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기억 남는 성과는 샌드박스, 물꼬 못바꾼 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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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대한상의 회장 퇴임 앞두고 소회…"최태원 차기 회장 잘할 것"
"제2의 이병철, 정주영 나와야"…분배 문제 해결은 재정이 먼저
"샌드박스는 규제 혁신이고, 재임하는 동안 그 성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만 큰 물꼬를 바꾸지 못한 점은 아쉽다.
"
다음 달 퇴임하는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지난 1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퇴임 기자 간담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규제 샌드박스란 신사업을 시작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해주는 제도로 대한상의의 역점 사업 중 하나다.
박 회장은 지금까지 8편의 샌드박스 승인 기업의 홍보 영상에서 직접 원고를 다듬고 내레이션을 맡았을 정도로 샌드박스에 대해 열의를 보였다.
박 회장은 "재임하는 동안 '이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국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법과 제도를 우회해 먼저 일을 벌이고, 시장에서 실증을 통해 법과 제도를 바꿀 당위성을 찾자는 것이 샌드박스였고, 실제로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청년 창업가들에게 이러저러한 이유(규제)로 안 된다는 얘기를 하다 보면 미국, 유럽의 청년들은 듣지 않아도 될 말을 우리 젊은이들은 왜 들어야 하나 싶어서 정말 미안했다"며 "내가 샌드박스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기술이 태동하고, 기존 사업도 융복합으로 새로 태어나는 지금 시대에 법에서 정한 것만 허용하는 현행 '포지티브(Positive)' 법제와 제도로는 미래를 담을 수 없다고 믿는다.
박 회장은 "규제를 없애는 것을 디폴트(기준값)로 하고, 규제를 왜 존치해야 하는지가 입증돼야 맞는데 지금은 존치가 디폴트이고, 왜 바꿔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며 "그런 큰 물꼬를 바꾸지는 못하고 떠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최근 상법 개정안 등 규제 입법 과정에서 보여준 상의의 미온적 대응 방식이 아쉽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불만이 있는 게 당연하고 결국 방어를 못 했기에 할 말이 없다"면서도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고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2013년 8월 손경식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를 물려받아 상의 회장에 올라 연임까지 한 박 회장은 20년 만에 중도 사퇴 없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회장으로 기록된다.
최근 차기 회장으로 추대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4차 산업혁명에 가까운 업종에 있고, 미래 산업에 대해 나보다 잘 대변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처음으로 4대 그룹의 총수가 상의 회장을 맡는 만큼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한상의에 대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그동안 내가 중견·중소기업에 집중하느라 소홀했던 대기업의 목소리를 최 회장이 함께 반영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익공유제 등 분배 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재정의 역할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좋든 싫든 분배를 강화하고 그늘에 있는 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 "국가가 먼저 재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노력하고, 양극화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민간에서도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젊은 후배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빨리 성공하라"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제2의 이병철, 제2의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이 나와야 한다"면서 "지금의 10대 그룹보다 빠르게 자수성가해 10대 그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곳들이 10대 그룹중 6개는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임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론 프란치스코 교황 접견·평양 방문과 함께 국회를 누빈 일화를 꼽았다.
그는 "의원회관 안에서만 하루에 7km를 걸은 날도 있었고 셔츠가 땀에 젖어 갈아입거나 무릎이 아파서 테이핑을 하고 간 날도 있었다"며 "국회와는 애증의 관계"라고 회상했다.
퇴임 이후 활동을 묻는 질문에 그는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일단 두산인프라코어 이사회 의장 역할과 소임을 끝까지 다하고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정치는 절대 안한다고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나 같은 기업인은 사고가 수십 년 동안 효율과 생산성, 수익성으로 굳어져 있어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기업인이 정치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게 내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대신 청년 사업가들이 도움을 청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나서서 돕겠다고 했다.
박 회장은 "흔히 경험에서 우러나는 멘토링을 하라는데 내가 가진 경험과 조언이 과연 이 시대에 맞는 것인가에 대해 자신이 없다"며 "그보다는 현실적으로 막힌 부분을 대신 가서 설득하고 행동으로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글쓰기와 소통을 좋아해 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주목받기도 한 박 회장은 최근 그동안 써놓은 글들을 다듬어 첫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를 출간했다.
"산문집치고 책이 두꺼워요.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술술 읽힙니다.
주변에 널리 권해주세요.
하하."
/연합뉴스
"제2의 이병철, 정주영 나와야"…분배 문제 해결은 재정이 먼저
"샌드박스는 규제 혁신이고, 재임하는 동안 그 성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만 큰 물꼬를 바꾸지 못한 점은 아쉽다.
"
다음 달 퇴임하는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지난 1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퇴임 기자 간담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규제 샌드박스란 신사업을 시작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해주는 제도로 대한상의의 역점 사업 중 하나다.
박 회장은 지금까지 8편의 샌드박스 승인 기업의 홍보 영상에서 직접 원고를 다듬고 내레이션을 맡았을 정도로 샌드박스에 대해 열의를 보였다.
박 회장은 "재임하는 동안 '이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국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법과 제도를 우회해 먼저 일을 벌이고, 시장에서 실증을 통해 법과 제도를 바꿀 당위성을 찾자는 것이 샌드박스였고, 실제로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청년 창업가들에게 이러저러한 이유(규제)로 안 된다는 얘기를 하다 보면 미국, 유럽의 청년들은 듣지 않아도 될 말을 우리 젊은이들은 왜 들어야 하나 싶어서 정말 미안했다"며 "내가 샌드박스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기술이 태동하고, 기존 사업도 융복합으로 새로 태어나는 지금 시대에 법에서 정한 것만 허용하는 현행 '포지티브(Positive)' 법제와 제도로는 미래를 담을 수 없다고 믿는다.
박 회장은 "규제를 없애는 것을 디폴트(기준값)로 하고, 규제를 왜 존치해야 하는지가 입증돼야 맞는데 지금은 존치가 디폴트이고, 왜 바꿔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며 "그런 큰 물꼬를 바꾸지는 못하고 떠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최근 상법 개정안 등 규제 입법 과정에서 보여준 상의의 미온적 대응 방식이 아쉽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불만이 있는 게 당연하고 결국 방어를 못 했기에 할 말이 없다"면서도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고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2013년 8월 손경식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를 물려받아 상의 회장에 올라 연임까지 한 박 회장은 20년 만에 중도 사퇴 없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회장으로 기록된다.
최근 차기 회장으로 추대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4차 산업혁명에 가까운 업종에 있고, 미래 산업에 대해 나보다 잘 대변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처음으로 4대 그룹의 총수가 상의 회장을 맡는 만큼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한상의에 대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그동안 내가 중견·중소기업에 집중하느라 소홀했던 대기업의 목소리를 최 회장이 함께 반영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익공유제 등 분배 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재정의 역할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좋든 싫든 분배를 강화하고 그늘에 있는 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 "국가가 먼저 재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노력하고, 양극화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민간에서도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젊은 후배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빨리 성공하라"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제2의 이병철, 제2의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이 나와야 한다"면서 "지금의 10대 그룹보다 빠르게 자수성가해 10대 그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곳들이 10대 그룹중 6개는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임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론 프란치스코 교황 접견·평양 방문과 함께 국회를 누빈 일화를 꼽았다.
그는 "의원회관 안에서만 하루에 7km를 걸은 날도 있었고 셔츠가 땀에 젖어 갈아입거나 무릎이 아파서 테이핑을 하고 간 날도 있었다"며 "국회와는 애증의 관계"라고 회상했다.
퇴임 이후 활동을 묻는 질문에 그는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일단 두산인프라코어 이사회 의장 역할과 소임을 끝까지 다하고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정치는 절대 안한다고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나 같은 기업인은 사고가 수십 년 동안 효율과 생산성, 수익성으로 굳어져 있어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기업인이 정치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게 내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대신 청년 사업가들이 도움을 청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나서서 돕겠다고 했다.
박 회장은 "흔히 경험에서 우러나는 멘토링을 하라는데 내가 가진 경험과 조언이 과연 이 시대에 맞는 것인가에 대해 자신이 없다"며 "그보다는 현실적으로 막힌 부분을 대신 가서 설득하고 행동으로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글쓰기와 소통을 좋아해 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주목받기도 한 박 회장은 최근 그동안 써놓은 글들을 다듬어 첫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를 출간했다.
"산문집치고 책이 두꺼워요.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술술 읽힙니다.
주변에 널리 권해주세요.
하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