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민변, 2018년 이후 시흥시 과림동 사례 37건 공개
"서울·서산·김해 사는 소유주들…외국인 산 밭은 폐기물 쌓인 채 방치"
"수백만원 이자 내고 주말농장?"…투기 의심사례 보니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 일대 논밭(답·전)이 농민으로 보기 어려운 전국 각지의 사람들에 의해 수억원에 거래돼온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허술한 관리가 투기를 불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시흥·광명 투기 의혹을 처음 폭로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018년부터 올해 2월까지 과림동 일대의 농지 투기 의심 사례 37건을 17일 공개했다.

◇ 외지인 중 '서울 사람' 가장 많아…"농업인 가능성 높지 않다"
농지법상 농지를 가질 자격이 있는 농업인은 1천㎡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 등을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온실·비닐하우스 등을 설치한 사람, 축산업 종사자 등이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민변은 서류상으로 소유한 논밭이 주소지와 너무 먼 경우 투기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충남 서산에 사는 A·B·C·D씨와 서울 강남구에 사는 E씨는 지난해 7월 논 2천285㎡(약 691평)를 12억2천만원에 매입했다.

채권최고액(금융기관 등이 대출금을 보장받기 위해 설정한 권리)이 10억8천만원으로 설정된 것을 볼 때 매입 대금 대부분을 부천축협의 대출로 충당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서산과 서울 어느 지역에서든 단순히 경작을 위해 시흥의 논을 샀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단체들의 의심이다.

이날 공개된 사례에 등장하는 소유자들의 주소지는 서울이 가장 많았고, 경남 김해나 경기 용인·수원도 있었다.

민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농지를 소유하려면 자기 농업 경영을 하는 농업인이어야 하는데 의심이 되는 사례"라며 "위탁경영도 군 입대나 해외 체류, 법인 청산, 공직 취임 등 요건이 있고, 대리경작자가 있다면 시장이 지정해야 하는데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도시 거주민이 주말농장을 운영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상 주말농장은 면적이 1천㎡ 미만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개된 사례 37건 중 면적이 1천㎡에 못 미치는 농지는 6곳에 지나지 않았다.

"수백만원 이자 내고 주말농장?"…투기 의심사례 보니
◇ 20대 후반이 논 1천600평 사들여…"농지 대부분 과도한 대출 의심"
대출금이 눈에 띄게 많은 경우도 18건이나 됐다.

농업으로 낼 수 있는 이윤이나 체험·주말농장의 형태일 가능성 등을 따져볼 때 대출금 이자를 감당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았다.

과림동에 3천869㎡·937㎡·690㎡ 등 도합 1천662평의 논을 소유한 인물은 시흥시에 주소지를 둔 20대 후반 F씨다.

2018년 10억2천500만원에 이 농지를 사들였다.

참여연대·민변에 따르면 채권최고액은 통상 대출금의 1.3배 안팎으로 설정되는데 F씨의 경우는 18억5천900만원이었다.

대출 이자로만 한 달에 수백만원을 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채권최고액을 왜 이렇게 높게 잡았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막대한 이자를 부담해야 할 상황"이라며 "젊은 나이에 부를 축적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토지 취득 경위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대출이 의심되는 18개 필지 가운데 16곳은 채권최고액이 80%를 넘었다.

채권최고액이 통상 대출금의 130% 안팎으로 설정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농지 매입 대금의 상당 부분이 대출로 충당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 단체들의 설명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강훈 변호사는 "이자가 2∼3%만 된다고 해도 최소 월 수십만원 이상의 이자가 발생한다"며 "레저나 주말농장 수준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이 정도 이자를 감당하면서 농업 경영 수익이 제대로 발생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대출을 받은 곳은 대부분 북시흥농협이나 부천축협으로 나타났다.

"수백만원 이자 내고 주말농장?"…투기 의심사례 보니
◇ 중국·캐나다 국적 소유주 땅은 방치·폐기물 처리장
이날 발표된 농지 중에는 농업과 명백히 다른 용도로 이용하거나 오랜 기간 방치한 사례도 4건 있었다.

2개 필지는 소유주 중에 외국인도 포함됐다.

과림동 밭 1천666㎡(약 503평)을 지난 2019년 8억3천만원에 산 G씨는 중국 국적이다.

그는 한국 국적의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농지를 매입했다.

참여연대·민변은 이 땅에 철제 펜스가 둘러쳐진 채 트럭들이 주차돼 있었다고 했다.

캐나다 국적의 H씨는 한국인 1명과 함께 밭 2천876㎡(약 870평)을 2019년 11월 11억8천500만원에 사들였다.

이 농지는 건축 폐기물 처리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민변 관계자는 "실제 과림동을 가보면 고물상과 소규모 제조업 공장이 굉장히 많고, 콘크리트를 논에 부어 업체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불법 용도변경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는 관할 지자체에서 방문만 해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문제"라며 "부실한 관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셈"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