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지난 연말에 어느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보여 준 어느 신부의 봉사와 희생에

관한 영화 한 편이나 외국 근로자들의 가족들을 불러 와서 갑자기 만나게 해 준 오락 프로그램 등은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이다.

배울 게 있고 느끼는 게 많아 그런 프로그램이 더 기다려지기도 하고, 그 시간엔 기대감이 높아진다. 주말의 어느 오락프로그램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꾸밈없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지고 노인네들의 희생을 보면서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기도 한다.



성공의 의미와 행복의 느낌을 다르게 해 주는 드라마를 보거나 사건들을 보면서 TV의 효용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재미있고 재치 있는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개그를 보면 기쁨이 샘 솟고,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노력의 흔적이 배어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감동이 밀려 온다.





반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프로그램도 있다.

도대체 저 작품을 만든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저 대본을 쓴 작가는 정말 글 공부를 하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말과 글의 낮은 수준은 고사하고 사건의 전개나 드라마의 구성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일반 가정에서는 상상도 못할 불륜과 사건을 자연스럽게, 마치 모든 가정이 그런 듯이 꾸며 나가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화가 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특히,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아침 드라마나 주말이나 심야에 방송되는 연예인들의 수다는 평화로운 가정의 행복을 무시하고, 고매한 한글의 가치를 일부러 깎아 내리는 듯 하다.





뉴스를 전하는 기자도 마찬가지다.

알지 않아도 될 것들, 중요한 뉴스거리지만 국민들이 알면 더 이상해지는 사건사고도 있다. 키스방이 있는 줄 몰랐던 사람들도 그런 뉴스를 보면서 호기심이 생기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모텔이 그렇게 지저분한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설정하여 가족을 해체시키고 사랑을 천박하게 만드는 드라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런 연속극을 보면서 이 땅의 엄마들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대리만족은 느끼지 않아도 행복할 순간은 얼마든지 있다.

혹시 마음의 병이 생기거나 부부싸움이 증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빈부의 갈등을 조장하고 성공의 의미를 왜곡하여 한국의 자살이 증가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해적에게 납치를 당한 배가 풀려 나기도 전에 배가 도착하는 과정을 상세히 알려 주어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의 붕괴를 대비하기 위해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하고, 전략적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까지 세밀하게 전 국민에게 알려야 필요가 있을까 의심스럽다.

자기 집 식구들이 한 도둑질을 스스로 까발리며 대서특필하는 소식을 보면서 어리석기 그지 없고 협상의 기본도 모르는 우매한 관료와 정치인이 가득하다는 우려뿐이다.







상호 견제를 위한 사전 보도도 필요하고,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도 있지만, 끝까지 감추어야 할 체통도 있고 몰라야 할 의무도 있다. 국가 안보를 빌미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든 역사도 있지만, 알 권리를 앞세워 몰라야 할 비밀까지 세상에 다 까발리는 바보들의 협상력은 실로 웃길 뿐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우리나라 국민들을 아주 천박한 미물로 보는 듯 하다.

사회 구석구석이 썩어서 인간으로 존재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무시당하는 것 같다. 잔인하고 쓰레기 같은 사건이나 소식들을 지나치게 상세히 보도하고 알려 주면 좋을 게 뭐가 있고 배울 게 뭐가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전 국민들에게 상처만 주고 국가는 망신만 당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