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관심 있지만 함부로 발 들여놓을 만큼 준비 안돼"
"'정인이 사건'은 대국민 테러와 같아…도돌이표 막을 법 필요"
"1.9㎏ 핏덩이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좋은 부모님을 만나 사랑받고 편안하게 컸어요.

그래서 역량이 닿는 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이든 책이든 작은 것이겠지만 제가 손 한 번 잡아드려서 도움이 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아동심리 전문가로 채널A 육아 예능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활약하며 부모들로부터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은 오은영(55) 박사를 최근 강남구 삼성동에서 만났다.

본업은 물론 방송과 육아 서적 저술까지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중에도 그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신의학과로 석사, 고려대 대학원에서 같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오 박사는 이 길을 택한 계기를 묻자 "처음부터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하려던 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련했는데 현장에서 환자와 소통하는 게 잘 맞더라고요.

당시에는 뇌와 관련한 의학이 한참 발전하려던 차였는데, 저는 특히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도록 감정을 조절하고 사회 속에서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그렇게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된 오 박사의 세부 전공은 아동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다.

많은 부모와 아이를 힘들게 하는 이 질환에 대해 오 박사는 "개인적으로는 ADHD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ADHD 아이들과 소통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

귀엽기도 하고요.

이 아이들이 오해를 많이 받고 크는 면이 있어요.

ADHD는 자기조절능력 발달이 좀 늦는 것일 뿐인데, 그걸 발달시키기 위해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근원적 질문이죠."
오 박사는 이 '자기조절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육아의 핵심이고, 그래서 부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부모 역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강박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도 조언했다.

"아이 키우는 게 어려워서 상담하면 다 부모 탓이라고 하더라며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부모는 아이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가진 모든 문제의 원인이 부모 탓은 아니에요.

학대하는 소수를 제외하면 불완전한 부모도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런 미성숙한 부분을 통해서도 사랑은 표현돼요.

누구 탓인지 따지기보다는 아이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알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육아의 신'으로 불리는 오 박사도 정작 자신의 육아는 쉽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20대 아들을 둔 그는 "기본은 가르치지만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한데 말이 쉽지, 현장에선 쉽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원인은 애가 아니라 나라는 걸 깨닫고 늘 노력했다"고 했다.

"가장 기쁠 때도 아이가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한다고 느낄 때죠. 저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회사에 가는 '성공 신화'에 사로잡힌 엄마는 아닙니다.

그래서 선행학습 같은 것도 안 시켰어요.

아이가 재수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나이에 맞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걸 보며 '이제 혼자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행복하죠. 제가 2008년 대장암 선고받았을 때도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는 우주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
오 박사는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면서도 에너지를 잃지 않는 비결로도 아들을 꼽으며 "아이는 힘의 원동력이자 행복 버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훗날 손주가 생긴다면 '황혼 육아'도 가능하냐는 물음에 "좀 봐줄 것 같다.

내가 잔소리하는 스타일은 아니니 (며느리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웃었다.

오 박사가 2005~2015년 출연했던 SBS TV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만큼 '금쪽같은 내 새끼'도 장수 프로그램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인다.

오 박사는 "요즘 아이 낳는 걸 두려워하는 청년이 많아 가슴 아프다.

아이를 이해하는 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인데, 젊은이들에게 작은 별빛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방송한다"며 "이 프로그램도 일반인 가정을 대상으로 해서 모험 같은 포맷이었지만 진정성과 공감 덕분에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는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방송으로 유지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는 '1호 금쪽이'로 공격성을 보였던 민호가 엄마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회복했던 것을 꼽으며 "방송 사례들은 양상이 다양할 뿐, 들어가 보면 인간의 공통적인 감정, 행동,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 박사는 최근 부모들뿐만 아니라 20~30대 청년들에게도 멘토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도 "나는 육아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0세부터 100세까지 다 커버한다"고 웃으며 "암울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내면의 힘을 바탕으로 딛고 살아가는 청년들과 소통하는 방송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신의진 박사처럼 정치에 뛰어들 계획은 없느냐는 물음에도 제법 솔직하게 답했다.

"정치는 삶과 직결되니 관심이 있죠. 정치인들도 훌륭한 뜻을 갖고 많은 일을 일궈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뭘 한 가지 시작하면 꾸준히 오래 하거든요.

일간지에 격주로 칼럼도 쓰고, 책도 16권 냈고, 온라인에 글도 올리고, 유튜브도 하고, 방송도 꾸준히 하잖아요.

심지어 미용실도 한 곳을 30년 다녔어요.

(웃음) 주제넘게 함부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만한 준비가 아직은 많이 미흡한 것 같아요.

"
오 박사는 전 국민을 가슴 아프게 한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 일명 '정인이 사건'에 대해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 같은 사건이었다"고 했다.

"저는 아동학대 사건의 전면에 늘 서 있었어요.

현장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생생한 고통을 알고, 그래서 너무 가슴이 아프죠. '사람이 어떻게 아이한테 이럴 수 있지'라고 모두가 분노하지만 늘 도돌이표예요.

그래서 법이 필요해요.

물론 체계적인 매뉴얼이 만들어진다고 모든 아동학대를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단계별로 점검할 수 있게 하면 어느 정도 걸러질 수 있거든요.

영유아 검진을 모두가 받듯 정신과 전문의를 총동원해 아이들을 점검하고 발달도 확인하는 법을 꼭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장애 아동들이 편안하게 훈련할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오 박사는 마지막으로 "건강이 버텨주는 한 권력과 돈을 떠나 아이들과 부모가 조금이라도 마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인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