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연의21회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유비가 조조에게 의탁하고 있던 때였다. 유비는 의심 많은 조조로부터 해를 당할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채소밭을 일구어 채소를 기른다. 유비의 아우인 관우와 장비가 유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화를 내며 말한다. “유비 형님은 천하의 대사에는 관심을 두시지 않고 소인들의 하찮은 일이나 배우고 계시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러자 유비가 그들을 달래며 말한다. “이건 두 동생들이 알 바가 아니네.”

그러던 어느 날 조조가 유비를 떠보려고 후원으로 초청을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한바탕 소나기를 몰고 올 듯 돌풍이 거세게 불어왔다. 조조가 돌연 당세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면서 유비에게 묻는다.

유황숙께서는 천하는 다 돌아보셨으니 수많은 걸출한 인물들을 만나보셨을 텐데, 지금 세상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유비가 하북의 원소, 회남의 원솔, 강동의 손책 등을 당세의 영웅으로 지목하자 조조는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들은 모두 영웅이 아닙니다. 무릇 영웅이라 하면 가슴에 위대한 뜻이 가득차고, 뱃속에는 뛰어난 모략으로 가득해야 하며, 우주를 끌어안고 천지를 삼키고 토하는 기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오.” 화답하듯 유비가 누가 그런 영웅이겠냐고 묻자 조조는 손가락으로 유비와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지금 천하의 영웅은 바로 유황숙과 조조 두 사람 뿐이오.” 유비는 이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만다.

마침 근처 어디서 벼락이 떨어졌는지 고막을 찢을 듯 엄청난 천동소리가 들려왔다. 유비는 천동소리에 혼비백산한 듯 창백해진 얼굴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여 젓가락을 찾아들고 말한다. “무슨 천동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하단 말입니까?” 조조가 사내대장부가 어찌 천둥소리를 두려워하냐고 핀잔을 주자 유비는 성인이라도 급한 우레와 바람에는 반드시 얼굴빛이 변한다고 했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응수했다. 조조는 마침내 유비에 대해 마음을 놓고 다시는 그를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유비가 채소나 기르면서 소일하고, 천둥번개에 놀라는 유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모두 조조의 의심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렇게 시기를 판단하여 자신을 감추는 모습을 말 할 때 흔히 쓰는 사자성어가 바로 도광양회(韜光養晦)’이다. 자신의 빛난 모습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뜻이다.

이러한 용어는 협상에서 양의 탈을 쓴 늑대(Wolf in sheepskin)’ 전술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belly-up’ 전술이라고도 한다. 일부러 와이셔츠 단추나 넥타이를 삐뚤게 매거나 실수로 테이블의 컵을 쓰러뜨리는 등의 행동을 말한다. 이렇게 행동하면 상대는 협상자를 우습게 보고 방심할 수 있다.

이러한 밸리업 전술은 실제 협상장에서도 자주 활용하곤 한다. 그 대표적인 협상인 베네수엘라 공군기 엔진 리모델링 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국내 업체가 카레라 대통령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카레라 대통령이 배석자 하나 없이 여든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아주 불안한 걸음걸이로 나섰던 것이다. 보통 대통령들은 내용을 잘 모르면 외교적으로 생색을 내기 위해 긍정적 언질을 주는 경우가 많아 한국 대표단은 협상을 쉽게 보았다. 하지만 카레라 대통령은 설명을 다 듣고 조목조목 반박을 하였다. 이에 당황한 한국 대표단은 준비한 모든 것을 발휘하지 못하고 카레라 대통령의 추가 대응에 진을 빼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협상을 할 때는 옷을 단정하게 입는 것이 좋다.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숙련된 협상가는 종종 일부러 허술한 옷차림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유비와 카레라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by.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경영평론가) / www.vc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