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에서 '오메가'를 품다.
2013년 첫 산행, 영험하다는 산, 검단산으로 낙점했다.
세속적 표현을 빌리자면 기도빨?이 잘 먹히는 산이란다.
그래서 새해 첫날이 되면 한 해 소망을 기원키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새벽 5시 10분 쯤, 산 들머리인 애니메이션고교 앞에 도착했다.

산 들머리 해장국집들은 산에 올랐다가 내려올 손님들을 위해
일찌감치 불을 밝혀 놓았지만 날씨 탓에 대목 보긴 글러 보인다.

현장에 배치된 교통경찰은 산객들이 타고 온 차량들을 정리해 주느라 생고생이다.
날이 날인 만큼 한시적으로 노변 주차를 허용한 탓에
도로 가장자리는 이미 차량들로 빼곡했다.
평소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현충탑에 이르는 길은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쌓인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운데다가 다시 눈발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산아래 날씨는 독하게 매서워 온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눈송이는 목화꽃이 되어 밤하늘을 수놓는다.
목화꽃 흩날리는 몽환적 가로등 길은 현충탑에 이르러 끝났다.
검단산에서 '오메가'를 품다.
검단산에서 '오메가'를 품다.
이제부터 깜깜한 산길이 시작된다.
아이젠을 신발에 걸었다. 랜턴도 켰다. 눈발은 더욱 거세어졌다.
어차피 해돋이 볼 확률은 제로라는 사실을 알고 온 터라 시간에 맞춰 오를 이유는 없다.
그래서 정상까지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코스인, 애니메이션고교, 현충탑, 샘터,
깔딱고개를 지나 산 정상에 이르는 등로를 택했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해돋이 산객들로 북새통이었을텐데… 산길은 비교적 여유롭다.
검단산의 해오름 예정시간은 07시 45분, 산 정상에 닿은 시간은 06:50분.
검단산에서 '오메가'를 품다.
눈발 흩날리는 산 정상은 孤島와도 같다.
거세진 눈발은 매서운 칼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흩날렸다.
다수 산객들이 동쪽 두물머리 방면을 향해 저마다 두 손 모아 소원한다.

산에서 많은 자양과 동력을 얻어온 우리는 산의 품에 안겨
꿈과 이상 그리고 희망을 찾고자 소원한다.
묵은 해를 넘기고 새해를 맞이할 때 특히 그러하다.

하남시 동쪽 한강변에 우뚝 솟은 검단산은 발아래로 두물머리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새로운 소망을 품고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며 소원을 빌기엔
더할 나위 없는 명소다.

한겨울 이른 새벽, 혹한을 무릅쓰고 정상에 올라 선 모든이들 가슴 속에
영험한 검단산의 기가 양껏 전이되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영험한 산의 힘을 빌어 주문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더불어 살고 싶은 세상을 위하여…
검단산에서 '오메가'를 품다.
채 10분을 정상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눈보라가 볼살을 에일 듯 매섭게 몰아쳤다.
눌러쓴 비니(방한용 니트모)엔 내린 눈이 꽁꽁 얼어 붙고
턱끝까지 올려 입은 재킷엔 입김이 서려 얼어 붙었다.

하산은 북서쪽 능선을 따라 두물머리 전망데크를 지나 유길준 묘역,
베트남 참전탑, 애니메이션고교 방향을 택했다.
들머리에서 정상을 찍고 둥글게 돌아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겨울철엔 대개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삭풍이 매서운데 오늘은 동풍이다.
능선을 걷는 내내 동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오른쪽 뺨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하산 내내, 오르는 산객들과 교행하느라 걸음은 더뎠다.
해오름을 볼 수 없는데도 일출시각이 가까와지자, 꼬리를 문 산객들이
연신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정상으로 향했다.

매년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오면, 북풍한설 마다않고
첫 해맞이를 위해 산으로, 바다로 향한다.
저마다 소원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망한다.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또 이루겠다고, 기원하고, 다짐하고, 약속한다.
우리 민족의 해맞이는 祈福적 성격이 짙다.

비록 정상에서의 신비롭고 장엄한 해오름은 볼 수 없었지만
‘오메가’를 닮은 계사년 첫 해는 가슴 속에 오롯이 떠올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