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금융당국에 연착륙 방안 건의…"이번이 진짜 마지막"

은행팀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은행권이 원금 만기와 이자 납기를 미뤄준 대출 규모가 8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 한 차례 미뤄진 만기 연장·납입 유예 시한이 다시 3월 말로 다가오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강력한 요청 등에 은행들이 결국 재연장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아무리 코로나19 특수 상황을 고려해도 이미 80조원에 이르는 잠재적 부실 '시한폭탄'을 더 오래 떠안기 어려운 만큼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은행권은 특히 이자조차 못 내는 한계 기업에 대해서는 이자를 원금에 합산하거나 5년 이상 장기에 걸쳐 분할 납부하는 등의 '연착륙' 프로그램이라도 적용하게 해달라고 금융당국에 호소하고 있다.

◇ 이자유예 뒤 깔린 원금까지 82조원 '시한폭탄'
은행권은 지난해 2월 이후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방침에 따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 상환도 미뤄줬다.

21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관련 여신 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이달 17일까지 만기가 연장된 대출(재약정 포함) 잔액은 모두 73조2천131억원(29만7천294건)으로 집계됐다.

KB국민은행의 경우 금융당국·은행연합회 보고 수치는 5조원대지만, 이는 전산 시스템상 대출 담당 직원의 '면책' 대상으로 등록된 건만 집계된 것으로 다른 은행들과 비슷한 기준을 적용하면 15조원대라는 게 KB국민은행의 설명이다.

대출 원금을 나눠 갚고 있던 기업의 '분할 납부액' 6조4천534억원(9천963건)도 받지 않고 미뤄줬고(원금상환 유예), 같은 기간 이자 455억원(4천86건)도 유예했다.

이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의 총액 규모는 79조7천120억원에 이른다.

더구나 이자 유예액은 455억원 뿐이지만, 이 이자 뒤에는 무려 1조9천635억원의 대출 원금이 있다.

결국 현재 5대 은행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약 82조원에 이르는 잠재 부실 대출을 껴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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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 은행 코로나19 관련 여신 지원 실적(단위: 억원) │
│ ※ 각 은행 자료 취합 │
│ * 만기연장금액은 코로나 직간접 피해기업 지원실적(피해업종·취약등급 차주 │
│포함)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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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 만기 연장 │ 분할 납부 유예 │ 이자 유예 │ 총액 │
│   │ │     │ │
├────┬────┼───┬────┼───┬──┬───┼───────┤
│ 건수 │ 금액 │ 건수 │ 금액 │ 건수 │금액│ 관련 │ │
│ │ │ │ │ │ │ 원금 │ │
├────┼────┼───┼────┼───┼──┼───┼───────┤
│ 297,294│ 732,131│ 9,963│ 64,534│ 4,086│ 455│19,635│ 797,120│
│ │ │ │ │ │ │ │ (이자유예│
│ │ │ │ │ │ │ │ 관련 원금│
│ │ │ │ │ │ │ │ 제외시)│
│ │ │ │ │ │ │ │ 816,755│
│ │ │ │ │ │ │ │ (이자유예│
│ │ │ │ │ │ │ │ 관련 원금│
│ │ │ │ │ │ │ │ 포함시)│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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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권, 무조건적 이자유예 연장에 난색…여러 보완 프로그램 제시
3월 말 대출 연장·이자 유예 시한이 다가오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5대 금융지주 회장, 19일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장들을 잇달아 만났다.

오는 22일에는 은행연합회장 등 금융협회장들과 회동한다.

각 회의 후 금융위는 "참석자들이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조치의 6개월 연장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발표했다.

금융권에 재연장 관련 협조를 구했고 금융권도 동의했다는 뜻인데, 사실 금융당국과 은행권 실무선에서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재연장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은행연합회가 작년 12월 말 각 은행 기업대출 담당 부서로부터 재연장에 대한 의견과 요청 사항 등을 취합해 금융당국에 제출했고, 이후 최근까지 추가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일단 대출 원금 만기 재연장의 경우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불가피성을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무조건적 이자유예'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자는 내겠지만 코로나19로 원금을 갚기가 벅차니 좀 미뤄달라'는 경우는 원금 만기 연장으로 숨통을 틔워주면 은행 입장에서도 향후 대출 상환을 기대할 수 있지만, '당장 이자도 못 내겠다'는 기업은 긴급 조치가 필요한데 이자 유예로 '연명치료'만 해도 되는지 면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한계기업 입장에서도 유예기간이 끝났을 때 이자가 목돈이 돼 있기 때문에 부담이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은행 실무진은 이자 유예 기업의 밀린 이자를 원금에 합산해 같이 갚게 하는 방법, 이렇게 합쳐진 원리금이나 밀린 이자만 따로 5∼10년 이상에 걸쳐 장기간 나눠 갚도록 하는 방법 등을 재연장의 보완 대책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런 프로그램은 보통 은행들이 구조조정 기업들에 적용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3월 말 이후 이자유예는 신규 신청 기업에만 적용하고, 지금까지 이자를 미뤄준 기업들의 경우 밀린 이자를 일단 한꺼번에 내야 다시 유예해주자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코로나19 관련 재연장 취지에 맞지 않아 금융당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가 제안한 의견 가운데 금융당국이 아직 어떤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확정적으로 답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며 "이번 재연장부터 당장 적용되지는 않더라도, 6개월 이후에는 꼭 실행돼야 할 대출 연장·이자 유예 관련 '연착륙' 방안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과의 논의 과정에서 이번이 진짜 마지막 재연장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당국도 이에 공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