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도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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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 길을 간다
난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외국어대 박철총장이 번역한 완본은 이전에 읽었던 어느 돈키호테 동화보다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풍차를 거인이라고 생각하면서 달겨나갔다가 처참한 패배를 당하는 장면이 특히 실감났다.
그리고 김훈이 쓴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이 귀양에서 풀려나 조선 수군을 돌아보니 달랑 12척뿐인 것을 보고 선조에게 전의를 가다듬는 편지를 쓴다.
‘전하, 저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아옵니다.’
아주 달라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정상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이 볼 때 둘 다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볼만한 장면이다. 둘 다 이길 수없을 것처럼 보이는 싸움을 시작하면 돈키호테는 졌고, 이순신은 이겼다. 다른 사람이 보면 대부분의 소기업 사장들도 돈키호테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순신이라고 볼 만한 소기업사장, 아니 이순신처럼 대담하다고 평가받을 사람이 몇 이나 있겠나?
그럼 왜 돈키호테는 지고, 이순신은 이겼을까? 그 것은 돈키호테는 자기가 미쳤다는 것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적이 거인이 아니라 풍차라는 것도 몰랐다. 이에 반해서 이순신은 자신은 이미 왜군과 싸워 항상 이겨본 적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자기도 알고, 적도 잘 알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돈키호테이고, 내가 생각하기엔 이순신이라고 생각하는 게 구멍가게 사장들이다. 하기사 그 정도의 착각도 없이 ‘사장’할려고 하는 사람은 무척 담대하거나,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다.
그럼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것은 바로 자기의 목표 ‘둘시네아 공주와 결혼, 구국충정)을 이루겠다는 무모할 정도의 추진력이다. 구멍가게 사장들은 성공하면 이순신이요, 실패하면 돈키호테라고 평가받는다.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새로운 사업은 규모가 얼마나 될지, 그리고 성숙기의 성과는 얼마나 어떨지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 시점에 보아서는 너무 하잘 것없고,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요즘의 사업을 시작해서 5년이내 살아남을 확률은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10%가 안되는 데, 그런 일을 하겠다고 시작하는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구멍가게 사장이라고 대접도하지 않지만, 그래도 높게 평가해준 사람이 있다. 피터 드러커이다. 그가 말하는 ‘기업가 세상’이란 바로 돈키호테같은 구멍가게 사장이 많아야 앞으로의 세상이 더욱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기업가’는 생산성과 수익성이 보다 낮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으로 이동시킨다.”고 세이가 말했다. 그럼 기업가들의 행동양식은 어떨까? 기업가는 기존의 것을 좀 더 잘하는 것보다는 뭔가 다른 것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특히 경제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즉, 기업가는 현상을 뒤집고 해체한다는 말이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떻게 해야할이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기업가 정신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기업가 스스로가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할 ‘작업’이다. 기존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리고 그 것들 가운데 꽤 많은 중규모의, 대규모의, 매우 큰 규모의 기업들이 기업가, 혁신가로서 성공한다는 사실은, 기업가 정신과 경영혁신은 규모에 상관없이 어떤 기업도 달성할 수있을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 정신과 경영혁신을 실현하려고 하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들은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배우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가적 기업은 기업가 정신의 발휘를 의무로 받아들인다. 기업가적 기업은 기업가 정신에 대해 원칙을 세우고, 애써 단련하고 실천한다.
‘내가 회사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은 바로 나의 경영전략이다. ‘왜 사업을 하고, 어떻게 사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서있어야 한다. “영속하는 위대한 회사들은 자신의 핵심가치와 목적은 보존하면서, 사업 전략과 운영관행은 변화하는 세계에 끊임없이 적응시킨다. ”
지금 내가 운영하는 필맥스의 핵심가치는 ‘가족’이고, 목적은 ‘영구한 가족기업의 설립’이다. 이는 다만 우리 가족만이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필맥스를 같이 운영하는 핀란드의 PULKKA 가족, 공장을 운영하는 배사장 가족, 미국의 KRIS 가족, 독일의 김사장님 가족 모두이다. 그 가족기업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10년이 넘어서도 협력을 하고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 것은 구매자와 판매자간의 이해상충이 있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우면서도 아직도 같이 사업을 같이하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내의 거래에서도 10년이 넘기가 어려운 데, 외국의 기업들과 생산업체를 아우르는 기업공동체는 전례가 없었다. 거래를 하면서도 현재의 이익보다, 다음 세대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거래방식은 분명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 면에서 많은 사람들은 ‘필맥스’를 키워가는 우리를 돈키호테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순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