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마"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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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맙시다.
100년도 되지 않은 55년 전,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을 3년동안 치르면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며칠을 굶고 헤맨 적이 있었어도, 팔다리에 총알이 박혀 흐느적거리는 팔다리를 이끌고 수 백리를 걸어 도망가면서
우리 어른들은 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100년도 되지 않은 1919년부터 36년 동안, 이 좁은 땅을 일본에 빼앗진 채 산에 올라 가 나무껍질을 베껴 먹고, 풀 뿌리를 캐먹고 솔잎을 훑어 먹으면서도,
우리 선조들은 살아 있으려고 죽을 짓을 다 하며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내 조국이 아직 존재하는 겁니다.
수십 년씩 보릿고개를 넘기며, 허기진 배를 움켜 쥐며,
교실바닥에 누워, 미군 차에서 내려 주는 밀가루 빵과 우유가루를 기다리며,
세계 각지에서 보내 오는 담요와 이부자락을 덮어 추위를 견디면서,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이며, 중국 땅을 좁다 하며 전 세계를 돌면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때웠습니다.
썩어 가는 나무를 베어도, 뿌리가 있으면 살아 나려고 애쓰는 나무는 새싹을 돋게 합니다. 병든 가축이나 상처 난 벌레들도 살아 있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작은 흠집이나 상처는 저절로 아물기도 합니다.
만물이 생존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섭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1,800여 년 전,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이,
수 억의 정자 중에 하나가 선택되어 태어난 이 목숨은 수 억년의 기간 동안 보이지 않는 수십 년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 갑니다.
어떤 위대한 철학자나 탁월한 의사라 할지라도, 혼자 잘 난 척 하면서 10년을 버티지 못하는 그 어떤 국가의 지도자라 할지라도,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우주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종(種)의 하나로, 아주 보잘것없는 미물로 존재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죽고 싶지 않아도, 아무리 더 살려고 몸부림 쳐도,
명(命)을 다하면 없어지고, 후세가 그 자리를 이어 받습니다.
그게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만이 자연의 법칙을 거역하는 건가요?
사람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할 권리가 있는 건가요?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무리 힘들다고 하지만,
아무리 하는 일이 잘 되지 않고 돈 벌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어디 죽기보다야 더 하겠습니까?
아무리 많이 배워서 명확한 논리를 갖고 있다고 해도,
아무리 심오한 철학이 있어, 더러운 이 나라 꼴을 더 이상 바라 볼 수 없어서 당장 도망가고 싶고 당장 회피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힘든 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나요?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있나요?
죽고 사는 문제가 논리와 철학으로 변명할 수 있는 건가요?
그 어려운 과거를 살아 오시며 피를 흘리며 이 땅과 민족을 지키고 땅에 묻힌 선조들께서, 멀지 않은 역사 속에 가난했던 할머니 할아버님, 부모님들께서,
자식을 낳아, 손주를 낳아 기르시면서,
살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죽으라고, 언제든지 죽어도 된다고 가르치셨습니까?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고,
버는 돈이 양에 차지 않아도,
살아 있어야 할 이유는 그래서 분명한 겁니다.
누가 자신의 목숨을 자신의 것이라고 했습니까?
자기의 한 몸은 홀몸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국민으로써 지켜야 할 시민의 몸이며,
이 나라를 지켜야 할 민족의 일원이며,
부모로써 자식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인간이며,
우리의 존재는 아주 단순하고 강력한, 동물적 생물학적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하는,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인간의 의무이며 약속인 것입니다.
사고나 병으로 자신의 삶을 본의 아니게 중단해야 하는 안타까움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가난과 시련을 이기지 못해,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지 못해, 당장 죽고 싶고 당장 무너지고 싶고, 도망가고 싶다고 해도, 자기의 존재가 일순간에 사라지는 죽음은 피해야 합니다.
어제, 다양한 전문가분들과 직장인들이 조촐하게 어느 장소에 모여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면서,
최근 “국가의 현주소와 돌아 가는 나라 꼴들”을 이야기 하며, 머지 않은 미래의 암울함을 예측하면서, 슬퍼해야 할 국민으로써의 팔자를 한탄하면서, 단순 무식하고 천박하기 그지 없는 집단을 향해 큰소리 치면서, 탁월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는 시민의 운명을 되 뇌이면서
우리들은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는 말자고, 아무리 어려워도 저절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존재하자고,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죽지 않도록 “죽지 마 운동”을 벌이자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 글을 써 놓을 테니 많이 퍼뜨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약간의 취기를 느끼며 비를 맞고 돌아 온 늦은 밤의 어설픈 감정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경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죽지 마 운동”에 동참하시고 싶다면,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을 힘들어 하시며 자살충동을 느끼는 분들에게 본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그들의 어려운 순간을 연장시키는데 미력한 힘이 될 것 같다면,
이 졸필을 퍼다가 많은 분들께 알려 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100년도 되지 않은 55년 전,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을 3년동안 치르면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며칠을 굶고 헤맨 적이 있었어도, 팔다리에 총알이 박혀 흐느적거리는 팔다리를 이끌고 수 백리를 걸어 도망가면서
우리 어른들은 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100년도 되지 않은 1919년부터 36년 동안, 이 좁은 땅을 일본에 빼앗진 채 산에 올라 가 나무껍질을 베껴 먹고, 풀 뿌리를 캐먹고 솔잎을 훑어 먹으면서도,
우리 선조들은 살아 있으려고 죽을 짓을 다 하며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내 조국이 아직 존재하는 겁니다.
수십 년씩 보릿고개를 넘기며, 허기진 배를 움켜 쥐며,
교실바닥에 누워, 미군 차에서 내려 주는 밀가루 빵과 우유가루를 기다리며,
세계 각지에서 보내 오는 담요와 이부자락을 덮어 추위를 견디면서,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이며, 중국 땅을 좁다 하며 전 세계를 돌면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때웠습니다.
썩어 가는 나무를 베어도, 뿌리가 있으면 살아 나려고 애쓰는 나무는 새싹을 돋게 합니다. 병든 가축이나 상처 난 벌레들도 살아 있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작은 흠집이나 상처는 저절로 아물기도 합니다.
만물이 생존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섭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1,800여 년 전,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이,
수 억의 정자 중에 하나가 선택되어 태어난 이 목숨은 수 억년의 기간 동안 보이지 않는 수십 년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 갑니다.
어떤 위대한 철학자나 탁월한 의사라 할지라도, 혼자 잘 난 척 하면서 10년을 버티지 못하는 그 어떤 국가의 지도자라 할지라도,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우주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종(種)의 하나로, 아주 보잘것없는 미물로 존재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죽고 싶지 않아도, 아무리 더 살려고 몸부림 쳐도,
명(命)을 다하면 없어지고, 후세가 그 자리를 이어 받습니다.
그게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만이 자연의 법칙을 거역하는 건가요?
사람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할 권리가 있는 건가요?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무리 힘들다고 하지만,
아무리 하는 일이 잘 되지 않고 돈 벌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어디 죽기보다야 더 하겠습니까?
아무리 많이 배워서 명확한 논리를 갖고 있다고 해도,
아무리 심오한 철학이 있어, 더러운 이 나라 꼴을 더 이상 바라 볼 수 없어서 당장 도망가고 싶고 당장 회피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힘든 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나요?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있나요?
죽고 사는 문제가 논리와 철학으로 변명할 수 있는 건가요?
그 어려운 과거를 살아 오시며 피를 흘리며 이 땅과 민족을 지키고 땅에 묻힌 선조들께서, 멀지 않은 역사 속에 가난했던 할머니 할아버님, 부모님들께서,
자식을 낳아, 손주를 낳아 기르시면서,
살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죽으라고, 언제든지 죽어도 된다고 가르치셨습니까?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고,
버는 돈이 양에 차지 않아도,
살아 있어야 할 이유는 그래서 분명한 겁니다.
누가 자신의 목숨을 자신의 것이라고 했습니까?
자기의 한 몸은 홀몸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국민으로써 지켜야 할 시민의 몸이며,
이 나라를 지켜야 할 민족의 일원이며,
부모로써 자식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인간이며,
우리의 존재는 아주 단순하고 강력한, 동물적 생물학적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하는,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인간의 의무이며 약속인 것입니다.
사고나 병으로 자신의 삶을 본의 아니게 중단해야 하는 안타까움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가난과 시련을 이기지 못해,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지 못해, 당장 죽고 싶고 당장 무너지고 싶고, 도망가고 싶다고 해도, 자기의 존재가 일순간에 사라지는 죽음은 피해야 합니다.
어제, 다양한 전문가분들과 직장인들이 조촐하게 어느 장소에 모여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면서,
최근 “국가의 현주소와 돌아 가는 나라 꼴들”을 이야기 하며, 머지 않은 미래의 암울함을 예측하면서, 슬퍼해야 할 국민으로써의 팔자를 한탄하면서, 단순 무식하고 천박하기 그지 없는 집단을 향해 큰소리 치면서, 탁월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는 시민의 운명을 되 뇌이면서
우리들은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는 말자고, 아무리 어려워도 저절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존재하자고,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죽지 않도록 “죽지 마 운동”을 벌이자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 글을 써 놓을 테니 많이 퍼뜨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약간의 취기를 느끼며 비를 맞고 돌아 온 늦은 밤의 어설픈 감정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경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죽지 마 운동”에 동참하시고 싶다면,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을 힘들어 하시며 자살충동을 느끼는 분들에게 본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그들의 어려운 순간을 연장시키는데 미력한 힘이 될 것 같다면,
이 졸필을 퍼다가 많은 분들께 알려 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