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온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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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라는 말에 픽 웃었다. 그냥 목욕탕이나 온천 아니겠어? 라며 중얼거리고 혼자 전철에 몸을 실었다.
도쿄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사실 소바(메밀국수)가 맛있다는 소문에 찾았던 것이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고 습기 많은 도쿄의 날씨 때문에 역에서 목욕탕까지 걷는데도 온몸이 찝찝했다.
다행이 중간에 만난 작은 연못공원을 보며 도쿄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목욕탕은 한산했다. 시내의 큰 온천처럼 유가타(온천에서 입는 전통 가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입욕료도 고작 870엔(평일 기준).
바로 노천탕으로 나갔다. 작은 정원이지만 아기자기 하게 꾸며진 노천탕에는 일본 사극에 등장하는 1인용 욕조가 별도로 준비돼 있었다.
문득 사카모토 료마가 탈번하며 에도로 가던 중간중간 여관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목욕장면이 떠올랐다.
탕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성질 급한 나뭇잎 몇 개는 이미 단풍을 뽐내고 있었고 맑은 공기의 도쿄 하늘은 마침 매직아워라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었다.(실제 파란하늘은 아니지만 camera eye로 보면 파랗게 찍힐 것이 예측 가능하다)
가끔씩 부는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상쾌함을 경험하며 여러 생각들이 떠오른다.
1. 일본의 바람은 분명 나비들이 만든다.(나비효과) 잔잔했던 날씨가 갑자기 부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기도 하고 이러한 불규칙의 반복은 한국의 날씨와 사뭇 다르다.
2. 이런 치유의 공간에 단체관광객이 들어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 순간 이 목욕탕 71년의 역사적 가치는 사라질 것이다.
3. 이성과 함께 노천탕을 경험하는 게 불가하니 OO친구와 반나절 정도 이탕 저탕 들락거리며 추억을 떠올리다 일본풍 정원이 보이는 식당에서 사케를 반주로 “자루소바” 한 점 입에 넣고 다시 노천탕을 나갔을 땐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목욕을 마치고 식당을 가니 정원이 잘 보이는 창가에 혼자 온 손님을 위한 1인석이 준비돼 있다.
사케 한잔 털어 넣고 가마보코(어묵)에 와사비 듬뿍 찍어 입에 넣으니 코끝이 징하다. 눈앞에는 일본 전통정원이 예쁜 조명아래 두 번째 눈 안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젊은 처자가 생맥주에 소바를 즐기면 책을 읽고 있으며 몸을 씻는 공간이 아닌 “치유의 공간“임을 느꼈다.
가끔 한국에서 지인이 오면 여러 가지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온천을 잠깐 들러 맥주한잔 하고 탕에 들어갔다 나오는 게 전부였다.
3년이 지나고 보니 일본인들에게 온천은 남다른 느낌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한나절 쉬면서 술 마시고 목욕하고 낮잠도 자는 “1일 리렉스“다.
영화 “신설국“에서 주인공이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정리해 니이가타 유자와 온천에 방을 잡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장면을 보면 일본인들의 이승 최고의 천국은 “온천에서 빈둥거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もちろん私も。
[일본 온천 잡담]
– 아는 여자후배에게 일본여성들도 타올로 주요 부위를 가리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일본의 남탕에서 일본인과 외국인을 구별하는 방법은 타올로 주요부위를 가리는지 여부로 구분된다.
나름 이유를 따져보니 일본은 “한국식 맛사지“라고 해서 여성들이 남성들의 때를 밀어준다. 특히 지방의 경우 욕탕 관리를 여성 종업원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 샴푸 등 비품을 채우려고 남탕을 수시로 들어오며 간혹 그녀들에게 스캔을 당하는 일도 있다.
– 노천탕에 나가면 타올은 탕 안에 넣어서는 안 된다. 머리 위에 올리거나 탕밖에 놔두는 것이 에티켓이다.
– 도쿄 근교 닛코나 하코네를 가면 1인당 숙박요금이 1만5천 엔에서 3만엔 정도가 보통이다. 일본의 비싼 인건비도 있겠지만 손님이 체크아웃 하면 솜을 다시 트는 작업이 반복된다. 새로 튼 솜이불에서 하룻밤 자고 났을 때의 그 상쾌함을 경험면 숙박비 비싸다는 생각이 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