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걸을까 동네 한 바퀴
내가 사는 동네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큰 준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무 때나 아무것도 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신발만 신고 집 밖을 나서면 바로 동네 여행이 된다.

안암동에서 한 50여 년을 살았다. 고향도 호적상 고향인 충청도 예산에서 성북구 안암동으로 바꾼 지 오래다. 안암초등학교부터 경동고등학교는 반경 1킬로 안에 있고, 아파트에 가려진 삼선중학교 빼고는 집에서 보면 다 한눈에 들어온다. 범위를 좀 넓히면 뒤로는 개운산, 앞으로는 낙산 성곽과 성북천이 있다. 성북천은 성북동에서 왕십리 청계천까지 연결되어 있다.

쇼핑하거나 외식할 일이 있으면 돈암동 성신여대의 거리로 간다. 골목마다 어릴 적 추억이 있고, 현재 내 삶의 무대이기도 하다. 동네 여행은 공간적 여행이자 추억으로의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안암동, 동선동, 그리고 삼선동 일대의 변화를 보아왔던 나로서는 그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집에서 가장 먼 거리였던 중학교는 직선거리로 1Km,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복개된 개천 위에 있던 아파트가 헐리고, 똥물 흐르던 성북천이 깨끗해진 것을 보고는 마치 하늘이 개벽하는 것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걷다 보면 저 집은 누구네 집이었고, 저기에는 문방구, 중국집이 있었던 자리인데 아는 후배가 하는 식당으로 바뀐 자리도 알고 있다. 추운 겨울에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동네 아저씨가 파는 순두부를, 늘 붙어 다니던 친구와 작고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담겨진 순두부를 호호 불며 먹던 자리도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지난 50여 년간 거의 변화 없이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오던 보문시장이 재개발로 사라진다. 그 안에 있던 중국집 안동장도 이사 가고 두부집도 사라졌다. 그만하면 오래 버텨온 셈이다. 다른 동네는 다 변해도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안암동, 보문동도 변하고 있다. 이제 안암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던 너른 바위가 있는 ‘대광아파트’도 사라진다고 한다. 그럼 그 너른 바위도 흔적 없이 사라질 테고, 후손들은 왜 안암동이 안암동인지를 실체를 만져보지 못한 채, 색 바랜 사진으로만 전해 듣게 될 것이다.

나의 동네 걷기는 주로 아내와 한다. 하루 종일 둘이 붙어 있지만 서로 지루해하지 않는다. 산 너머 다른 동네에 있는 고려대 말고는 우리 동네 안암동 근처에는 특별히 사람을 끌 만한 여행 거리는 없다. 달리 유명한 사람이 나왔다는 전설도 없고, 고작해야 석굴암이 있는 보문사 정도이다. 그저 예전에는 한옥이 많았다고 하지만, 이제는 모두 다주택으로 바뀐 평범한 주택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온,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동네를 지나간 추억을 되새기며 걷는 일은 내 안의 나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결혼 후 몇 번의 이사 끝에 다시 안암동으로 정착한 우리에게 동네 걷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다시 미래로 또는 과거로 마구 움직이는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 걷기라고 해서 늘 가던 길을 가지는 않는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골목도 꽤 있다. 무궁무진하다. 동네 걷기의 가장 놀라운 점은 어렸을 적에는 넓었던 길이 무척 좁게 보이고, 가팔랐던 길이 그저 약간의 경사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는 아무리 뛰어놀아도 끝이 없던 동네였는데, 그저 작은 동네에 불과했네 하는 감탄사를 자주 하게 된다. 이렇게 아내와 성북천이나 낙산성곽 걷기 후에는 삼선시장이나 집 가까운 동네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을 둘이 시키고 소주 한잔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재미가 있다.

이런 재미는 나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19로 갈 곳이 줄어든 한국 사람의 새로운 운동이 된 듯하다. 2020년 10월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올해 성인 1,0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투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2.9%가 “코로나 19로 현재 충분한 신체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신체활동의 감소에 대응하기 위하여 젊은 층 사이에서 ‘동네 걷기’가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의 10월 27일 자 기사에 의하면 인스타그램에 ‘동네 걷기’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1,000개 이상의 게시물이, ‘걷기 운동’은 14만 개가 넘는 게시 글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코로나 19 시대에 사람들이 붐비는 등산로나 헬스장은 피하고 가볍게 동네를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동네마다 걸을 만한 코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방자치제도가 확립되면서 지방정부에서 지역 주민의 복리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 중의 하나로 ‘동네 걷기’ 추구하고 있다. 걷기는 도시를 복원하는 사업에서도 계속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동네를 걷기 좋게 만들고, 걸을 만하게 만들어 보행자들 끌어들이면 지역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그룹에 속해서 용산구 청파동과 강원 홍천군을 걸었던 이유도, 해당 지역의 도시 재생 사업 중의 하나였다.

청파동을 걸으면서 그 동네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이야기들의 접점을 이어가면서 결국은 숙명여대에서 마무리를 하는 길을 만들기였다. 그 과정에서 나의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만리시장’이었다. 청파동에 있는 만리시장은 언덕을 따라 비스듬하게 휘어져 가면서 건물이 지어져 있다. 겉으로 보면 작은 1층 시장 정도로 보이는 데 들어가면 제법 넓고 많은 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이 시장은 원래는 영화 촬영소였다고 한다. ‘오발탄’과 같은 옛날 영화를 이곳에서 꽤 많이 촬영했다는 풍문처럼 시장의 구조가 꽤 크다. 한때 수많은 스타가 오갔을, 그리고 현재도 남아있는 영화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고, 이를 연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만리시장을 취재할 때 수십 년 전에 그 건물 안에서 영화 촬영하던 일을 기억하는 가게 사장님을 만나기도 했었다.

이런 도시 재생 사업은 비단 용산구뿐만 아니라 홍천군이나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다. 생각보다 청파동은 여러 갈래의 길로 이루어져 있고, 그 골목길마다 뜻하지 않은 풍경을 보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서울역과 남산이 시원하게 보이는 전망 지역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그 길의 이름은 ‘청파길’이었다.

용산구에는 이외에도 독서당 길과 같이 많은 길이 있다. 성북구에도 ‘북촌 문화길’, ‘시대의 길’등을 구성했다. 같은 서울시이기는 하지만 역시 동네마다 유별난 생김새가 있다. 성북구는 예스러운 동네로서 도심에서 가깝지만 덜 발전된 느낌의 도시라면, 용산구는 아무래도 외국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 멀리 해외여행도 나름대로의 흥분거리이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동네를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하는 여행도 그에 못지않은 기대감과 만족감을 준다.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는 걷기는 자연을 걷는 것만큼이나 정서적이면서 신체적인 경험이다. 맑은 공기와 멋진 숲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골목 골목에 푸욱 담겨져 있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으며, 동네마다 다른 색깔을 찾아다니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시각, 청각, 후각은 물론이고 발바닥의 신경마저 연결되어 불규칙하게 포장되고 갑자기 생기는 골목의 계단을 걸어가는 동안 때로는 유쾌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쾌해지기도 한다.

사람 사는 동네를 걷는 일은 자연이 주는 흥분이나 안락함과는 달리 동감, 분노, 안타까움, 기대감과 같은 사회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풍기는 의미들이 나의 내면으로 스며들면서 감각은 그에 반응한다. 나그네는 자연만 걷지 않는다. 그냥 기분에 이끌려 발길 닿는 대로, 자동차 달리는 큰 길이든, 갑자기 막힐 것 같은 작은 골목을 흘러가듯이 가보자.

세계 여행자가 아닌 도시 여행자가 되어 막힐 듯이 막히지 않는 도시의 골목, 큰 길, 작은 길을 조합하면서 나만의 길을 조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에 내가 길 이름을 붙이면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럼 그 길은 나의 도시가 된다. 물론 나중에 더 의도적으로 찾아올 수 있게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앱으로 나의 행로를 기록해둘 수도 있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