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과대평가하지 말자 하룻강아지 범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갓 태어난 강아지가 호랑이에 대하여 듣도보도 못했고 자기도 자기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 줄을 모르니 천하를 벌벌떨게 하는 호랑이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다.
내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그런 형국이었다. 나름대로 무역, 중남미 그리고 자동차부품에 대하여 안다고 우쭐대면서 코트라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큰 소릴 빵빵쳤다. 몇 년내에 몇 억을 벌고, 40전에 은퇴를 해서 편안하게 놀고 먹으면서 살겠다고.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뭐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었고, 되는 것도 없었다. 우선 바이어들의 수준을 내가 너무 낮추어 보았다. 내가 아는 바이어들은 이미 어느 정도 큰 규모를 이룬 바이어들이 많았고, 국내의 자동차부품 업체들로부터 비교견적을 받아가 상당히 낮은 가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제 막 수출을 시작한 나는 뜨내기취급을 받아가며 공급업체들이 자기네 마진을 충분히 넣은 가격에다 또 내 마진도 충분히 넣었으니 경쟁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바이어들은 나에게 반드시 주문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온 세상에 ‘나 이제 자동차부품으로 오퍼상을 시작했노니, 해외의 모든 바이어들은 나에게로 오라!’하면 중남미부터 미국, 중동의 바이어들이 쫙 줄지어서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부품을 접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기도 했고, 세상을 너무 몰랐고, 또 거기에 확 뛰어들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하기사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었는 데, 내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나르시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사업을 둘러싼 환경이나 경쟁자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이나 자신이 가진 자원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게 한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본인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상대를 낮게 평가함으로서 낭패를 보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에게 대들었다가 7번 싸움에 지고 잡히고 풀리기를 반복한 ‘맹획’일 것이다. 그는 제갈공명과 싸워서 이길 줄 알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지형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갈공명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 창업자들의 실수는 자신은 사업의 진행 상황에 대하여 충분히 컨트롤을 할 수있다고 하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업을 줄여가는 것은 물론이고 커가는 속도도 어찌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나같은 경우에도 처음 발가락양말을 하면서 1억원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공장의 생산시설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니 1억원은 커녕 그 몇배가 들어가고도 결국은 모자라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우선 일단 시작은 검소했지만, 해외에서 양말의 주문이 예상보다 빨리 늘어남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생산능력을 맞추려면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되었다. 그렇다고 해외 바이어들에게 주문을 줄이거나 늦추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주문을 줄이라고 하면 결국 내가 받지 못한 주문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되고, 난 그 바이어로부터는 주문을 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내가 할 수있는 최선은 가능한 한 유럽 발가락양말의 시장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오래 지속하기를 바라면서 한동안은 내실을 기할 수있는 기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뿐이었다.
이처럼 장사를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에 대한 과대평가하는 것 또한 사업을 실패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자원이라 함은 물적자원 (공장설비, 건물, 토지, 원자재등), 금융자원 (부채, 자본, 현금등 기업의 자금 차입능력과 내부 자금의 운용가능성), 무형자원 (특허권이나 저작권등 기술자원과 기술인력, 브랜드 이미지), 인적자원 (잘 훈련된 종업원, 사장의 인맥등) 이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자원중 경쟁기업에 비하여 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져가주는 것을 기업의 핵심역량이라고 한다. 핵심역량은 경쟁자들이 흉내를 내기 어려우면서 최종 제품에 대하여 소비자들이 느끼는 편익이 매우 높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 자기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물적자원은 일단 투입되면 활용이나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다. 판매시설의 인테리어, 생산시설의 기계나 공장등은 현상을 유지하기에는 적합하지만, 뭔가를 개선하려면 반드시 추가 투입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시설 교체를 할라치면 거의 그 값어치는 감가상각을 넘어서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장부상으로 몇 억이 있다고 하여 그게 몇억을 유지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유형의 물적자원은 그나마 장부상으로 평가기준이 있지만, 무형자원은 그야말로 사장이 얼만큼 평가하고 싶어하는 가에 달려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착각하기 쉬운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내가 보아온 몇몇 사람들은 기존의 제품에 약간 또는 매우 다른 디자인을 적용하고는 그게 마치 자신을 구해줄 구세주일 것처럼 기대에 들뜬다. 한때 한국을 물론, 세계 신발시장을 석권할 것같은 마사이신발을 예로 들자. MBT가 마사이신발로 기능성 신발의 돌풍을 일으키자 유사한 제품들이 무척 많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보아온 수많은 회사들의 거의 모든 마사이신발이 똑같은 경우가 없었다. 기존의 마사이 신발이 뒤쪽이 둥글었다면, 앞쪽이 더 둥글게 만들었다거나 앞과 뒷부분을 비슷하게 둥글게 만들거나 하는 식으로 나름 차별화를 이루면서, 그 차이에 대한 특징을 침튀기면서 설명을 한다. 문제는 디자인이라는 게 너무 복제하기 쉽다는 점이다. 특허를 말하기는 하지만 특허도 마케팅용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소기업비즈니스에서 특허란 별로 보호받지 못하는 허울뿐인 경우가 너무 많다. 사실 구멍가게 수준의 중국업체들이 한국에서 좀 된다하면 마구 복제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 디자인이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할 수있어야 비로소 나의 확실한 자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지, 제품의 모양을 조금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그게 핵심자원은 아니다. 하지만 그 한두가지에 집착해서 세월보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고, 나도 그러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많이 한다.
이처럼 뭔가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뭔가를 이룬 상태에서 자신의 성과물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이다. 스웨덴의 가구회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케아(IKEA)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케아가구의 특징은 조립식으로 소비자가 각 제품의 부품을 사서 스스로 조립하게 함으로써 가구판매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보관료를 줄이고, 인건비를 절약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가구를 공급한다. 한편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거의 다 만들어진 조립품이기는 하지만,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이런 걸 만들었어, 난 정말 대단해, 그리고 이건 정말 튼튼하고 멋진 디자인이야. 집안에도 잘 어울려.’라고 하면서 그 가구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다.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가 갈만하지만, 더 심한 것은 그 가구를 남들도 당연히 좋아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구에 대한 가치를 과도하게 부여하면서 집착을 하게된다. 그래서 이케아효과는 자기가 만든 것에 대한 과대평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집착의 정도는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갈 수록 커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수많은 연구결과들을 보면 사람이나 기업이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이 보인다. 그 결과로 흔히 말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공의 함정’이다. 이는 과거의 성공 전략이나 경험에 사로잡혀 급변하는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성공을 되씹다가 결국은 몰락하는 현상이다. 기업이 이 성공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1) 기업이 성장을 거듭하던 과거의 경험에 집착해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2) 파악했다 하더라도 과거의 전략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 의도적으로 변화를 외면하고 준비를 하지 않을 때, 3) 과거 기업의 성공에 주도적 역할을 한 조직 구성원들이 새로운 전략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힘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의 전략만을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불패를 믿어버릴 때 성공한 기업은 스스로의 함정에 빠진다. 이는 자신들의 과거 전략이나 경험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사장을 만나보면 누구든지 자신의 성공시대가 없었던 사람은 오히려 드물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30대 초반에 아주 큰 성공을 하였다. 그 나이에 이미 상당히 큰 아파트에 온갖 최신 가전제품을 갖추어 놓고 살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와 연락이 되지 않기 시작했고 소식이 묘연해졌다. 그렇게 사라지는 경우 거의 대부분 하는 일이 되지 않아서 일 것이라고 추측을 해서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4-5년 후에 시내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나와 그는 둘이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며 지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은 너무 어렸을 때 성공을 하였는 데, 주변에서 그에게 충고를 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자만해져서 자기 마음대로 이것저것을 벌리다가 결국은 무리수를 두어 사업을 접게 되었다는 한탄스러운 회고였다. 나 역시도 너무 ‘필맥스’라는 이름에 집착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회사를 말아먹은 사람들 두 부류로 나눈다면 애초부터 장사가 되지 않았던 사람과 기존의 사업을 성공시켜놓고 뭔가를 더 추구하다 망한 사람이다. 그리고 후자는 대부분 자기가 해왔던 것에 대한 자만심으로 상황판단이 어긋난 경우가 많다. 말은 쉽지만, ‘성공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도 어렵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무시한다.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것에 비하여 지나치게 자신감이 강하다거나 미래를 크게 말한다. 허풍쟁이, 뻥쟁이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자기에 대한 사탕발린 자화상이 자신감을 갖게 하기는 하지만, 너무 설탕을 많이 바른 사람들이다. 자기에 대한 과대평가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는 항상 위기의식을 가지고, 내가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하여 객관적 평가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언제나 내 것보다 좋은 제품이 있을 수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추구해야 한다.
과대평가, 결국 자기의 미래를 저평가하게 되는 길이다.
사진출처 : http://konzo.tistory.com/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