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가 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가 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65·사진)는 보수와 진보 사이 회색 지대에 있는 인물이다. 2012년 박근혜 정권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후보로 물망에 올랐지만,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든 원로.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에 “경제는 보수, 사회는 진보”라며 “좌파와 진보 사이에서 진자(振子) 운동한다”고 답하는 지식인, 그러면서 정치·경제·사회 저서 40여편을 남긴 사회학자.

그는 지난달 문재인 정부 4년의 평가를 담은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나남출판)을 펴냈다. 지난 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사옥에서 만난 그가 정권에 뱉은 비판의 날은 매서웠다. 그는 문 정권을 “진정한 좌파가 아닌 1980년대 운동권 정치”라고 규정했다. ‘본인만 정의롭다’는 인식 아래서 ‘편 가르기’ 정치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이런 정치 세태가 한국 경제를 위협한다고 진단했다. 노동시장 전문가인 그는 ‘소득수도성장’을 “고용주를 외면한, 시장과 정책의 기본을 전혀 모르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뒤쳐진 정치 세태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1시간30분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그는 손바닥 만한 메모지만 둔 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현안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책 제목이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진보든 보수든 ‘정의’를 실행한다고 사람의 삶을 힘들게 하면 곤란합니다. 정의는 사람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수단적 개념인데, 이걸 목적 개념으로 설정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가치인 생활안정, 생계유지 등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정의보다 소중한 것인 ‘먹고 사는 문제’, ‘안정적인 삶’을 국민에게 안겨주지 못한 이유를 뭐라고 보십니까.

“정부의 정책은 수단이고, 목적은 시민의 생계안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정의라는 목적에 매몰돼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이 혜택 범위에서 벗어났습니다. 정책을 잘 못써서 이렇게 됐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런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정부를 진정한 좌파가 아닌 운동권 정치라고 규정했습니다.

“유럽 좌파의 공통적인 목적은 ‘사람을 중히 여긴다’, ‘조합이 제일 중요하다’ 입니다. 고용, 주택, 교육 등을 평등한 형태로 부담을 지우는 것이 좌파의 가장 기본적인 정책 방향입니다. (이번 정부에서는) 그런 게 잘 안보입니다. (이번 정부가 좌파라는 건) 1980년대 저항운동, 민주화운동하면서 만들었던 그들의 신념에서 나온 개념 규정이지 보편적인 좌파 개념 운동은 아닙니다.”

▷운동권 정치 특징 중 하나를 ‘편가르기’라고 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편가르기’가 반복되는 이유를 뭐라고 보십니까.

“1980년대 경험이 2020년대에 확장된 겁니다. 80년대 저항운동을 하다보면 ‘우리편 내편’이 아니면 안 됩니다. ‘너희는 적이고 우리는 동지’ 이런 의식 속에 ‘적과 동지’ 개념이 분명할 것입니다. 좌파는 타협 정치입니다. 계급 타협 뿐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보수와) 타협합니다. ‘홀로 질주하고 우리만 정의롭다’ 이런 인식은 80년대 독재 투쟁에서 나온 것이고 이번 정권에서 훨씬 더 강한 형태로 재현되는 것 같습니다.”

▷내편만 챙기다보니, 각 분야 전문가 얘기를 안 듣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토론과 협의, 소통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당성의 독주입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정당성을 확보한 정치 세력이다’란 인식입니다. 소통한다고 말하고 ‘정당성 없는 세력과 대화할 수 없다’는 건데, 박근혜 정권만큼이나 불통입니다. 이번 정부는 (80년대) 학생운동할 때, 그 이후에도 (계획한) 정책이 머리 속에 있어요. 1980년대와 2020년대 한국사회는 천지차이인데, ‘어떻게’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정책을 시행하면 의도대로 될 것이란 생각이 있습니다. 소득주도성장 같은 걸 보면 정책의 기본을 몰라요. 전문가 비판을 수용도 해야하는데, 그냥 밀어부칩니다.”

▷2019년 2월 청와대 사회 원로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영란 전 대법관 등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에게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조언했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듣고 문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멈출 수 없다.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만 하더군요.

▷현 정권 특징을 ‘3고 정치’로 요약했습니다.

“고집, 고소, 고립입니다. 이 정부는 정책 노선을 절대로 고치지 않습니다. 노선을 고치면 정권에 실패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트라우마입니다. 반대 의견이 커지는 상황에 지지자 믿고 철옹성을 쌓고 있는데, 타협의 가능성은 정치가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사회 전체 연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양자가 충돌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국 사태부터 이어진 검찰과 정부의 갈등을 어떻게 봤습니까.

“검찰 개혁은 필요합니다. 단 수준과 방향이 문제입니다. 검찰을 해체하겠다는 수준은 곤란합니다. 검찰 권력을 축소하는 것은 좋은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새로 만들어진 기구가 검찰처럼 권한을 휘두를 때 누가 막느냐의 문제가 생깁니다. 누가 중대범죄수사청, 공수처를 통제할 것이냐의 문제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유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야당조차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적 가치가 낡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인데요.

“민주주의는 자유를 필수 요건으로 합니다. 이번 정권은 민주주의 안에서 자유를 빼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역사를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자유를 얻고, 이 자유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사회 사상가의 주요 질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정치 체제가 좋은가 보니 민주주의가 나왔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항상 부딪히는데, 민주주의는 이 두 가치를 가장 배합하는 정치 체제입니다. 시민이란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없이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과 같죠.”

▷이번 정부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위선입니다. 정부 정책과 달리 청와대와 정부 공직자가 다주택을 보유하고, 자녀를 자립형사립고에 보냅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LH 사태’까지 터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어떤 정권이든 정도의 차이지 비리나 반칙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전제 조건이 ‘우리에게도 적폐가 있을 수 있다’란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가) 적폐 청산 대상이 될 수가 있다는 생각을 안하는 것 같습니다. 적폐청산 주체가 내부에 적폐가 있다고 하면 힘이 떨어질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공포 두려움 아닐까 싶습니다.”

▷민주주의가 지켜야할 법치, 협치, 권리, 자유 등 가치가 더 줄어든 것 같습니다. 광장에서 탄생한 현 정권이 아이러니하게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봐도 됩니까.

“민주주의는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토크빌은 ‘민주주의 가장 위험한 내부 적은 다수의 횡포'라고 했습니다. 지지자 수로 사회 전체를 통제하면 소수가 죽어버립니다. 소수가 죽어버리면 민주주의가 아니고요. 이번 정권은 다수가 정의롭기 때문에 횡포로 가도 민주주의는 오히려 건강해진다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광장은 목소리가 다양해야 하는데, 이 정권은 반대 얘기를 하면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광장에서 태어난 정권인데 광장의 의미를 버렸습니다. 이번 정권에 광장은 없습니다.”

▷한국은 정치과잉, 정치우위의 사회가 고착화돼 가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정치로 경제를 포함해 모든 부문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가 발전하면 정치적 무관심이 생깁니다. ‘내가 표를 안 던져도 정치가 잘 되어 간다’란 인식 때문이죠. 근데 정치가 잘 안되면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정치는 극단적 발언을 쏟아냅니다. 정치 과잉은 일반 사회에서 하는 일을 정치적으로 규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러면 사회 문화 경제 영역의 활력이 줄어듭니다. 정치에 휘말려야 하니까요. 사회 경제는 정치적인 질서에 종속되거나 그것에 의해 끌려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등을 앞세워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재정 지출이 소비 회복으로 이어지면 성장률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인데요.

“위험한 발언, 쌩뚱 맞은 주장입니다. 3만불 시대에 기본주택, 기본소득 등을 하는 사회를 유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쪽으로 가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하면 실제로 경제성장에 좋은 효과를 미치는가? 아닙니다. 근로 의욕이나 경쟁 원칙이 바뀌기 때문에 한 사회의 활력을 잃을 확률이 높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권리가 아니고 보호의 대상입니다. 보호를 하려면 사회 여력을 따져봐야 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무책임한 얘기고, 오히려 사회복지 제도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얘기해야 맞습니다.”

▷부동산 정책, 소득주도성장 등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시장질서를 무시한 채 이념만을 앞세워 이뤄졌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이것을 실행한다는 취지는 중요합니다. 이걸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문제인데, 최대 실수는 고용주를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고용주는 우리 말을 따라야 한다’는 전제로 정책을 시행했어요. 영세자영업자, 작은 기업 등 할 것 없이 고용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시장 매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정권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시장에는 실직자, 구직자, 취직자, 고용주 등이 있는데, 노동자만 생각하고 고용주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이 줄줄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정책 취지는 좋은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의 기업주 고용주를 처벌하는 것인데, 일부러 사고 나게 하려는 고용주가 있겠습니까? (위험의 외주화를 만드는) 하도급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이런 것이 답답합니다. 취지는 좋으나 방법은 초등학생 수준입니다.”

▷주 52시간제, 기업규제 3법 등의 근간에는 ‘기업과 부자는 나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과 돈 가진 사람을 부정적 시선이 있다고 해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끌어주는 게 정부 역할인데, 세금만 때리고 규제만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올리는 건 투자 의욕을 감소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일자리가 안 생기죠. 노동자는 보호를 해주고 시장은 유연하게 가는 것을 섞는 것이 좌파의 특징인데 우리는 유연성이 없습니다.”

▷유럽 좌파정권은 노조와 상생을 중시한다고 하셨는데, 현 정권은 민주노총 등 노조와 어떻게 상생해야 할까요.

“유럽 좌파정권의 최대 지지자는 노동자고, 노조와 정책 연합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를 국가 정책으로 확산하려면 노조가 상식적이고, 도덕적이고, 사회적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조는) 정치 파트너가 될 수 없고, (함께 만든) 정책을 전 국민에게 시행할 수도 없습니다. 예컨대 임금협상은 임금 양보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근데 한국은 소득 상위 계층에 속하는 노조가 (임금협상을) 주도해서 임금 인상을 최대로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친중국 정책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미·중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외교 통상 전략은 어떡해야 하는겁니까.

“안보와 경제 관점에서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것,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 미국으로 가는 것.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근대가 시작된 다음에 태평양(미국)이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이 1890년대부터입니다. 그때 한국의 근대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사실 태평양을 훨씬 더 비중있게 다루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인구재앙이 본격화되고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도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한국은 경제를 뒷받침하는 사회 제도나 시민의 태도 (변화) 등 한 사회가 반드시 거처야 할 과정을 거치고 않고 경제가 질주했습니다. 이 부분을 채우느라 경제는 한동안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경제가) 정체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비어 있는 걸 메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 세대의 사회 진입 비용을 낮추는 것입니다. 일자리와 주택 문제가 있겠죠. 두 가지를 젊은 세대를 위해서 어떻게 계획해주는가가 출산율 증대와 직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여력과 잠재력,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걸 정치가 잘 가꿔줬으면 하는데, 정치가 앞으로 잘될 것으로 낙관하지 않습니다. 사회 경제 문화에서 창의력이나 잠재력이 있는 상황에서 정치가 발목을 잡는 문제가 당면할 것 같습니다.”

송호근 교수는…시민사회·노동시장 30년 연구…소설가·작사가로도 활동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는 교수이면서 작가다. 1983년 27세에 저서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을 처음 쓴 뒤 지금까지 40여 편을 저술했다. 정치·사회·경제 서적부터 에세이, 장편소설까지 썼다. 가수 조용필 19집 수록곡 ‘어느 날 귀로에서’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학자로서 30년 넘게 한국 시민사회와 노동시장을 연구했다. 한국 시민사회의 진화 과정을 인민, 시민, 국민 개념으로 제시한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 3부작은 시민사회 연구사에 역작으로 꼽힌다. 한국 산업계에도 조예가 깊다. 2017년 《가 보지 않은 길》에서 현대차를, 2018년 《혁신의 용광로》에서 포스코를 노동과 산업구조 측면에서 다뤘다. 《가 보지 않은 길》을 쓸 때 6개월간 울산 현대차 공장을 찾은 뒤 노조원, 관리자, 퇴직자 등 50명을 만나 인터뷰할 정도로 현장 취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후보로 거론됐고 2019년 2월에는 사회 원로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좌파정권이 집권하면 중도우파로, 우파정권이면 중도좌파로 변신을 거듭했다”며 “공공지식인에게 정권과의 거리두기는 필수 규범”이라고 말했다.

△1956년 경북 영주 출생 △1979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81년 서울대 사회학 석사 △1989년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1989~1994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1994~2018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18년 서울대 석좌교수 △2018년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석좌교수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