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계약서 발견 못했다"…램지어, 동료에 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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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교수는 논문에서 위안부 사례를 잘못 인용한 점도 뒤늦게 인정했다. 이로써 논문 공개로 촉발된 이번 파문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 주목된다.
한국계인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는 현지시간 26일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실은 `위안부의 진실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램지어 교수가 자신이 "실수했다"고 실토했다면서 램지어 교수와 주고받은 이메일과 직접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자신과 나눈 대화에서 "한국인 위안부가 작성한 계약서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논문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매춘업자`와 `예비 매춘부` 간 계약행위로 규정했다.
하지만 학계에선 그가 계약 문제를 언급해놓고서도 정작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작성한 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대신 램지어 교수는 앞서 자신이 전쟁 전 일본에서의 매춘 고용계약에 관해 1991년 쓴 논문에 기초했다고 석 교수에게 추가로 설명했다.
그러나 석 교수는 "전쟁 전 매춘이 2차 대전 중 전선에서 이뤄진 성 노역이나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램지어 교수는 석 교수와의 대화에서 "한국인 여성의 계약서를 확보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고 시인한 뒤 "당신도 못 찾을 게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역사학자들이 램지어 교수가 인용한 문헌에서 정작 그의 주장과 배치되는 다른 증언들을 찾아내자, 램지어 교수가 10살짜리 일본 소녀의 사례를 잘못 인용했다며 한발 물러선 사실도 드러났다.
램지어는 `오사키`란 이름의 10살짜리 일본인 소녀의 증언을 논문에 등장시켜 계약이 자발적이며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논문에서 "오사키가 10살이 됐을 때 위안부 모집책이 300엔의 선급금을 제안했다"라면서 "오사키는 그 일이 수반하는 것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모집책은 그를 속이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에이미 스탠리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등은 램지어 교수가 인용한 원서를 보면 실제로 이 소녀는 "우리는 이런 업무일 줄 모르고 있었다. 믿기 어려울 만큼 끔찍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돼 있다고 반박해왔다.
램지어 교수는 이러한 반박 주장을 접한 후 "당황스럽고 걱정이 됐다"(puzzled and troubled)라고 토로하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실수했다"라고 석 교수에게 이메일을 통해 시인했다.
램지어 교수는 석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한국, 일본과 그 밖의 지역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스스로를 변호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4명을 포함한 한국인 15명이 이번 논란을 램지어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이라고 묘사한 성명서도 석 교수에게 보내줬다.
그러나 당초 램지어 교수를 옹호한 미국 학자 2명은 논문의 결함을 지적하는 자료들을 읽은 뒤 입장을 바꿨다고 석 교수는 밝혔다.
매리 엘리자베스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당초 램지어 교수의 연구에 대해 "어마어마하다"라고 평가했지만, 이후 석 교수에게 보낸 글에서 "램지어는 반박 입장에 철저히 답하고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석 교수가 전했다.
데이비드 와인스타인 컬럼비아대 교수 역시 당초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학술지 국제법경제리뷰(IRLE)에 게재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역사학자들의 반박 주장을 읽고 "편집자들이 심사 절차에서 기저 팩트들의 심각한 오류를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한다면, 게재 철회가 적절할 것"이라고 밝혔다.
석 교수는 "학문적 자유에는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할 책임이 수반돼야 한다는 강한 의견일치가 형성됐다"라고 지적했다.
램지어 교수가 논문의 몇몇 오류를 인정했다고 해서 그가 논문을 직접 철회하거나 대대적으로 수정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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