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행복의 의미를 일깨워 준 맛있는 물 나이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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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기린이 긴 목을 뻗어 과일을 따먹고 오른쪽의 하마가 하품을 할 것 같은 아프리카. 지나가는 차안으로 코끼리가 코를 내밀어 먹을 것을 청하고 저 멀리서 먹이를 잡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치타의 모습이 상상되는 곳. 케냐 마사이족 언어로 맛있는 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도시 나이로비에 설레는 마음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설렘은 곧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짐작은 어느 정도 했었지만 공항의 조악한 시설은 말할 것도 없이, 나이로비의 도로는 민망할 정도로 차가 지나가면 흙먼지를 만들어 냈고, 그 흙먼지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하얀 치아 색만이 선명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 다음으로 발전된 도시라는 나이로비의 이름이 무색했다고 할까.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 사는 기린)
떠나기 전 황열병 주사도 맞고 말라리아 약도 준비하며 온갖 호들갑을 떨어서인지 나의 몸은 이런 열악한 모습의 나이로비에서 으슬으슬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로비는 해발 1,600미터가 넘는 고도에 있어 서늘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가진 자들이 사는 동네와 못 가진 자의 마을이 너무 확연하게 구분되어 어떤 것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몰랐지만 나의 시선은 못 가진 자의 마을로 향했다. 여행이란 반드시 아름답고 좋은 것을 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파리 투어의 묘미는 야생동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하수도 시설이 전혀 없는 세계 최대의 빈민가 키베라(Kibera)에서 내가 누리는 행복의 무게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빈민가가 해외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유명 관광 코스가 되어 버렸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끝이 없는 가난의 대물림과 온갖 질병들. 관광객들은 이들의 가난을 보며 과연 무엇을 느낀단 말인가. 어떤 나라를 가도 잘사는 부자 동네를 보러가는 것이 보편적인데 빈민가를 보러온다는 이 역설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막막했다. 논리적으로는 절대 연결이 안 되는 이런 광경을 뒤로 하자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평생 흘릴 눈물을 이 곳 빈민가에서 쏟은 것 같다. 내가 예수님처럼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마사이마라에 사는 마사이족 청년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맘대로 유린했다. 침략자들이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마구 그어 버린 국경선 때문에 아직도 부족 간의 살육이 벌어지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모습이 이 곳 나이로비에서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실감되다니. 아프리카인들의 피부색보다 더 검은 것은 가난과 기아로 찌들어 가는 그들의 영혼과 마음이었다. 하루 열 두 시간을 차 농장에서 일하고도 고작 1달러를 받는 이 부조리를 누가 만들어 낸 것인지. 맛있는 물인 나이로비의 아름다움을 맛보기도 전에 머리가 무거워졌다. 나이로비는 보는 도시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만드는 도시였다. (세계 최대의 빈민가 중 하나인 키베라)
슬픈 마음을 잠시 뒤로 하고 아프리카 초원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높은 도시 나이로비에서 보는 하늘의 구름은 메시지를 전하는 팬터마임을 하듯 빠르게 움직였다. 사파리 투어에서 직접 봤던 동물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먹고 먹히는 사냥의 연속과 강한 개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초원의 법칙이 아기가 말을 처음 배우는 것처럼 신선하게 느껴졌다.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속고 속이는 치졸한 권력 투쟁이 아닌 정말 솔직한 삶의 현장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나이로비를 느낄 필요가 있다. 맛있는 물이 아닌 눈물의 의미를 되새겼지만 때때로 눈물도 맛있는 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몹시 고무되었던 나이로비의 서늘한 바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