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활동 조선족 가수 최연화 "트로트 열풍, 중국에도 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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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에는 한민족의 고유한 정서인 한(恨)을 위로하는 힘이 있어서 들으면 들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인에게는 생소한 '트로트'를 전파하는 게 제 사명입니다.
"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16년째 하고 있는 조선족 가수 최연화(47) 씨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음악 장르인 일본의 '엔카'는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트로트'를 모르는 게 안타까워서 앞장서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랫동안 무명 생활을 해온 최 씨는 종합편성채널 MBN의 주부 대상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인 '보이스퀸'에서 지난해 초 최종 '톱3'에 오르면서 국내 팬들로부터 '간드러진 목소리'와 '독특한 음색'의 소유자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트로트 가수들로 꾸민 KBS의 '전국노래자랑' 연말 결선에서 최종 4위의 성적을 내면서 '실력파 가수'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그는 "최근 트로트 곡을 중국어로 노래해 유튜브에 올렸는데 중국인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올해 연말에는 중국어로 제대로 된 트로트 곡을 발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조선족 3세인 그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사범대 성악 교수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동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시절 KBS 전국 노래자랑 추석 특집인 '세계 한민족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가수로서의 재능을 드러냈다.
대학 졸업 후 하얼빈예술단 소속 가수로 활동하면서 각종 음악 경연 대회에 다가서 실력을 뽐냈다.
2000년 중국 CCTV 주최 청년가수 콩쿠르 대중가요 부분 3위를 비롯해 전국 소수민족 음악콩쿠르 동상 수상 등 20여 개 대회에서 입상해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중국에서 예술단은 공무원 신분이라서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각종 대회 입상으로 승급도 또래보다 먼저 돼 장래가 보장돼 있었지만 거기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며 "조선족으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고국의 무대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며 한국에 오게 된 이유를 소개했다.
2000년부터 종종 한중우호 행사에 초청돼 한국에서 공연해온 그는 2005년 음반 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국에서의 가수 활동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최 씨는 "조선족 특유의 말투와 문화적 차이 등으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3장의 앨범과 여러 장의 메들리 음반을 냈지만 히트곡이 없었고 조선족 가수라는 시선도 있다 보니 오랜 무명 생활을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한국에서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 데에는 조부의 영향이 크다고 소개했다.
가난에 못 이겨 일제 강점기 중국으로 건너온 최 씨의 조부는 중국에서 청취가 가능한 '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의 애청자였고 여기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늘 들었기에 최 씨도 어려서부터 트로트가 익숙해졌다.
그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조부는 늘 고국을 그리워했고 헤어진 누님 소식을 찾았다"며 "향수에 젖을 때마다 남인수·이미자 씨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자랐기에 마음을 위로하는 힘이 트로트에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세계 한민족 노래자랑'에서 같이 듀엣 무대를 했던 주현미 가수와의 만남으로 그와 같은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꾸어왔다고 덧붙였다.
그사이에 결혼을 하고 5년간 육아에 매달리다 보니 공백도 있었다.
그를 가수로서 세상에 제대로 알리게 된 것은 방송국의 오디션 프로 덕분이었다.
그는 "인순이, 김혜언 등 기라성 같은 선배 가수들이 심사하면서 '편곡보다는 트로트가 가진 노래의 깊이에 파고들어 자신만의 해석을 하라'는 조언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며 "이전에는 그냥 노래를 잘하는 가수였다면 이제는 자기 색깔로 노래하는 가수가 될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7월에 새 앨범을 낼 계획인 최 씨는 "팬들에게 나만의 색깔을 가진 노래를 소개하는 첫 앨범이 될 것"이라며 "우선은 고국 무대에 치중하지만 중국에서의 활동도 할 계획이다.
양국 문화를 잘 아는 장점을 활용해 중국에서 '트로트 한류'를 퍼트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연합뉴스
중국인에게는 생소한 '트로트'를 전파하는 게 제 사명입니다.
"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16년째 하고 있는 조선족 가수 최연화(47) 씨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음악 장르인 일본의 '엔카'는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트로트'를 모르는 게 안타까워서 앞장서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랫동안 무명 생활을 해온 최 씨는 종합편성채널 MBN의 주부 대상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인 '보이스퀸'에서 지난해 초 최종 '톱3'에 오르면서 국내 팬들로부터 '간드러진 목소리'와 '독특한 음색'의 소유자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트로트 가수들로 꾸민 KBS의 '전국노래자랑' 연말 결선에서 최종 4위의 성적을 내면서 '실력파 가수'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그는 "최근 트로트 곡을 중국어로 노래해 유튜브에 올렸는데 중국인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올해 연말에는 중국어로 제대로 된 트로트 곡을 발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조선족 3세인 그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사범대 성악 교수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동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시절 KBS 전국 노래자랑 추석 특집인 '세계 한민족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가수로서의 재능을 드러냈다.
대학 졸업 후 하얼빈예술단 소속 가수로 활동하면서 각종 음악 경연 대회에 다가서 실력을 뽐냈다.
2000년 중국 CCTV 주최 청년가수 콩쿠르 대중가요 부분 3위를 비롯해 전국 소수민족 음악콩쿠르 동상 수상 등 20여 개 대회에서 입상해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중국에서 예술단은 공무원 신분이라서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각종 대회 입상으로 승급도 또래보다 먼저 돼 장래가 보장돼 있었지만 거기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며 "조선족으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고국의 무대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며 한국에 오게 된 이유를 소개했다.
2000년부터 종종 한중우호 행사에 초청돼 한국에서 공연해온 그는 2005년 음반 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국에서의 가수 활동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최 씨는 "조선족 특유의 말투와 문화적 차이 등으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3장의 앨범과 여러 장의 메들리 음반을 냈지만 히트곡이 없었고 조선족 가수라는 시선도 있다 보니 오랜 무명 생활을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한국에서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 데에는 조부의 영향이 크다고 소개했다.
가난에 못 이겨 일제 강점기 중국으로 건너온 최 씨의 조부는 중국에서 청취가 가능한 '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의 애청자였고 여기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늘 들었기에 최 씨도 어려서부터 트로트가 익숙해졌다.
그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조부는 늘 고국을 그리워했고 헤어진 누님 소식을 찾았다"며 "향수에 젖을 때마다 남인수·이미자 씨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자랐기에 마음을 위로하는 힘이 트로트에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세계 한민족 노래자랑'에서 같이 듀엣 무대를 했던 주현미 가수와의 만남으로 그와 같은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꾸어왔다고 덧붙였다.
그사이에 결혼을 하고 5년간 육아에 매달리다 보니 공백도 있었다.
그를 가수로서 세상에 제대로 알리게 된 것은 방송국의 오디션 프로 덕분이었다.
그는 "인순이, 김혜언 등 기라성 같은 선배 가수들이 심사하면서 '편곡보다는 트로트가 가진 노래의 깊이에 파고들어 자신만의 해석을 하라'는 조언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며 "이전에는 그냥 노래를 잘하는 가수였다면 이제는 자기 색깔로 노래하는 가수가 될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7월에 새 앨범을 낼 계획인 최 씨는 "팬들에게 나만의 색깔을 가진 노래를 소개하는 첫 앨범이 될 것"이라며 "우선은 고국 무대에 치중하지만 중국에서의 활동도 할 계획이다.
양국 문화를 잘 아는 장점을 활용해 중국에서 '트로트 한류'를 퍼트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