐다.

정원에 놓인 콘크리트 조각들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작품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글을 썼다.

그는 조각이 변하는 모습을 '삭제(delete)'로 표현한다.

삭제란 작품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시간 흐름에 따라 잠시 멈춘 조각의 상태를 의미한다.

작가에게 콘크리트 조각은 시간과 언어의 흔적이 축적된 사물이자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영감의 원천이다.

콘크리트나 시멘트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을 물질로 여겨지지만, 마이클 딘은 그것들에 쌓인 시간과 기억에 주목한다.

자갈과 흙 같은 재료는 자연의 흔적을 가지고 있고, 콘크리트에는 광고 전단, 씹다 뱉은 껌 등 인간의 잔해가 쌓여있다.

그의 콘크리트 조각이 혀와 손 등 인간의 감정과 언어를 상징하는 형상을 하고 있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조각 곳곳에는 자물쇠와 책, 테이프 등이 공존한다.

조각들은 대부분 낡고 닳은 질감이지만, 곳곳의 초록, 파랑 등 강렬한 색채가 대비를 이룬다.

작가가 종이에 입맞춤한 자국으로 모래시계 형상을 그린 드로잉 연작도 눈에 띈다.

키스의 순간과 사라지는 시간이 작품에서 교차한다.

작가는 "자가격리 중에 누군가와 친밀감을 나누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 입맞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을 전했다.

5월 30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