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 백신 새치기 스캔들…에콰도르 보건장관 사임
중남미 각국에 고위층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새치기 접종` 스캔들이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페루, 아르헨티나에 이어 에콰도르에서도 보건 수장이 백신 새치기 의혹 속에 낙마했다.

26일(현지시간)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트위터에 후안 카를로스 세바요스 보건장관이 제출한 사퇴서를 공유했다.

세바요스 장관은 서한에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그리고 백신 접종 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 보건장관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에콰도르 일간 엘코메르시오 등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취임한 세바요스 장관은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한 부정 의혹으로 검찰 조사와 탄핵 압박을 받던 중이었다.

남미 에콰도르는 지난달부터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백신을 들여와 의료진과 요양시설 노인들을 중심으로 접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고급 민간 요양시설에 있던 세바요스 장관의 80대 노모가 일찌감치 백신을 맞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그는 "장관이자, 의사, 아들로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미 백신을 맞은 고위 공무원 등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거세졌지만, 세바요스 장관은 기밀 사항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오는 5월 물러나는 모레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내 94세 부친, 딸들, 사위들, 형제자매, 장모 등 아무도 백신을 맞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남미에서 `새치기 접종` 스캔들로 물러난 장관은 세바요스가 처음이 아니다.

이웃 페루에선 마르틴 비스카라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인 지난해 10월 중국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실이 폭로된 것을 시작으로 고위층의 은밀한 접종이 줄줄이 드러났다.

"선장은 마지막까지 배에 남는다"며 나중에 백신을 맞겠다고 말했던 필라르 마세티 전 페루 보건장관도 이미 백신을 맞은 상태였다는 게 확인돼 국민에게 배신감을 안기며 물러났다. 함께 백신을 맞은 외교장관도 낙마했다.

이어 아르헨티나에선 히네스 곤살레스 가르시아 전 보건장관이 친한 70대 언론인에게 백신을 맞게 해줬다는 사실이 드러나 지난 19일 경질됐다.

페루와 아르헨티나에선 이들 외에도 고위층의 가족이나 친구 등이 의료진보다 먼저 백신을 맞은 사실이 속속 드러나며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구 대비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은 중남미에선 대부분 국가가 서구 선진국과 비교해 백신을 많이 확보하지 못해 접종 진행 속도로 턱없이 느린 상황이다.

일반 국민은 코로나19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고위층은 차례도 오기 전에 미리 백신을 맞았다는 사실은 중남미의 고질적인 부패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미 부패와 불평등에 지칠 대로 지친 중남미 국민의 분노와 좌절이 잇단 백신 스캔들과 함께 다시 거리에서 표출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오는 4월 페루 대선의 표심에도 이번 스캔들이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연합뉴스)

장진아기자 janga3@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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