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년 전…한·일 정상 후쿠시마·천안함 묘역 찾았다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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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韓中日정상회의서 천안함 묵념 제안
직접 순직용사 묘소도 참배
MB, 2011년 후쿠시마 찾아
현재는 상대국 정서 대신 국내 정치만 고려
직접 순직용사 묘소도 참배
MB, 2011년 후쿠시마 찾아
현재는 상대국 정서 대신 국내 정치만 고려
“한국의 초계함 침몰 사건에서 46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 한국, 중국 정상 모두가 애도의 뜻을 표했으면 합니다.”
2010년 5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가 시작되려던 찰나, 하토야마 유키오 당시 일본 총리가 이같은 깜짝 제안을 합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곧바로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의향을 물었고 원 총리가 동의합니다. 예정에 없던 10초간의 묵념을 갖고서야 비로소 회의가 시작됩니다.
정상회의가 열린 이날은 민·군 합동조사단과 국제조사단이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는 결과를 발표한 지 불과 열흘 뒤였습니다. 당시 북한은 국제합동조사 결과에 대해 ‘조작극’이라며 크게 반발했고, 각계의 많은 인사들은 물론 야당에서까지 국제 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거리낌없이 제기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최대 우방국이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침묵하던 중국 총리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묵념에 참여한 것입니다. 사전 조율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아닌 일본 총리가 한 제안이었기 때문에 중국 총리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당시 제주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 앞서서는 헬기를 타고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습니다.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참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날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게 “46명의 희생자에 대해 일본 정부를 대표해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합니다. 이 전 대통령도 “오늘 아침 바쁜 가운데 우리 천안함 순국장병 46명이 묻힌 그곳을 직접 찾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화답합니다.
지난 11일 서울 운니동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열린 동일본대지진 10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권철현 당시 주일 한국대사는 “일본 정부가 삼국 정상들이 피해지역을 와서 방문해주고 후쿠시마 이재민들이 있는 피해지역에 들러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당시 중국은 단호히 거절했고 우리 정부도 처음에는 아직 여진이 있고 방사능이 있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권 전 대사는 이 전 대통령에게 하토야마 전 총리의 천안함 묘역 참배를 예로 들어 설득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국이 당한 충격과 슬픔에 일본 총리가 와서 그런 행동을 해주셨는데 일본이 당한 충격과 슬픔에 한국 대통령이 일본에 가면서 외면하셔야 되겠냐고 설득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후쿠시마행을 결정합니다. 이때 3국 언론들은 삼국 정상이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먹는 모습을 대서특필합니다. 권 전 대사는 “후쿠시마 피해지역으로 가는 도중에 일본 외무성 차관이 전화로 ‘피해 지역에 가면 그 야채나 과일같은 것을 전시해놓는데 일본 총리가 그 중 하나를 먹을테니 한국 대통령도 하나만 먹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신은 거절했지만 대통령이 그러겠다고 해서 성사됐다”고 덧붙입니다.
결국 후쿠시마에 도착한 삼국 정상은 나란히 후쿠시마산 오이, 방울토마토 등을 먹습니다. 1년 전 일본 총리의 제안으로 ‘얼떨결에’ 천안함 장병들을 향해 묵념했던 중국 총리는 이날 한국 대통령의 동참으로 또다시 얼떨결에 후쿠시마 방문에 이어 후쿠시마산 농산물까지 입에 넣게 됩니다. 이웃나라의 정상들이 대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두 달 지난 때에 피해 지역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한 모습에 일본에서는 찬사가 나왔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현장을 직접 찾아 일본에서 큰 지지를 받았던 이 전 대통령은 이듬해 8월 10일 돌연 독도를 방문합니다. 현직 대통령으로 독도를 방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사태로 일본은 격분합니다. 일본은 이날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고,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가 직접 유감을 표명합니다. 같은달 17일 각료회의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제소하기로 결정하고 한국 정부에 통보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았지만 한·일 수교 이후 독도 문제를 일본이 ICJ 회부 의사를 밝힌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독도 방문 3일 뒤인 14일 한발짝 더 나아가 아키히토 일왕의 사죄까지 요구합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독도 방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면 우선 지난 일제강점기 때 저질렀던 악행과 만행에 대해서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며 “통석의 염 뭐가 어쩌고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통석의 염’은 아키히토 일왕이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 당시 과거사와 관련해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일본의 사실상의 국가원수를 향한 이같은 강경 발언은 독도 방문으로 촉발된 일본의 반한(反韓) 감정에 기름을 붓습니다. 독도 방문 다음날 주히로시마 총영사관에 한 우익 일본 남성이 벽돌을 투척하고 도망가는 사건을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서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크게 확대됩니다. NHK, 후지TV 등 일본 방송국은 한국 드라마 방송을 완전 중단하기까지 이릅니다. 방한 일본인 관광객은 같은해 12월 전년대비 44% 감소합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일본 소식통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은 일본 내 혐한 세력의 득세를 불러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우려를 나타낸 언론과 정치권은 ‘친일’ 논란에 휩싸입니다. 진보·보수 언론을 할 것 없이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통령을 비판했던 언론들은 모두 ‘친일언론’ 딱지가 붙습니다. 당시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이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아주 나쁜 통치행위”라고 비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독도 방문은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일이었다”고 슬그머니 말을 바꿉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19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여야 공수는 바뀝니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한국 법원의 일본 전범 기업들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수출 규제라는 치졸한 무역 보복 카드를 꺼냅니다. 다분히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층을 겨냥한 강경 대응이었습니다. 그러자 한국 정부도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로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돌연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죽창가’를 소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전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됩니다.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테러가 이어지고, 거리에는 ‘노 재팬(No Japan)’ 깃발이 나부낍니다.
반일 감정 확대로 지지층 결집에 도움을 받은 여당은 이듬해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프레임까지 내세웁니다. 대일 강경 외교를 비판하는 야당·보수언론을 향해 ‘토착왜구’라는 선정적인 단어가 버젓이 사용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여론에 비춰볼 때 (일본 불매운동의)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표현한 보고서가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죠.
외교가에서는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및 위안부 배상 판결에 일본이 반발해서 정 장관과의 통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지난 1월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 역시 모테기 외무상과 면담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 반이 지나도록 주요국 대사가 외무상을 못 만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반일(反日)이 국내 정치 프레임이 된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취임 후 저조한 자신의 지지율을 고려했을 때 국민 여론이 안 좋은 한국을 무시하는 전략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스가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화해 제스처에 응했다가 강제징용·위안부 판결로 일본 정부와 기업의 자산이 압류당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국내 정치 생명이 끝난다고 판단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총리는 “(한국이 언제 약속을 깰지 모르니) 보증인이 필요하다”며 미 국무부의 성명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양국 관계가 끝을 모르고 악화되자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5~17일 방일 후 일본과의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3국 간 협력은 우리가 공유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 번영에 매우 중요하다”며 한·미·일 삼각 공조를 재차 강조했습니다. 강경한 대중(對中) 견제에 나선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 전통 동맹국인 한·일과의 단일대오를 형성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국 정상의 의지가 필수적입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청와대를 예방한 블링컨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한·일 관계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정·번영에 매우 중요하고, 한미일 협력에도 굳건한 토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문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대해 일종의 정치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관계 개선은 없다는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와 삼권분립을 내세워온 우리 정부가 돌연 입장을 바꿔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낮습니다.
양국이 대형 참사를 우호 관계 형성에 기회를 만들던 때 외교 최일선에 나가있던 권 전 대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이 사태는 국민들이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들끼리 일으킨 문제이기 때문에 그 매듭도 정치인들이 풀어야 됩니다. 특히 양국 정상들이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숙제를 갖고 있고 사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한 이후에 과감하게 손을 먼저 내미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정상회의가 열린 이날은 민·군 합동조사단과 국제조사단이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는 결과를 발표한 지 불과 열흘 뒤였습니다. 당시 북한은 국제합동조사 결과에 대해 ‘조작극’이라며 크게 반발했고, 각계의 많은 인사들은 물론 야당에서까지 국제 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거리낌없이 제기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최대 우방국이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침묵하던 중국 총리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묵념에 참여한 것입니다. 사전 조율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아닌 일본 총리가 한 제안이었기 때문에 중국 총리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당시 제주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 앞서서는 헬기를 타고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습니다.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참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날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게 “46명의 희생자에 대해 일본 정부를 대표해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합니다. 이 전 대통령도 “오늘 아침 바쁜 가운데 우리 천안함 순국장병 46명이 묻힌 그곳을 직접 찾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화답합니다.
◆후쿠시마産 오이 먹은 MB
그로부터 1년뒤 일본에서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납니다. 진도 9.1의 강진과 지진해일로 인해 직접 사망자만 1만5000명이 넘고 피난민이 47만명에 달하는 일본 전후 사상 최악의 참사였습니다. 대지진 두 달 뒤 한·중·일 정상회의가 일본에서 개최됩니다. 정상회의 장소는 도쿄였지만 일본 정부는 한·중 정상이 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역인 미야기현과 후쿠시마현을 들러줄 것을 요청합니다.지난 11일 서울 운니동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열린 동일본대지진 10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권철현 당시 주일 한국대사는 “일본 정부가 삼국 정상들이 피해지역을 와서 방문해주고 후쿠시마 이재민들이 있는 피해지역에 들러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당시 중국은 단호히 거절했고 우리 정부도 처음에는 아직 여진이 있고 방사능이 있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권 전 대사는 이 전 대통령에게 하토야마 전 총리의 천안함 묘역 참배를 예로 들어 설득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국이 당한 충격과 슬픔에 일본 총리가 와서 그런 행동을 해주셨는데 일본이 당한 충격과 슬픔에 한국 대통령이 일본에 가면서 외면하셔야 되겠냐고 설득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후쿠시마행을 결정합니다. 이때 3국 언론들은 삼국 정상이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먹는 모습을 대서특필합니다. 권 전 대사는 “후쿠시마 피해지역으로 가는 도중에 일본 외무성 차관이 전화로 ‘피해 지역에 가면 그 야채나 과일같은 것을 전시해놓는데 일본 총리가 그 중 하나를 먹을테니 한국 대통령도 하나만 먹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신은 거절했지만 대통령이 그러겠다고 해서 성사됐다”고 덧붙입니다.
결국 후쿠시마에 도착한 삼국 정상은 나란히 후쿠시마산 오이, 방울토마토 등을 먹습니다. 1년 전 일본 총리의 제안으로 ‘얼떨결에’ 천안함 장병들을 향해 묵념했던 중국 총리는 이날 한국 대통령의 동참으로 또다시 얼떨결에 후쿠시마 방문에 이어 후쿠시마산 농산물까지 입에 넣게 됩니다. 이웃나라의 정상들이 대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두 달 지난 때에 피해 지역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한 모습에 일본에서는 찬사가 나왔습니다.
◆韓日관계, 지지율 '치트키'로 전락
서로의 끔찍한 참사에 양국 정상이 진심으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며 양국 우호 관계를 불러왔지만 불과 1년 뒤부터 한·일 관계는 다시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양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2011년 후쿠시마 현장을 직접 찾아 일본에서 큰 지지를 받았던 이 전 대통령은 이듬해 8월 10일 돌연 독도를 방문합니다. 현직 대통령으로 독도를 방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사태로 일본은 격분합니다. 일본은 이날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고,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가 직접 유감을 표명합니다. 같은달 17일 각료회의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제소하기로 결정하고 한국 정부에 통보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았지만 한·일 수교 이후 독도 문제를 일본이 ICJ 회부 의사를 밝힌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독도 방문 3일 뒤인 14일 한발짝 더 나아가 아키히토 일왕의 사죄까지 요구합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독도 방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면 우선 지난 일제강점기 때 저질렀던 악행과 만행에 대해서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며 “통석의 염 뭐가 어쩌고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통석의 염’은 아키히토 일왕이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 당시 과거사와 관련해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일본의 사실상의 국가원수를 향한 이같은 강경 발언은 독도 방문으로 촉발된 일본의 반한(反韓) 감정에 기름을 붓습니다. 독도 방문 다음날 주히로시마 총영사관에 한 우익 일본 남성이 벽돌을 투척하고 도망가는 사건을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서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크게 확대됩니다. NHK, 후지TV 등 일본 방송국은 한국 드라마 방송을 완전 중단하기까지 이릅니다. 방한 일본인 관광객은 같은해 12월 전년대비 44% 감소합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일본 소식통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은 일본 내 혐한 세력의 득세를 불러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우려를 나타낸 언론과 정치권은 ‘친일’ 논란에 휩싸입니다. 진보·보수 언론을 할 것 없이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통령을 비판했던 언론들은 모두 ‘친일언론’ 딱지가 붙습니다. 당시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이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아주 나쁜 통치행위”라고 비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독도 방문은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일이었다”고 슬그머니 말을 바꿉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19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여야 공수는 바뀝니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한국 법원의 일본 전범 기업들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수출 규제라는 치졸한 무역 보복 카드를 꺼냅니다. 다분히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층을 겨냥한 강경 대응이었습니다. 그러자 한국 정부도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로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돌연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죽창가’를 소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전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됩니다.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테러가 이어지고, 거리에는 ‘노 재팬(No Japan)’ 깃발이 나부낍니다.
반일 감정 확대로 지지층 결집에 도움을 받은 여당은 이듬해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프레임까지 내세웁니다. 대일 강경 외교를 비판하는 야당·보수언론을 향해 ‘토착왜구’라는 선정적인 단어가 버젓이 사용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여론에 비춰볼 때 (일본 불매운동의)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표현한 보고서가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죠.
◆'역대 최악' 한일관계 끝은 어디?
지난 11일 동일본대지진 10주기 추모행사에서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는 이날 추모행사에서 한국어로 연설에 나섭니다. 아이보시 대사는 “우리가 깊은 슬픔과 고통에 빠져있을 때 한국분들은 아낌없는 온정과 지원을 보내줬다”며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이동성 대장님이 이끄는 한국 국제구조대는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달려와 구조 활동을 펼쳐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재해 발생 이후로 지금까지 한국 분들께 받은 다양한 지원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한국의 도움을 강조했습니다. 이동성 당시 대한민국국제구조대 대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전시실에는 참사 당시 한국의 구조활동과 서울 시내 곳곳에 걸렸던 ‘일본 힘내라’라는 현수막에 관한 사진이 한 층 가득 전시됩니다. 하지만 추모식에서 한국에 대한 감사를 강조한 것과는 달리 일본은 최근 의도적으로 한국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9일 취임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미·중·러 등 주요국 외교장관과의 통화는 물론, 지난 19일 중남미의 과테말라 외교장관과도 대면 회담을 가졌지만 일본 외상과는 통화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정 장관이 지난 10일 동일본 대지진 10주기를 맞아 모테기 일본 외무상에게 위로 서한을 보내고 그로부터 엿새가 지나 모테기 외무상이 답신을 보낸 것이 양국 외교 장관 간 첫 소통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국가와 화상으로 정상회담도 하는 시기에,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한·일 외교 수장들은 편지로 처음 대화하고 거기에 대해 온갖 의미부여나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외교가에서는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및 위안부 배상 판결에 일본이 반발해서 정 장관과의 통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지난 1월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 역시 모테기 외무상과 면담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 반이 지나도록 주요국 대사가 외무상을 못 만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반일(反日)이 국내 정치 프레임이 된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취임 후 저조한 자신의 지지율을 고려했을 때 국민 여론이 안 좋은 한국을 무시하는 전략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스가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화해 제스처에 응했다가 강제징용·위안부 판결로 일본 정부와 기업의 자산이 압류당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국내 정치 생명이 끝난다고 판단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총리는 “(한국이 언제 약속을 깰지 모르니) 보증인이 필요하다”며 미 국무부의 성명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양국 관계가 끝을 모르고 악화되자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5~17일 방일 후 일본과의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3국 간 협력은 우리가 공유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 번영에 매우 중요하다”며 한·미·일 삼각 공조를 재차 강조했습니다. 강경한 대중(對中) 견제에 나선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 전통 동맹국인 한·일과의 단일대오를 형성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국 정상의 의지가 필수적입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청와대를 예방한 블링컨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한·일 관계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정·번영에 매우 중요하고, 한미일 협력에도 굳건한 토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문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대해 일종의 정치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관계 개선은 없다는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와 삼권분립을 내세워온 우리 정부가 돌연 입장을 바꿔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낮습니다.
양국이 대형 참사를 우호 관계 형성에 기회를 만들던 때 외교 최일선에 나가있던 권 전 대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이 사태는 국민들이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들끼리 일으킨 문제이기 때문에 그 매듭도 정치인들이 풀어야 됩니다. 특히 양국 정상들이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숙제를 갖고 있고 사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한 이후에 과감하게 손을 먼저 내미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