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연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AP통신 등 외신매체는 ‘성완종 파문’을 상세히 타전했고 이 파문은 인선과 국정운영에 있어서 부패와 투명성 부족이라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파장은 확산되어 대한민국을 불신의 나라로 만들었다.
‘돈을 건낸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리스트에 의혹이 제기된 인물은 하나 같이 “증거가 나타나면 현 위치에서 물러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파문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과연 현대 정치에 진정한 리더는 있었던가? 이 대목에서 진정한 리더를 찾는 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서로 권력을 가지고 싸우는 정쟁(政爭)과 각종 이권을 챙기는 욕망이 대한민국을 뒤 덮고 있다. 이젠 일상화 되었고 식상하다 못해 구역질까지 난다.
사마천의 <사기>에 소진이라는 인물이 있다. 어느 날 소진은 누군가 자신을 헐뜯어 연왕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진은 연왕을 찾아가 다음의 얘기를 들려준다.
“어떤 사람이 먼 지방에 가서 남의 밑에서 관리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남편이 없는 사이 다른 자와 간통을 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올 때가 다되어가자 정부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걱정하지 마시오, 내 이미 독약을 탄 술을 장만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사흘 뒤 남편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내는 첩을 시켜 독약이 든 술을 남편에게 올리게 했습니다. 술에 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첩은 그 사실을 말하려 했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다간 자기 주모가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말을 안했다간 주인이 죽게 되니 이래저래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첩은 일부러 넘어지면서 술을 쏟아버렸습니다. 화가 난 남편은 그녀에게 50대의 매질을 가하라고 명했습니다. 첩은 한 번 쓰러져 술을 엎지르며 위로는 주인을 살리고, 아래로는 주모가 쫓겨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매질은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니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는 그녀에게 어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신의 불행도 이 일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이 얘기를 듣고 연왕은 소진에 대한 오해와 화를 풀고 소진을 원래 직위로 회복시키고 전보다 더 융숭하게 그를 우대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전체 국면을 내다보지 못하는 군주들과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수구세력들에게 이 얘기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소진의 얘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 소진이 자객의 칼에 찔려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제왕은 속히 범인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권력층의 비호를 받은 정략적인 암살이었기에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소진은 제왕에게 다음의 비책을 알려준다.
“신이 죽거든 큰 죄를 지은 죄인인 양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저잣거리에 돌리며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반역을 꾀했다‘고 하십시요. 그러면 신을 죽인 자를 틀림없이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왕은 소진의 말을 따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진을 찌른 자객이 제 발로 자수해 오는게 아니겠는가?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의 소신과 기지를 유감없이 보여준 소진의 근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오늘날 불굴의 의지로 좌절을 딛고 역경을 헤치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리더는 많다. 하지만 성공과 사리사욕에 취해 비극적인 삶으로 결론짓는 리더도 많다. 사뭇 정치인이라하면 도덕과 실리 사이의 모순, 인심과 세태의 천박함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를 바로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통해 그런 리더가 탄생되길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by. 정인호 박사 / VC경영연구소 대표(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