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 확진자 서창록이 경험한 세계는 이전에 교수, 학자, 인권활동가, 유엔 인권위원 서창록이 살아온 세계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매 순간 맞닥뜨리는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 앞에서 내가 연구하고 확신을 가졌던 인권에 대한 지식과 신념, 읽고 써온 책들은 한낱 종잇장일 뿐이었다.”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유엔 시민·정치적권리위원회(HRC) 위원(사진)이 저서 《나는 감염되었다》(문학동네)의 머리말에 쓴 글이다. 서 교수는 지난해 3월 HRC 행사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서울 성북구 확진자 13번’이다. 서울 신사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른바 ‘혜택받은 엘리트라는 사회적 지위의 울타리 안에서 별 탈 없이 살아오면서 사실상 인권침해를 피부로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며 “코로나19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인권을 가르치기만 했던 나에게 일상 속의 인권침해 현실을 뼈아프게 일깨웠다”고 말했다.

서 교수가 첫손에 꼽은 코로나19 관련 인권침해는 ‘낙인’이다. 환자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해도 동선과 직업 등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포함해 코로나19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들에 대한 주위의 혐오와 차별은 너무도 크다”고 지적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모두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을 코로나19 감염자에게 ‘너 때문’이라는 혐오로 쏟아버려요. 당사자는 완치 후에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립니다.”

‘내가 자유로울 권리’와 ‘다른 사람이 피해받지 않을 권리’의 충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 교수는 “어떤 권리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방역 대책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나라별로 달라진다”며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재난은 두 권리가 실제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걸 일깨웠다”고 설명했다. “방역도 인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방역을 실천해야 서로가 피해를 받지 않으니까요.”

서 교수는 “한국의 인권의식은 아직까진 그렇게 높다고 보긴 어렵다”며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등에서 빚어진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19 검사 의무화 논란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암묵적인 외국인 차별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벌어지는 아시아계 차별과 혐오엔 분노하면서 정작 국내에선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차별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진정한 배려를 가르치는 인권교육이 코로나19로 흔들리는 공동체를 되살릴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권리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끌어야 해요.”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